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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H지수 ELS 사태 근본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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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은 칭찬받기 힘든 업무다.” 이는 유명한 중앙은행 연구자인 굿하트(C. Goodhart)가 한 말이다. 굿하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금융감독이 칭찬은커녕 욕을 얻어먹기 십상인 업무라는 사실은 누구든 쉬이 인정할 수 있다. 금융감독 기구가 감독을 너무 까다롭게 하면 금융기관은 시간과 노력을, 같은 얘기지만 비용을 더 많이 들여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감독기구에 대한 금융기관의 불평이 늘어날 것이다. 거꾸로 감독기구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금융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그 위험성이 현실화하면 금융의 기능이 위축되어 실물 부문이 불리한 영향을 받고, 사고 뒤처리를 위한 사회적인 비용도 대규모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금융감독기구는 국민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금융감독원이 발간한 <금융감독 개론>에 따르면 금융규제(regulation)란 경제주체의 행위에 대한 기본 규칙을 사전에 수립하는 것이고 금융감독(supervision)이란 경제주체의 행위를 사후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 규제와 감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둘의 경계를 짓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현실에서는 금융감독이라는 개념을 규제와 감독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며, 여기에서도 이에 따른다. 최근 금융감독(규제와 감독)에 대한 국민의 비난 목소리가 크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새마을금고 예금 인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같은 잇단 금융 사고가 명백한 금융감독의 실패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 사태를 보자. 홍콩 H지수란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기업 가운데 우량주를 골라서 지수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 지수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일종의 파생금융상품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이다. 금융기관들은 이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고객에게 팔았다. 이 상품이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홍콩 H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이 대규모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2월 16일까지 만기가 돌아온 상품 1조2117억 원 가운데 6558억 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이데일리 2024.2.19.). 손실률은 무려 54%이다. 그런데 이 상품의 총판매액은 19.3조 원에 이르고 그 가운데 15.4조 원이 올해 만기가 돌아온다. 앞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 손실 사태는 금융감독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준다. 첫째, 이 사태가 일회성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2019년에도 외국 금리 연계의 파생결합펀드(DLF), 파생결합증권(DLF)에서 유사한 금융 사고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금융감독 당국은 개선방안을 발표했고 은행연합회와 함께 모범규준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당국의 대책이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음을 이번 홍콩 H지수 ELS 사태가 보여준다. 더욱이 최근의 금융 사고들은 그 원인 면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키코 사태, 28조 원가량의 공적자금 투입을 부른 2011년의 저축은행 부실 사태, 각종 사모펀드 사태, 더 멀리는 2000년대 초의 카드대란에도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둘째, 왜 이렇게 복잡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품이 계속 팔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름도 생소한 ELS, DLF, DLS는 일종의 파생금융상품으로 위험도가 매우 높고 상품을 판매하는 창구 직원들도 그 구조를 고객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기 쉽지 않을 만큼 복잡하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이 2023년 11월에 발표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이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계좌 수로는 21.6%이고 금액으로는 30.5%이며 1인당 평균 투자 금액은 7천만 원 정도이다. 위험하고 복잡한 상품의 판매는 고객이 상품 구조와 특성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지식, 그리고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가 성립하는 조건에서 상품 판매가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복잡하고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은 공정성까지 의심받아 왔다. 예를 들어 2019년에 판매했던 외국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수익구조를 보면 이 상품의 불공정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에 따르면 이 상품에 대해 고객은 4.93%의 수수료를 미리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3.43%는 상품을 설계한 외국계 투자은행에, 1%는 판매를 맡은 은행에, 0.39%와 0.11%는 펀드 운용을 맡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돌아갔다. 외국계 투자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수익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의 금리나 주가에 연계한 파생금융상품의 수익구조가 서로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홍콩 H지수 ELS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기관들은 그러한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했고 금융감독 기구는 그것을 규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금융감독 기구가, 교과서에서나 성립할 법한 전제, 곧, 고객이 상품 구조와 특성, 거기에 더해 수수료 구조까지 완전히 이해하고 투자한다는 전제가 현실에서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금융기관에 대해 어떤 상품이든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준 데 있을 것이다.

