미국증시에 ‘매그니피센트7(Magnificent7·M7)’, 일본증시에 ‘사무라이7’이 있다면 유럽증시에는 그라놀라스(Granoloas)가 있다. 미국, 일본증시에 비해 다소 주목을 받지 못했음에도 유럽증시 역시 최근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는 그라놀라스라고 불리는 11개 선두주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라놀라스는 지난 2020년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네슬레 △ASML △로쉐 △노바티스 △노보 노디스크 △로레알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아스트라제네카 △SAP △사노피 등 유럽증시를 이끄는 11개 종목의 앞글자를 따 만든 단어이다.
그라놀라스는 전체적으로 2023년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유럽증시 상승을 이끌어 왔다. 이에 지난 3년간 그라놀라스 주식의 평균 수익률은 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중 미국증시 M7의 평균 수익률인 64%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그라놀라스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 달 범유럽권 대표 주가지수인 유로스톡스600은 2022년 1월 이후 2년여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그라놀라스 11개 종목은 지난 12개월 간 유럽증시 상승분의 약 60%를 차지한 가운데 현재 유로스톡스600 시가총액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달 보고서에서 “그라놀라스는 유럽증시가 부진한 국내총생산(GDP)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익률을 기록한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M7이 기술주,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 등 정보기술(IT) 및 인공지능(AI) 관련주들이 핵심인 반면 그라놀라스는 IT, 헬스케어, 소비, 음식료 등 분야가 다양하다. 또한 해당 기업들의 국적도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등 제각각이라는 특성이 있다.
또한 그라놀라스는 M7과 비교해 가격 매력이 부각되는 점이 있다. M7의 주가수익률 비율(PER)이 30배를 넘는 것에 비해 그라놀라스의 PER이 20배 수준에 지나지 않아, M7 대비 30%가량 저렴하다. 뿐만 안니라 그라놀라스의 평균 배당 수익률은 2.5% 수준으로, M7의 0.3%를 크게 상회한다. 골드만삭스는 “그라놀라스는 주주 가치에 중점을 두고, 상대적으로 높은 배당을 지불한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점은 유럽의 경우, 미국과 달리 경제 성장이 부진하고 유동성 유입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그라놀라스는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이미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기술적 경기 침체에 진입했고,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작년 4분기에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역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 또한 2분기 연속 제로 성장을 기록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펀드조사업체 EPFR에 따르면 유럽증시는 자금 유출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들어서만 8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미국증시로 13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것과 대비된다.
이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유로스톡스600지수가 앞으로 15% 가량 하락하면서 10월까지 420선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경기민감주는 경기방어주보다 10%나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유럽증시 주변 환경이 이처럼 낙관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라놀라스는 패시브 펀드의 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벤치마크 지수업체 윌셔 인덱스의 필립 로울러 시장 리서치 책임자는 “더 많은 자금이 패시브 투자 상품을 통해 시장으로 유입됨에 따라 더욱 많은 자금이 대형주로 몰릴 것”이라며, 이러한 경우 그라놀라스의 성공이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그라놀라스가 “패시브 투자로의 구조적 전환으로부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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