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MWC 주제인 ‘미래가 먼저다’에서 일컫는 미래란 인공지능(AI)이었다. AI는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통신·모바일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글로벌 빅테크와 해외 통신사들은 나란히 AI를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SKT)·KT·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도 나란히 화두로 AI를 점찍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4에서 주요 기업들은 각 사의 다양한 기술·서비스이 AI와 융합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삼성전자·SKT·KT 등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전시관을 차리고 이런 패러다임을 선도했다.
MWC 전체 강연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이었다. 구글의 생성 AI ‘제미나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하사비스 CEO는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AI의 발전이 매우 빨라져 약 10년 후에는 AI가 스스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AI가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추론을 통해, 그간 답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AI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각 기업 전시관에서도 AI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 화웨이는 ‘통신 파운데이션 모델’을 발표했다. 통신사에 특화한 AI 기반 모델이다. 화웨이의 역할·시나리오 기반 지능형 애플리케이션(앱)이 신속한 서비스 준비, 개인화된 사용자 경험 등을 지원한다. 전시관에선 이 모델을 적용한 통신사 AI 챗봇과 대화하면서 고객 기기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을 시연하기도 했다.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통신사들이 자사 솔루션을 바탕으로 한 AI로 어떻게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지 소개했다. 대표적인 협업 사례로 SKT와 LG유플러스를 내세웠다. IBM은 자사 생성 AI 플랫폼인 ‘왓슨x’를 내세워 통신사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각종 사례를 소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로 보이스피싱을 감지하는 ‘애저 오퍼레이터 콜 프로텍션’을 중심으로 생성 AI가 보다폰·BT그룹 등 글로벌 통신사 서비스와 어떻게 융합했는지 알렸다. 독일 도이치텔레콤, 중국 차이나텔레콤, 일본 KDDI 등 해외 통신사들도 자체적인 생성 AI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AI를 스마트폰·로봇과 결합한 ‘온디바이스 AI’를 시연하는 데 집중했다.
SK텔레콤(SKT)·KT 등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AI를 미래 먹거리를 넘어 실질적인 수익원으로 삼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통신 서비스 전역에 AI 기술을 접목, 글로벌 통신사로 거듭나겠다는 포석이다. 실제 SKT는 AI 서비스 ‘에이닷’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AI 컴퍼니’ 전환을 선언했다. KT는 정보통신기술(ICT)과 AI를 강조한 ‘AICT’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LG유플러스 역시 “올해 상반기 중 생성 AI 모델 ‘익시젠’을 공개할 것”이라며 AI 사업 확대를 예고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온디바이스 AI’도 크게 부각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공개한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 ‘갤럭시S24’ 시리즈를 MWC에서도 선보였다. 특히 AI를 접목한 스마트 반지인 ‘갤럭시 링’을 전격 공개하며 온디바이스 AI 폼팩터(제품 외형) 확장에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올해 안으로 스마트폰 등에 적용된 ‘갤럭시 AI’를 갤럭시 링에도 접목할 예정이다.
샤오미·아너 등 중국 제조사들도 온디바이스 AI를 접목한 신규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내세우며 삼성전자와의 맞대결을 예고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샤오미14 울트라’를 공개하며 검색어만으로 사진을 찾아주는 AI 사진 검색 기능과 실시간 음성 번역, AI 사진 편집 기능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아너는 사용 앱들의 손쉬운 연동을 도와주는 ‘매직 포털’ 기능을 도입한 스마트폰 ‘매직6 프로’로 눈길을 끌었다.
ICT 기업들의 글로벌 협력에도 열풍이 불었다. ‘AI가 ICT를 먹어버렸다’는 말이 나올 만큼 AI 시장이 급속히 팽창한 가운데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서로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엔비디아·암(Arm)·소프트뱅크·MS 등 통신·소프트웨어 기업 10곳은 MWC 개막 첫날 6세대 이동통신(6G) 기술 연구와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는 ‘AI-무선접속망(RAN) 연합(얼라이언스)’ 공식 출범을 알렸다. 이들은 AI를 무선통신 기술에 적용해 서비스 혁신을 선도, 통신망 효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6G 연구 추진과 생태계 확장을 주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찰리 장 삼성리서치 6G연구팀장(상무)은 “AI와 6G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사람들이 기술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글로벌 통신(텔코) AI 얼라이언스(GTAA)’도 창립총회를 열었다. 초거대언어모델(LLM) 공동 개발을 위해 SKT와 독일 도이치텔레콤, 아랍에미리트 이앤그룹 등 전 세계 통신업계가 참여하는 단체다. 구글·메타 등 빅테크에 대항하고자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텔코 AI’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유영상 SKT 대표는 통신사 AI 연합체인 GTAA가 글로벌 스케일로 가는 지름길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국내외 통신사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국내 이통사 대표들과 스페인 최대 통신사인 텔레포니카 경영진은 잇달아 협업을 제안하며 앞으로 다양한 합종연횡을 예고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6일 오전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과 만나 삼성전자 주요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최 회장은 노 사장을 향해 SKT가 GTAA 창립총회를 열고 통신사 특화 AI 모델을 개발하기로 한 것을 언급하며 “나중에 따로 한 번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영섭 KT 사장도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갤럭시 링과 갤럭시 AI 기능을 확인했다.
다음 날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한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도 노 사장에게 “AI를 통해 고객 편의성을 높이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삼성과 좋은 것을 만들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앙헬 빌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비롯한 텔레포니카 임직원도 오전 일찍 전시관을 방문해 갤럭시 링과 갤럭시S24 시리즈 등을 둘러보면서 노 사장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중국 기업들의 존재감도 컸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4’에 불참한 화웨이·샤오미 등은 MWC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행사장 곳곳에 차린 대규모 부스에서 각종 신기술을 전시하며 관람객들 시선도 끌어모았다.
올해 MWC에서 가장 큰 규모(9000㎡·2722평)의 전시관을 차린 화웨이는 5세대 이동통신(5G)보다 10배가량 빠른 5.5G 관련 기술을 대규모로 선보였다. 화웨이는 중국 베이징·상하이 등에서 5.5G 네트워크를 시범 구축했는데, 이번에 이를 구현하는 화웨이의 저전력·초광대역 장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올해 5.5G가 본격 상용화될 것으로 보고 관련 시장을 선점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샤오미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물론 전기차 ‘SU7’까지 선보이며 자사 제품 간 연결성을 강조했다. 샤오미의 올해 MWC 슬로건인 ‘인간(Human)X자동차(Car)X집(Home)’를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이었다. 자체 운영체제(OS)인 ‘하이퍼OS’를 축으로 스마트폰·스마트워치·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에서부터 가전제품, 전기차까지 샤오미가 제조하는 모든 제품이 이루는 생태계를 내세웠다.
‘짝퉁’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국 기업이 IT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레노버가 소개한 세계 최초 투명 디스플레이 노트북은 화면 너머로 반대편에 놓인 사물이 훤히 보여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레노버 산하 모토로라가 전시한 벤더블 스마트폰도 자유롭게 접을 수 있는 폼팩터로 디스플레이 미래를 제시했다. 아너가 ‘매직6 프로’에 적용한 시선 추적 기술, 샤오미와 테크노가 나란히 선보인 4족 보행 로봇 개, 테크노가 개발한 화면을 펼치는 슬라이더블 스마트폰 등도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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