셋째, 금융감독 기구가 금융기관의 이해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9년에 DLS, DLF 사태가 일어나자 금융위원회는 그해 11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큰 상품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정하고 그러한 상품을 은행이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월에 내놓은 최종안에는 은행 판매를 사실상 계속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여기에 은행권의 압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를 계기로 홍콩 H지수 ELS의 판매도 증가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금융감독 기구가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보다 금융기관의 특수한 이익에 기울어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핵심성과지표(KPI)가 금융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여러 은행들은 비이자수익(수수료)을 올린다는 명목으로 영업점 직원들에 대해 성과지표까지 만들어서 펀드 상품의 판매를 독려해 왔다. 영업점 직원들은 스스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고위험·고난도 파생금융상품을 무리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판매할 수밖에 없었는데, 은행 경영진이 판매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금융 사고가 나면 금융감독 기구는 사고 원인을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 판매’로 몰고 가면서, 그 책임을 영업점 직원 탓으로 돌린다. 홍콩 H지수 ELS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사고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규제했어야 할 상품의 판매를 허용한 데 있으며, 따라서 그 책임의 대부분은 금융감독 기구에 돌아가야 한다.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세력 편향적인 우리나라 금융감독의 틀

우리나라 금융감독 기구에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행 금융감독 기구의 틀을 살펴보아야 한다. 현행 금융감독 기구의 틀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IMF(그리고 사실상 IMF를 뒤에서 움직인 미국)는 외환위기 때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여러 가지 이행 조건을 달았다. 거기에는 금융감독 기구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IMF가 우리나라에 제시한 이행 조건들은 대체로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상황을 잠시 복기해 보자.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 금융기관들의 중개로 국제 금융기관에서 대규모 투자자금을 차입했다. 이 투자의 많은 부분이 나중에 부실로 드러나면서 국내의 여러 기업들과 나아가 금융기관들까지 어려움에 빠졌다. 이들 기업들은 국제 금융기관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기 어려워 부도를 낼 처지에 놓였다. 이른바 시장 논리에 따른다면 사적인 기업들 사이에서 발생한 자금 거래 관계는 당사자들끼리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만약 기업들이 투자 실패로 실제로 차입금을 갚지 못한다면 돈을 빌려준 국제 금융기관들이나 이를 중개한 국내 금융기관들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국내 금융기관들마저 차입금 상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면 최종적인 책임은 국제 금융기관이 져야 한다.

