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영어 제목은 ‘Past Lives’이다. 한자로는 전생(前生), ‘지나간 삶’이라는 뜻이다. 전생(轉生)으로 읽으면, ‘다른 것으로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이 같은 의미를 종합하면, ‘패스트 라이브즈’는 두 남녀가 지나간 삶을 추억하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영화다.
28일 오후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해성(유태오 분)과 나영(그레타 리)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현재 이 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고 있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상태다.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으로 투자ㆍ배급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화를 지탱하는 큰 줄기는 인연(因緣)이라는 단어다. 영화에서도 인연은 한국말로 발음된다. 영화는 해성과 나영의 인연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사유적인 관점으로 포착한다.
이날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은 “인연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며 “인연이라는 감정은 전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 감정에 이름이 없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나영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끊어진다. 12년 만에 우연히 연락이 닿은 두 사람은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끊어진 인연을 복구하지만, 그 시간도 잠시일 뿐이다.
다시 12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사이에 나영은 미국 남자와 결혼한 뒤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해성은 휴가를 내서 나영을 만나러 뉴욕에 오고, 두 사람은 24년 만에 재회해 이틀간의 짧은 만남을 즐긴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동사로 표현한다면, ‘흐르다’일 것이다. 카메라는 롱테이크(long take : 길게 찍기)를 통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을 분절하지 않고 포착한다. 또 카메라는 인물들을 유영하듯이 포착하는데, 이 같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흐르는 시간의 속성을 닮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은 계속 이어진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영은 집으로, 해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때 카메라는 패닝 숏(panning shot : 수평으로 이동하며 찍기)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공항으로 떠나는 택시에 탄 해성의 모습으로 끝난다. 이 장면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패닝 숏으로 촬영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영의 장면 역시 이와 같다. 셀린 송 감독은 “왼쪽이 과거라면 오른쪽은 미래”라며 “나영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해성이도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연출 포인트를 짚었다.
끝으로 그는 “누가, 언제 보는지에 따라서 감정이나 바라보는 시각이 전부 다르다고 생각한다”라며 “인디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기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인연이라는 감정을 형상화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내달 6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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