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업계가 지난해에도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코로나19 이슈에서 완전히 벗어난 한 해였지만 이마트와 롯데마트 모두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대형마트의 장점으로 여겨겼던 신선식품 카테고리조차 이커머스에게 잠식당하면서 대형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을 모바일로 돌려놨다는 분석이다.
텅 빈 대형마트
대형마트업계는 ‘애프터 코로나’ 수혜를 입지 못한 대표적인 업종 중 하나다. 지난해 이마트는 연결기준 영업손실 469억원을 기록하면서 2011년 인적분할 이후 첫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가장 큰 요인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1878억원의 손실을 낸 신세계건설이었지만 마트만 떼 놓고 봐도 ‘부진’ 꼬리표를 떼긴 어렵다.
이마트의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은 15조14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022년 2586억원에서 1880억원으로 27.3% 급감했다. 연초 6%대 성장을 자신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성적표다.
롯데마트도 매출이 2022년 5조9043억원에서 지난해 5조7347억원으로 2.9% 감소했다. 그나마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해외 마트 매출이 각각 2.5%, 11.2% 성장한 덕에 매출 하락 폭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마트 부문만 놓고 보면 전년 대비 5% 넘게 하락했다.
다만 롯데마트의 경우 ‘영업이익 개선’이라는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 2021년 320억원 적자에서 2022년 484억원으로 흑자 전환하더니 지난해엔 873억원으로 흑자폭을 배 가까이 키웠다. 회계연도가 3월에서 이듬해 2월인 홈플러스는 2023년도 실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마트 안 가는 이유
국내에 이커머스가 뿌리내리기 전, 대형마트업계에서는 이커머스의 성장이 공산품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선식품이나 냉장·냉동식품의 경우 배송이 까다롭고 품질 검수·관리가 어려워 소비자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역시 ‘먹는 건 직접 보고 골라야 안심’이라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나날이 성장하는 이커머스에 대한 대형마트의 반격은 대부분 ‘신선식품 강화’로 결론이 모였다. 전체 매장 면적에서 신선식품 비중을 높이거나 매장에서 직접 굽는 빵과 피자 등을 판매하는 식이다.
하지만 쿠팡이 저녁에 주문한 식품을 다음날 새벽까지 배송해 주는 ‘로켓프레시’ 서비스를 내놓으며 판도가 바뀌었다. 신선도가 대형마트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고 품목도 다양했다. 현재 로켓프레시는 로켓배송, 마켓플레이스와 함께 쿠팡의 주 성장동력 중 하나다. 지난해 3분기 로켓프레시의 성장률은 30%를 웃돌았다.
대표적인 신선식품 플랫폼 컬리의 성장도 대형마트엔 악재였다. 컬리는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1조5463억원을 기록했다. 2년 연속 매출 2조원 돌파가 가능할 전망이다. 최근엔 정육각, 미트박스 등 육류만 전문으로 다루는 플랫폼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도 다시 ‘식품’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대형마트의 주말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대형마트가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규제를 만들 때는 대형마트가 성장하던 시기였지만, 이제는 규제를 풀어 줘야 생존이 가능할 정도로 위상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대형마트가 ‘모든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파는’ 방식이 아닌 특화 매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해 물류·관리 등에 드는 비용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그만큼 상품 구성을 깊게 가져가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말 롯데마트가 서울 은평구에 연 ‘그랑 그로서리’가 대표적이다. 그랑 그로서리는 전체 상품 중 식료품 비중이 90%에 달하는 식품 특화 매장이다. 단순히 식품 구성을 늘리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닌, 이커머스의 신선식품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강화해 ‘매장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
그랑 그로서리에서는 매장에서 직접 조리하는 델리 메뉴를 전면에 내세웠다. 스마트팜과 샐러드존에서는 유러피안 채소를 뿌리째 판매한다. 육류 코너에선 드라이에이징 전용 숙성고를 설치해 고급육 수요를 챙겼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싸게 판다는 ‘할인점’ 이미지만으로는 쿠팡, 알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최근 대형 쇼핑몰 업계에서 불고 있는 ‘쇼핑 경험’에 대한 고민이 대형마트 업계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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