그러나 국제 금융기관들은 시장 논리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곧, 국내 기업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이 없었다. 국제 금융기관들의 국적이 주로 미국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미국 정부에 대해 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미국 정부는 항상 하던 대로 IMF를 앞세웠다. 문제 해결 방식의 본질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 금융기관에 진 채무를 우리나라 정부가 대신 떠안는 것이었다. 그 대신 정부가 기업들의 빚을 떠안는 데 필요한 자금은 IMF가 빌려준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구제금융 자금이다. 결과적으로 IMF가 제공한 구제금융은 떼일 가능성이 높았던 국제 금융기관들의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되었다.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제시한 조건들 가운데 금융감독 부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통합감독기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우리나라 금융감독권이 은행, 비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권역별로 흩어져 있었고, 감독 주체도 한국은행과 재경부로 나뉘어 있었다. 이를 하나의 통합된 기구로 모아서 금융감독을 수행하라는 것이 IMF의 요구였다. 여기에서 나중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은행감독 기능을 한국은행에서 떼 내서 통합감독기구로 옮긴다는 내용이다. 둘째, 금융감독 기구가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독립적’이라는 것은 금융감독 기구가 정치나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금융감독 기구가 정부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다시 얘기해서 민간 성격의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 우리나라는 IMF와 미국의 요구를 따라 금융감독 기구의 틀을 만들었다. 다만 국내 법체계상 금융감독 기구를 직접 민간기구 성격으로 설립하기 어렵다는 사정이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감독 기구는 정부 조직인 금융위원회와 민간기구 성격의 통합 금융감독원으로 구성된 혼합적인 조직 틀을 갖게 되었다. 금융감독원은 정부 조직인 금융위원회와 달리 대부분의 예산을 금융기관 분담금에 의존하고, 그 대가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구 성격의 특수법인이다. 이때 만들어진 금융감독 기구의 큰 틀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IMF는 왜 우리나라 금융감독 기구가 독립된 통합기구여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이를 헤아리려면 먼저 우리나라 주요 금융기관이 외환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계기로 외국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IMF는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거꾸로 재정 규모는 줄일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긴축의 가장 두드러진 효과는 주식,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격의 폭락으로 나타났다. 사실 IMF나 국제 금융자본은 자산의 폭락을 예견하고 긴축을 요구한 측면이 있었다. 자산 가격이 폭락하자 이 틈에 우리나라에 몰려온 외국자본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주식을 헐값에 사들였고 그 결과 메이저 상업은행이 모두 외국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구제금융 조건에는 외국자본이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외국자본의 메이저 상업은행 인수를 가능하게 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외국자본이 국내 은행을 소유할 수 없었는데 IMF는 뒤에 벌어질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금융기관들(외국 금융기관이든 국내 금융기관이든)은, 당연하지만, 까다로운 금융감독보다 되도록 헐거운 금융감독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금융감독 기구는 정치와 정부에서 독립해 있을 때, 더욱이 그것이 민간 법인 성격을 띨 때 금융기관들에 대해 더 강한 동료 의을 가질 것이고 따라서 금융감독도 더 느슨하게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은행 감독의 경우 상업은행은 그 기능이 중앙은행에 있는 것보다 다른 기구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은 상업은행들과 일상적인 거래를 지속하기 때문에 상업은행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따라서 상업은행으로서는 그러한 상황이 더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독립적인 통합 감독기구의 설립은 국내 금융기관을 장악한 외국자본의 이해와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은 정부의 간섭과 정치적 개입의 최소화를 보장하기 때문에 금융기관들과 금융시장의 주요 참가자들은 항상 이를 주장한다. 그러나 간섭과 개입의 최소화가 금융기관들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민간 금융기관의 이해에 편향된 규제의 완화와 느슨한 감독은 당연히 잦은 금융사고를 부를 것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에 벌어진 대부분의 금융사고는 규제 완화와 느슨한 감독의 결합으로 생겨났다. 금융의 이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금융감독의 틀은 결국 사회에 큰 부담을 안기기 마련이다.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타결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와 임창열 부총리(왼쪽). ⓒ연합뉴스

금융감독 이데올로기의 변화

주요 나라들의 현행 금융감독 시스템은 1980년대 이후 금융의 급팽창을 배경으로 성립한 것이다. 금융의 팽창은 자본과 노동, 금융자본과 실물 자본의 관계에서,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금융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 세력의 힘이 강해지면서 금융규제와 감독 정책에 대한 이데올로기에서도 일정한 변화가 생겨났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 곧, 규제 완화, 시장화, 민영화가 금융감독에도 배어들었다.

