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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코스피 종목을 더 산다고 증시가 오를까요? 반짝 상승에 그칠 수 있습니다. 장기 상승세, 탄탄한 주가 흐름을 유도하려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합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랩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한국 증시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한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웬만한 기업의 대주주로 자리한 국민연금이 이들의 지분을 더 늘리는 게 쉬운 선택지가 아닐뿐더러 실행되더라도 증시 부양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꼬집은 것이다. 주식 투자 확대도 중요하지만 주가 관리 차원에서 연기금이 일종의 메기 역할을 할 필요성을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국민연금은 삼성전자(005930)(7.35%), SK하이닉스(000660)(7.74%), LG에너지솔루션(373220)(5.76%), 현대차(005380)(7.35%), POSCO홀딩스(005490)(8.43%) 등 국내 다수 대기업의 1~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로 넓혀보면 주식 투자한 국내 기업은 약 1200곳, 금액은 총 148조 원에 이른다. 전체 기금의 14%가량을 국내 증시에 투자했다. 다만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 투자를 줄이는 추세다. 3년 전인 2020년만 해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전체 기금의 21.19%에 달했다. 투자 비중이 6%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일본의 공적연금(GPIF)이 맏형 역할을 하며 도쿄 증시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연금 내 기금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르웨이 연금의 경우 핵심 기업에 대해서는 직접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시장에 제시하는데 이것이 기업가치 상승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은 이전 대비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보면 2020년에는 찬성 비중이 84.02%로 높았지만 그 비중은 2021년 83.13%, 2022년 76.33% 등으로 매년 하향 추세다. 그러나 아직도 단순 찬성하는 비율이 압도적인 데다 외부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방패 삼아 대주주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여전하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모든 기업의 이슈를 챙길 수 없는 만큼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참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우리 증시가 밸류업되려면 연기금이 기업에 시어머니로서 해야 할 역할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수탁자 행동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를 개정해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기업을 압박하도록 한 것이나,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상장사 발굴을 위해 위탁 운용사를 선정하기로 한 것 등은 달라진 국민연금 역할론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투자 기업의 가치 제고를 유인해 수익률을 높이면 고갈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실제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을 5년 늦출 수 있다. 영국 행동주의 팰리서캐피털은 지난달 국민연금에 ‘한국 주식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5배 수준으로 높아지면 수급자 1인당 1200만~1500만 원의 가치 상승 효과가 있다’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권한이 확대되는 만큼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밸류업에 발맞추면 자체 운용 독립성을 훼손당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만일 국내 주식 투자를 늘려 수익률이 낮아질 경우 이에 대한 비판도 감수해야 해 예민해진 분위기다. 정부가 국민연금 의결권을 활용해 민간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고위 인사는 “정부가 국민연금에 국내 주식 투자 확대를 주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며 “연기금의 투자로 증시가 개선되는 방향이 아니라 증시가 개선 기미를 보이면 국민연금이 투자를 늘려 연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게 자연스럽고 맞는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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