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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가를 핵심 산업으로 주목 받으면서 AI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반도체 업종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질좋은 제품을 높은 수율로 생산해내기만 하면 성장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의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도체 ‘게임의 룰’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1일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업계가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역시 미국의 견제 속에서도 나름의 활로를 뚫고 있다”며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자칫 미·중·일 사이에 끼인 ‘넛크래커’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미국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시행하면서 자국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005930) 등 해외 기업에도 보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1억6200만 달러), 글로벌파운드리(15억 달러) 등 자국기업에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 영국 BAE시스템즈도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금액이 35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미국이 자국기업에 선(先) 보조금 집행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우선 자국 중심으로 보조금을 집행해야 표 밭을 지키는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보조금 집행 계획 자체가 아예 무산될 수도 있다. 시설투자자금 한 푼이 아쉬운 삼성전자로서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반도체 전략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는 셈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발표한 2024년 반도체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공격적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3%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SMIC와 화홍반도체 등 중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구형 반도체 장비로 생산할 수 있는 28나노 이상 공정 기반의 반도체 생산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조사 업체 IDC도 중국의 파운드리 점유율이 지난해 27%에서 2027년에는 29%로, 반도체 외주 패키징(OSAT) 점유율은 22.1%에서 22.4%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거센 견제에도 중국이 레거시(구형) 반도체 제품을 중심으로 자급자족에 일부 성과를 거뒀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힘겨루기 양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삼성전자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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