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공대생은 ‘산삼’에 진심이다. 7년 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던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 현대차에 사표를 던졌다. 비좁은 회사 연구실 대신 76만330㎡ 규모의 산(山)으로 출근한다. 산삼 농장 관리를 맡은 부대표와 계절마다 달라지는 기온, 날씨, 토양 등에 따라 어떻게 하면 질 좋은 삼(蔘)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산 전체가 그의 연구실인 셈이다.
전자통신공학도와 산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창업을 꿈꾸던 중 찾은 스타트업 지원 행사가 시작이었다. 이곳에서 산삼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나 얘기를 듣다가 ‘이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농업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홍삼이나 인삼과 달리 아직 산삼은 대표 브랜드가 없는 틈새시장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산삼에 꽂힌 뒤에는 우연을 ‘필연’으로 세뇌했다. 양천 허씨 36대손이라는 그의 집안 족보에는 ‘허준’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조선 최고의 의학 서적으로 꼽히는 ‘동의보감’을 쓴 구암 허준이 그의 16대 선조다. 유년 시절을 서울 양천·강서 지역에서 보내며 할아버지 호를 딴 인근 구암공원에서 뛰어놀았다. 허범석 삼이오 대표는 “산삼과 만남은 운명이었다”며 웃었다.
산삼 재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대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전자장치 소프트웨어 검증·개선 업무를 하다 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를 자주 접했다. 산삼 재배는 원인을 알고도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허 대표는 “산삼이 자라는 곳은 산 중턱까지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올라가야만 하고, 차량 진입이 안 되는 곳은 걸어서 장비를 들고 갈 수밖에 없다”며 “농약이나 비료도 사용할 수 없어 해충 공격을 온전히 감수해야 하고, 농업용 기계 장비도 올라갈 수 없어 물길을 내는 것부터 모든 작업을 사람이 해야 해 농업 중에서도 힘들고 까다로운 편”이라고 했다.
재배 고민은 박태양 부대표가 말끔히 해소했다. 박 부대표는 3대에 걸친 산양산삼 농법을 통해 사계절 동안 산삼을 재배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유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삼 대부분이 6년근인 반면, 삼이오가 7년근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삼은 오래될수록 영양이나 희소성이 높아지지만, 통상 7년이 넘어가면 생존율이 10~20%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7년 동안 산에서 고초를 겪은 산삼은 주로 생물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생물 산삼을 활용한 담금주나 짜 먹는 농축액 같은 여러 제형의 가공식품 개발 역량도 갖췄다. 이를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다. 현재 중국과 베트남 진출을 위해 서너 곳의 업체와 소통하고 있다. 허 대표는 “1~2년 내 수출 실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산삼 브랜드 삼이오를 운영하는 허범석이다. 현재 경기도 용인에서 유기농 산양산삼을 생산해 유통하고 있다. 사명인 삼이오는 삼 삼(蔘), 이로울 이(利), 즐거울 오(娛)로, ‘산삼의 이로움을 즐기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산삼의 이로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래는 엔지니어라고 들었다. “이과생에 대학도 공대를 나왔다. 전공은 전자통신공학이다. 졸업하고 현대차에 입사해 남양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소 전자기술센터 소속으로 차량에 탑재되는 전자장치들의 소프트웨어를 검증, 개선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이후 서울 양재 본사에서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 업무를 진행했다. 대략 7년 정도 엔지니어 생활을 했다.”
삼이오 설립 배경은. “2020년 산삼이라는 약초를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삼을 알고 있지만, 실제 먹어 본 비율은 낮았다. 판매 경로도 농장에서 직접 거래해 협소했다. 온라인 판매의 경우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품질을 속이는 경우도 많아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인삼이나 홍삼과 달리 산삼은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가 없다고 판단했다.”
창업한다니 주변 만류는 없었나. “퇴사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데까지도 두세 달 걸린 것 같다. 당연히 만류할 것으로 생각해 주변에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 결단을 내린 상태에서 결단을 흔들 만한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이도 이었지만, 조용히 진행했다.”
농장 관리도 직접 하나. “농장 관리는 부대표가 전담하는 구조다. 사계절 내내 농장에 상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나도 대량 수확 시기, 장마철에는 함께 산에 올라 관리를 돕는다. 농장은 76만330㎡ 규모로, 산 전체가 농장이다. 수도권에서는 가장 큰 것 같다.
규모가 있다 보니 산 중턱까지는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올라간다. 이후에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어 도보로 이동한다. 그러다 보니 농업용 기계 장비가 올라갈 수도 없다. 물길을 내거나 여러 작업을 할 때도 사람이 직접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재배 과정도 순탄치 않다. 농약이나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토양을 위해 작업 중 살충제도 쓰지 않아 해충 공격을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농업 중에서도 힘들고 까다로운 편이다.”
인삼, 홍삼과 산삼의 차이점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크기다. 산삼은 인삼과 비교하면 훨씬 작다. 시중 마트에서 인삼을 보면 당근만 한 것도 있고, 손바닥만 한 것도 있다. 반면 산삼은 대부분 새끼손가락 크기다. 이유는 농약, 비료의 사용 여부다. 인삼은 인삼밭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내고, 농약과 비료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크기를 키울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스테로이드제 맞고 덩치를 키우는 셈이다. 우리가 재배하는 산삼은 농약,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산에서 키워낸다. 그 덕에 유기농 인증도 받았다. 흔히 가공식품으로 많이 찾는 홍삼은 인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가공한 삼이다. 가공을 통해 핵심 성분에 화학적 변화를 유도해 특정 성분의 함량을 극대화한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주력 제품은. “유기농 산삼이다. 정확히는 산양산삼이다. 산에서 기른 삼이라는 의미다. 다른 산삼과 차별화한 점은 7년근이라는 점이다. 삼은 보통 6년근이 주류를 이룬다. 홍삼 가공식품류도 보통 6년근이 많은 편이다. 삼은 7년 이상이 되면 생존율이 10~20%까지 급격히 떨어진다. 다만 오래될수록 영양 성분과 희소성은 더 높아진다. 삼이오는 3대에 걸쳐 내려온 농법을 활용해 삼의 생존율을 높이고, 생산량도 늘려 사계절 동안 판매에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다.”
먹는 제품이다 보니 규제가 까다로울 것 같다. “생물 위주로 유통하다 보니 원물 자체의 품질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 농약, 비료를 일절 사용할 수 없다. 인증기관에서 주기적으로 토양 검사를 나온다. 기본적으로 무농약 인증을 받아야만 ‘산양삼’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재배 노하우를 통해 무농약 인증보다 한층 더 나아간 유기농 인증도 받았다.”
판매 경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활용하고 있다. 직접 농장을 찾아 구매하는 사람도 있고, 법인도 있다. 온라인에서는 직접 판매와 위탁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은. “국제 바이어들과 소통 중이다. 중국, 베트남 위주로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서너 곳의 업체와 소통하고 있다. 1~2년 내 수출 실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업한 것에 후회는 없나. “아마 다시 태어나도 창업을 택할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창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60세에 퇴임해도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매일 먹는 산삼 덕에 100세까지는 무리 없이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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