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힘이 있다. 사실이 ‘건국전쟁’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건국전쟁’은 포스터에도 나와 있듯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사실을 알려준다. 토지개혁,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동맹, 여성참정권 도입, 교육투자 등등 이승만이 도입한 정책은 신생 대한민국의 뼈대이자 근육이고 핏줄이었다. 이런 것들이 서로 든든하게 받쳐 주고 얽혀져서 대한민국은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웬만한 나라 부끄럽지 않은 나라로 자라났다.
‘건국전쟁’은 이 외에도 많은 사실을 알려준다. 이승만은 6·25 때 시민보다 먼저 도망간 겁 많은 지도자가 아니었으며, 한강철교 폭파를 명령해 피란하던 시민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지도 않았다. 3·15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지시한 야비한 정치인도 아니었고, 돈을 빼돌려 남몰래 망명길에 오른 부패한 건국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오히려 김구가 북한 김일성의 위세에 눌린 겁쟁이였음도 몇 가지 증거로 보여준다. 그 김일성 또한 국군과 유엔군이 전세를 뒤집자 가족을 중국으로 먼저 보내고 자신도 따라 도망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정작 이승만은 만에 하나 잘못되면 부인과 함께 스스로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장엄한 각오로 침실에 권총을 놓아두고 있을 때였다.
사나흘이면 사라질 영화, 관객이 5만 명만 들어도 다행이라고 생각됐던 ‘건국전쟁’이 개봉 20일을 맞았을 뿐 아니라, 누적 관객 70만 명을 넘어서고, 개봉 첫 며칠 동안에는 옛날 군대 건빵 봉지 속 별사탕 마냥 드문드문, 찾기 어려웠던 상영관이 900개 이상으로 폭증했는데도 예약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된 건 이처럼 증거가 확실한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건국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이 영화를 더 많은 한국인이 보고 그 결과로 한국의 역사가 바로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정신 못 차리는 늙은 우중(愚衆)으로만 생각하는 이 비판자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이승만의 과(過)는 감추고 공(功)만 드러냈다고 말한다. 과와 공을 같이 보여줘야만 균형 있는 영화가 아니냐는 것이다.
비판자들의 이런 주장은 그들이 여태 해온 교활한 언술일 뿐이다. “편파를 바로잡으려면 또 다른 편파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로 이런 비판을 재비판할 수 있다. 편파가 워낙 지독해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림칙한 김어준과 싸우려면 행여 그의 말에 아주 조금 옳은 게 있다 하더라도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지만…”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는 워낙 엉터리라 옳은 말을 해도 못 믿겠어. 그렇게 알고 내 말을 들으라고”라며 꾸짖기부터 해야 옳지 않나?
이승만의 과만 들춰내려는 비판자들은 기울어진 천칭(天秤)을 보여주며 비판할 수 있다. 접시 왼쪽이 9㎏, 오른쪽은 1㎏이어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천칭의 균형을 맞추려면 1㎏인 쪽에 9㎏을 올려야 한다. 10㎏인 쪽에는 단 1g도 올려서는 안 된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우선은 그렇게 해야 균형이 잡히고 그때부터 새로 논쟁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승만의 공과를 측정한 천칭의 좌우 무게는 9㎏ 대 1㎏보다 훨씬 더 불균형 상태일지 모른다. “이승만은 선거에서 언제나 기호 1번을 차지,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 같은 엉터리 헛된 주장이 왼쪽 접시에 잔뜩 놓여 있다는 말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박태균 교수가 공공연히 꺼내든 이 주장은 이승만 연구를 깊게 한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송재윤 교수가 한순간에 깨부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은 단 한 번도 기호 1번으로 출마한 적이 없다. 송 교수는 증거로 예전 여러 선거 포스터 사진도 제시했다. 이승만이 기호 1번인 포스터는 없다. 박 교수는 무엇을 근거로 이승만은 항상 기호 1번이었다고 말했는가? 이런 날조는 왜 생겨났나?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이의 조종을 받는 무뇌인간처럼 누구의 조종을 받은 건가? 그는 송 교수의 반박에 재반박하지 않고 있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잠깐,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을 교수라고 부르는 게 옳은가? 특히 역사를 가르친다는 사람이 역사 왜곡/날조를 태연히 자행하는 걸 보고 있어야 하는가? 다큐멘터리 감독이 3년 만에 찾아낸 이승만의 알려지지 않은 인간상을 대한민국의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이승만 사후 수십 년간 왜 찾아내지 못했는가, 아니면 일부러 외면했나? 이런 생각을 품고 영화를 계속 본다.
영화에는 이승만이 4·19로 자신을 하야하게 한 학생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자유를 침탈당한 불의를 못 참고 궐기한 학생들이 자랑스럽다는 그의 생각은 당시 대만 총통 장개석의 위로 편지에 보낸 답장에도 나온다. “나를 위로하지 마시오. 우리 청년들이 불의를 보고 가만있지 않았으니 4·19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 혁명이었소.” 이 편지는 정부를 수립한 직후부터 그가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한 자유민주주의가 불과 12년 만에 자신을 무너뜨리는 큰 물결로 되돌아왔음을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이와 반대의 역설도 있다. 3공화국 이후의 정부가 북쪽의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 공부를 억눌렀기 때문에 종북 운동권이 태어났고 그들을 탄압할수록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그들의 이념도 더욱 강해져 결국 지금의 좌우 극단적 대립이 초래됐다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사학, 전 러시아대사)의 분석이 바로 그 반대의 역설이다. (곧 구순이 되는 이 교수 역시 한국 현대사 강의를 통해 이승만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는 데 생의 ‘마지막’ 노력을 쏟고 있다.)
이 두 역설을 놓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제대로 된 가치를 제대로 교육하면 보기 좋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는다. 그러나 엉터리 가짜 가치를 음습하게 가르치고 배우면 독버섯 혹은 곰팡이가 자란다.
사실 ‘건국전쟁’은 사실을 기초로 한 좋은 다큐멘터리이나 완성도는 떨어진다. 감독 혼자서 모든 것을 도맡아 한 결과다. 장면 장면의 연결과 설명이 더 자세하고 매끄러운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 과정 기록물이 나오면 좋겠다. 편파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공영방송이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양쪽 대표선수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대토론회를 해보든지. 그러면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이승만의 공과 과는 무엇인지, 대한민국이 태어나야 할 나라였는지 아니었는지 명확히 가릴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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