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리안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지원방안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뜸을 많이 들인 것 치곤 내용이 없다”며 아쉽다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인센티브나 페널티(불이익)가 부족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따르면, 이번 정책에는 기업 참여를 강제할 수 있는 공시 의무화 등이 빠졌다. 대신 연 1회 상장사 홈페이지 및 한국거래소를 통해 자율 공시를 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은 권고로서 자율적 사항이며,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상장사의 자발적‧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지원방안에선 중요한 유인책으로 꼽혔던 상속세 인하, 배당소득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은 제외됐다. 대신 금융위는 매년 5월 기업 밸류업 표창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표창을 받은 상장사는 선정 시 표창일로부터 3년간 세무조사 유예,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 등 5종의 세정 지원을 받는다.
당초 시장은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가 여느 때보다 강하다고 보고 이번 지원 방안에 큰 기대를 걸어 왔다. 금융주를 비롯해 완성차업체·지주사·공기업 등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주(株)들은 돌아가며 상승하는 순환매 장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막상 지원방안이 공개되니 그동안 정부가 밝혔던 내용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이 나온다. 이날 유가증권(코스피) 지수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에 1%대 하락하고 있다.
이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이 “국내 저PBR 테마는 정책 기대감으로 오를 수 있는 상승분을 초과 달성했다”면서 “저PBR 중심 증시 부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부스터할 수 있는 매크로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기업의 효율적인 자산 배분을 유도할 수 있는 건 장기 업황 성장성”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진행된 밸류업 지원방안 관련 브리핑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세제 혜택 효과, 지배구조 개선 등 주요 쟁점 관련 질문에 “아직 확정된 바가 없고, 지속해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답을 되풀이했다. 오는 3분기 공개되는 기업가치가 우수한 상장사를 모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참여하는 기업 수가 적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처음에는 많은 기업을 포함시키지 못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은 PBR이 낮은 기업들을 줄 세워 부양책을 찾게 만드는 정도의 강제력 있는 방안을 기대한 모습”이라면서 “그러나 금융위가 이번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기업 밸류업은 한두 가지 조치로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하는데, 사실상 실효성이 크게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융위는 자율적 권고에 대한 이같은 지적에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율적으로 수립·공시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는 일본 사례와 유사하다”면서 “다만 우리 기업 현황에 맞게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고, 다양한 인센티브와 지원체계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적극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와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 간의 간극은 우려했던 것보다 크다”며 “1월 24일 이후 상승분의 60%를 되돌린다면 KOSPI는 최대 2560선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저PBR주들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수치라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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