무엇보다 금융감독은 국가기구가 수행할 때보다 시장에 맡길 때 더 효율적으로 수행된다는 이데올로기가 널리 퍼졌다. 이 논리에 따르면 금융시장도 금융기관을 감시하는 금융감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만약 금융기관이 내부통제에 실패하여 금융사고를 낸다면 금융시장은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벌을 줄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금융사고를 낸 금융기관의 주주들은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워 버릴 것이고 그러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다. 주가의 폭락은 금융기관 경영진에 대해서는 큰 벌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금융기관 경영자들은 알아서 금융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는 시장의 규율이 잘 작동하게끔 이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 나라들에서는 금융감독과 시장규율이라는 ‘두 바퀴’ 금융감독론이 등장했다(규제, 감독, 시장규율이라는 ‘세 개의 기둥’ 금융감독론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의 특징은 시장규율을 금융감독 기구와 나란히 금융감독의 주체로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의는 금융당국의 역할을 최소 수준으로 제한하고 금융감독 기능을 되도록 시장의 자율 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당국에 의한 자의적인 금융감독의 확대가 금융기관들의 혁신 능력을 빼앗아 결국 사회적인 이익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보태졌다.

금융기관 리스크 관리기법의 혁신은 시장규율에 의한 금융감독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시장규율론자들은 대출의 증권화나 신용부도스왑(CDS) 등을 통해 개별 금융기관들의 위험을 시장 전체로 분산할 수 있는 기법,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정량적 식별을 통해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법, 자산-부채 동시 관리 기법 등을 혁신적인 리스크 관리 기법의 성과로 선전했다. 이들은 개별 금융기관들이 개발한 리스크 관리를 참고한다면 금융감독 비용을 줄이면서도 그 효과는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06년 연차보고서>도 증권화나 신용부도스왑(CDS)과 같은 신용리스크 이전 시장의 확대가 시장을 좀 더 완전하고 효율적인 방향으 가게 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하여 시장규율론자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감독능력 한계론’은 금융감독을 시장규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논리였다. 금융의 팽창은 다양한 금융혁신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지렛대 역할을 하면서 금융의 팽창 속도를 더 높였다. 이렇듯 금융 혁신이 하루가 다르게 이뤄지는 현실에서는 금융감독기구가 금융기관을 따라갈 수 없고 따라서 감독 기능을 차라리 시장규율에 넘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논리가 금융감독 한계론의 요지이다.

이러한 논리는 시장규율 주장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금융감독 기구의 입지를 키워주기도 했다. 첫째, 금융감독이 금융기관을 따라갈 수 없는 조건에서 금융 사고가 났을 때 금융감독 기구에 그 책임을 전적으로 물을 수는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했다. 둘째, 금융감독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금융감독 종사자의 급여를 최소한 금융기관 종사자만큼은 높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2008년 글로벌 위기 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금융감독 당국은 위기 가능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는 금융감독 기구가 금융기관을 못 따라간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얘기해준다.

다른 한편 ‘감독 능력 한계론’은, 민간 금융기관이 리스크 측정의 정밀화를 목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기법을 금융감독에 공식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개별 금융기관이 개발한 위험관리 기법이 공식적인 금융감독 기법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제이피 모건이 개발한 최대예상손실(VaR; Value at Risk) 관리기법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연준(Fed) 의장을 지낸 그린스펀은 2010년의 한 연설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되돌아보면서 금융당국이 새로운 문제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는지 걱정이며, 금융혁신에 의해 과거의 금융감독 기법의 틀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감독 능력 한계론’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그는 연준 감독 기능에 비해 JP 모건의 감시가 효율적이라는 인상을 갖는다고 말함으로써 민간 금융기관이 개발한 기법의 활용을 옹호했다. 은행의 위험관리를 담당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바젤위원회도 고도의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는 은행인 경우 스스로 개발한 기업신용평가를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을 시장규율에 맡기자는 주장보다 더 극단적으로 나아간 형태는 금융감독 기구의 민간 기구화 주장이다. 금융감독을 시장규율에 맡기는 것을 넘어서 아예 금융감독 기구를 민간 법인으로 설립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한 나라들에서 실제로 실험되었다. 1990년대 이후 구제금융을 받은 여러 나라들에 대해 IMF는 민간 성격을 갖는 독립적인 금융감독 기구의 설립을 요구했고 실제로 실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IMF의 요구도 금융감독 기구의 민간 기구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주장들의 핵심은 금융감독을 느슨하게 하자는 데 있다. “가벼운 터치(light-touch) 수준의 규제 감독”은 금융 세력의 목소리가 커진 시대의 금융감독 이데올로기를 대변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또 이것이 정책에 반영되면서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금융감독 기능이 점차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장규율에 대한 과신이나 리스크 관리기법에 대한 예찬은 금융감독 기구로 하여금 위험에 대한 예방적 개입을 어렵게 했다. 금융감독원이 펴낸 <금융감독개론>에서 설명하듯이 금융감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금융안정이라 할 수 있는데, 금융감독이 느슨해지면서 금융안정에 대한 중요성이 낮게 다뤄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감독을 느슨하게 하고 금융안정을 소홀히 한 총체적인 대가라 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율적인 시장규제론이 허상임을 보여주었다. 고도의 위험관리 기법이 위험을 분산시킴으로써 금융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거 없음이 드러났다. 2008년 글로벌 위기를 계기로 여러 나라들에서는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실질적인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홍콩H지수 기초 ELS의 대규모 손실 현실화로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를 중단하는 가운데 지난 1월 31일 시중은행 중 ELS를 판매 중인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의 비예금상품 판매 전담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제 개혁의 방향

