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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최근 수출 실적에서 중국의 비중이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압박을 피하려는 중국이 ‘레거시’(구형)에 우선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자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일본 기업들이 수혜를 받는 모습이다. 다만 미중 갈등의 긴장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1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 반도체 장비사들의 중국 의존도는 55.0%다. 관련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익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온다는 의미다. 지난해 1월 이 비중은 29.0%였다. 1년 새 급상승했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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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행사에서 중국에 높은 의존도를 언급하는 기업들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도쿄일렉트론의 고위 임원인 가와모토 히로시는 “중국의 강력한 수요가 계속되거나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웨이퍼 세정 시스템 제조업체인 스크린홀딩스의 히로에 토시오 최고경영자(CEO)도 올해 3월까지 중국 의존도는 44%로 예상돼 지난해 같은 기간(19%)보다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캐논도 올해 반도체 장비 매출 중 중국이 약 40%를 차지해 5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미중 갈등의 여파로 해석된다. 앞서 미국은 2022년 10월 미국 기술을 사용한 첨단 반도체 장비나 인공지능(AI) 칩 등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꺼내 들었다. 중국과 패권전쟁 중인 미국이 첨단반도체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장비 수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중국 견제 기조를 강화한 것이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자립에 더 힘쓰면서도 첨단 칩 생산보다는 레거시 분야로 점차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전략을 썼다. 관련 업계에서는 중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10나노 이하의 첨단보다 20나노보다 큰 레거시 공정을 우선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 악화로 고민이 깊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레거시 분야에서 활로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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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반응도 우선은 긍정적이다. 일본 업체들이 매출 증대 등 중국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일본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 지수는 2022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2배 이상 올랐다. 도쿄일렉트론, 디스코 등 관련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이 기간 약 3배 불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국가의 비중이 크게 높아질수록 리스크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대중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경우 일본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커지게 된다는 해석이다. 디스코의 IR 담당자는 “중국의 일부 전공정 수요가 정체될 수 있다”면서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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