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해외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내 금융계에도 후폭풍이 일고 있습니다. 관련 자산에 수십조 원을 투자한 금융회사들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고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들도 손실 위기에 놓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제2의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이하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금융당국은 만기가 분산돼 ELS와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불안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올해 금융시장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해외부동산 투자 현황 및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는 55조 8000억 원에 달합니다. 이중 25% 규모인 14조 1000억 원이 올해 만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금융지주사들은 수조 원대의 투자금액을 보유 중입니다. KB금융그룹은 최근 컨퍼런스 콜에서 “해외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약 5조 원 수준”이라고 밝혔고 신한금융지주 역시 지난 8일 해외부동산 투자자산이 4조 1000억 원 규모라고 전했습니다. 우리금융지주도 약 3조 원 가량 됩니다. 보수적 특성상 선순위 대출이 많아 상대적으로 위험은 적다는 설명입니다.
반면 금융투자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을 해외부동산에, 그것도 대부분 선순위보다는 후순위 대출에 묻어놨기 때문입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미래에셋·한투·삼성·NH투자·신한·하나·키움증권 등 국내 25개 증권사 해외부동산 익스포저는 14조 4000억 원 규모입니다. 미국와 유럽의 익스포저가 약 12조 원으로 대부분인 가운데 이들 증권사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8조 3000억 원 규모의 해외 부동산펀드에 대해 약 1조 8000억 원의 평가손실을 인식했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 원을 넘긴 증권사가 단 한 곳도 없는 이유입니다.
2016~2019년 당시 초저금리 시대에 해외부동산 투자는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졌습니다. 공실률이 거의 없는 해외 유명 부동산에 투자해 매년 4~5%의 배당금에 추후 건물을 판 매각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말에 너도 나도 뛰어들었지요.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돼 도심 지역 사무실 공실률이 치솟으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여기에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까지 불어나면서 부동산 투자자들은 이중고에 겪고 있는 겁니다.
통상 해외부동산은 60% 수준의 담보인정비율(LTV)을 인정한 현지 은행의 선순위 대출과 40%의 투자로 이뤄집니다. 예컨대 대출 6억 원과 투자 4억 원을 받아 10억 원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7억 원에 매각한다면 선순위 대출 6억 원을 빼고 후순위 채권자 몫은 1억 원에 불과합니다. 후순위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금의 75%인 3억 원이 고스란히 손실로 잡히는 셉입니다. 알고보면 해외부동산 투자는 고위험 투자였건 거지요.
문제는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신평 관계자는 “임차 수요 감소와 고금리 기조 지속이 해외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부동산 익스포저에 대한 추가 손실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
해외부동산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도 손실 위기에 놓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10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해외부동산 공모펀드 판매현황’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판매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규모는 총 1조 2757억 원인데 이중 개인자금이 1조 478억 원에 달합니다. 올해 만기를 앞둔 공모펀드는 총 4365억 원이고, 내년에는 3470억 원이 만기도래할 예정입니다.
이미 펀드 손실 규모는 불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파생형)’은 최근 1년 수익률이 -82%로 급락했습니다. 이 펀드는 당초 지난해 11월에서 이 달 말로 연장한 바 있는데요. 만약 만기 때까지 차환(리파이낸싱)을 하거나 다시 만기 연장을 하지 못하면 자산 처분권이 대주단으로 넘어갑니다. 이 경우 개인투자자가 투자금을 건질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다른 펀드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미국 뉴욕에 투자하는 한국투자뉴욕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1호와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11호는 수익률이 각 -32%, -33%를 기록 중입니다.
이에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 오피스 4개 동을 매입가 대비 20% 낮은 가격에 자산 매각을 완료한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9-2가 대표적인데요. 이 펀드에 투자한 한 투자자는 “공실 우려가 없어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거액을 투자했다”며 “손해 보고 건물을 매각해도 판매사는 이미 선취 수수료로 수십억 원을 챙겨 아쉬울 게 없는데 개인들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ELS는 위험하다고 해도 이미 수십년에 걸쳐 판매돼온 상품이지만 해외부동산 펀드는 당시 완전히 새로운 상품이라 판매사 설명에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 배상안 논의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입니다. 홍콩H지수 ELS는 상반기에만 10조 원의 만기가 돌아올 정도로 파급력이 크고 대부분 은행에서 판매한 만큼 성격상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있지만, 해외부동산 펀드는 규모가 크지 않고 어느 정도 투자경험과 판단능력이 있는 투자자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섭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홍콩 ELS는 홍콩H지수가 높았을 때 3년 만기로 팔아서 상반기에 만기가 갑자기 많이 돌아오고 있는 반면 해외부동산 펀드는 만기가 앞으로 몇 년동안 분산이 돼있고, 투자자들이 일부 공모펀드에 개인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 기관투자자가 많다”며 “피해규모가 상대적으로 갖고 있는 손실요인에 비해 크지 않아 손실흡수능력이 훨씬 커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선을 그었습니다.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