우리나라 금융감독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금융감독을 강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은 금융감독 체제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큰 방향은 금융감독 기구가 국민의 비판을 많이 받는 쪽보다 금융기관의 불평을 많이 듣는 쪽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금융감독 기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내용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해 있는 구조를 일원화하자는 것, 금융위원회 업무 가운데에 포함된 금융산업 육성 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보내자는 것,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관리하는 기능과 금융기관 행위규제를 관리하는 기능을 분리하자는 것 등이다. 이러한 내용의 금융감독 기구 개혁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구상해야 한다.

금융감독 기구 개혁의 핵심은 민간 기구로서 갖는 그 성격을 바꾸는 데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감독 기구가 금융기관의 특수한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금융감독 기구가 정치와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이 금융기관 이익 친화적인 금융감독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금융감독원을 반관반민 상태로 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금융감독원 예산을 계속 금융기관 분담금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분담금을 받아 운영하면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2022년 기준 분담금은 2700억 원 수준이다. 그런데 금융감독이 실패하여 생긴 저축은행 사태에 들어간 공적자금 규모는 28조 원가량이다. 예산을 아끼는 것보다 금융감독을 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나란히 금융감독 기구가 공적기구로서 갖는 성격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일본의 금융감독청처럼 금융감독 기구를 세금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지난 2022년에 ‘금융감독 개혁을 촉구하는 전문가 모임(금개모)’은 금융감독 개혁을 위해 독립적인 공적 민간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명백히 과녁을 빗나간 주장이라고 본다. 금융감독 기구의 민간기구화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기획 가운데 하나이고 국제 금융자본이 가장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민간기구 성격 금융감독 기구는 금융기관의 칭찬을 받을 수는 있어도 국민의 칭찬을 받기는 어렵다.

<도움 받은 자료>

금융감독원, <금융감독 개론>, 2022.

금융감독원,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2024.2.5.

금융감독원, “홍콩 H지수 기초 ELS 주요 판매사 현장 검사 실시”,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2024.1.8.

금융위원회,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 보도자료, 2019.11.14.

김홍범, <한국 금융감독의 정치경제학>, 지식산업사, 2004.

아담 레보어, 임수강 옮김, <바젤탑>, 더늠, 2022.

윤석헌, “한국금융의 선진화: 도전과 과제”, <글로벌 금융 리뷰> Vol.4 No.1, 2023.

이데일리, “홍콩 ELS 손실은 눈덩이…금융당국은 배상안 고심”, 2024.2.19.

BIS, <2006년 연차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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