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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이 성장이 멈춘 좀비기업 등을 적극적으로 상장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의 호응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상법 개정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도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곳은 적극적으로 퇴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기업의 퇴출은 법 개정 사안이 아니라 관련 요건을 수정해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면 된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가령 별다른 성장을 못하거나 재무지표가 나쁜 기업 중 10년 이상 그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곳들이 있다”며 “그런 기업을 과연 계속 상장기업으로 두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좀비기업이 퇴출돼야 미래가 있는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는 등 자본시장의 자원 왜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원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미흡한 주주 환원 정책을 주가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 최근 10년 동안 한국 기업들의 평균 주주 환원율은 29%로, 미국(91%)은 물론 다른 선진국 평균인 67%에도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감원 차원에서 주주 환원 제고 방안과 함께 주주총회 내실화, 주주와 이사 간 소통 촉진 등 세계적인 기준에 걸맞은 기업 지배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각오다. 이 원장은 “외국은 기준배당이 활성화돼 있고 자사주 소각 등 기업 문화가 잘 정착됐다”며 “1년에 한 번만 하는 배당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분기 배당 등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 원장이 경영권 방어 등과 관련한 상법 개정 등의 필요성을 언급한 부분이다.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번에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강조한 만큼 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원장은 “기업 경영권 확보나 적절한 승계 장치에 대한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제도 마련과 이를 전제로 한 상법 개정, 자본시장법상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도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도입 여부에 대한 공론화부터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기업이 자사주 외에 뾰족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 무턱대고 자사주 소각에 나서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해법으로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도입 등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원장은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일본도 짧게 봐도 3년, 길게 보면 10년 이상 여러 가지 정책을 한꺼번에 진행했다”며 “아직 논의 중인 내용을 말하는 것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드맵이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이 밝힌 성장 여력과 재무 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는 기업을 빨리 증시에서 퇴출시키는 방안도 결국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한 조치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상장사의 밸류업을 위해서는 결국 투자자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지 작업 차원에서라도 좀비기업을 솎아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이 국내 자본시장 성장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강력한 권유와 유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금융권 자율 배상안과 관련해 “(판매사가) 과거 잘못에 대해 금전적으로 배상해준다고 해서 그 잘못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없지만 과거 잘못을 상당 부분 시정하고 책임을 인정해 소비자 내지 이해관계자에게 적절한 원상 회복 조치를 한다면 원론적으로 제재 감경 요소로 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쟁조정안 수용 가능성을 높이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축소하는 측면에서 제재 및 과징금에 반영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ELS 손실 분담 가이드라인은 다음 달 9일 전후로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운용사에 대한 인센티브도 언급했다. 이 원장은 “증권사에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허용한 것처럼 자산운용사에 대해서도 성장할 수 있는 요소를 폭넓게 고민해 상반기 중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신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 회사들이 위법행위를 저질렀을 때 정부나 연기금과 거래할 수 없도록 공적 사업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를 하려면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만큼 금융투자 회사의 불공정거래, 불완전 판매, 이해 상충, 고객 이익 유용 등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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