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뱅)으로부터 시작된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가 국내 시중은행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수수료익 감소에 대한 은행권의 고민이 다시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이체 수수료 면제 이후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수수료 면제 조치 확대 압박이 재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가 금융당국의 압박이 아닌, 사실상 은행권의 자율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환전 수수료 면제가 수수료익 전반으로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최근 은행권이 ‘이자 캐시백’을 포함한 상생금융안을 발표한데 이어 총선을 앞두고 은행권을 향한 상생압박이 또 한번 대두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수료 면제 조치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외화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그동안 외화 환전시에 부여되던 1~5%가량의 수수료를 사실상 없애겠다는 것인데 이를 둘러싼 수수료 면제 조치의 확산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부의 ‘은행 공공재’ 발언 이후 지속됐던 상생압박이 올해 수료 체계 개편 등의 방식으로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환전수수료 면제 확산하는 은행권
가장 앞서 환전수수료를 면제한 곳은 인뱅인 토스뱅크다. 토스뱅크는 지난달 18일 환전 수수료와 해외 결제 및 해외 ATM 수수료를 받지 않는 외화통장 서비스를 출시했다. 전 세계 17개 통화를 24시간 수수료 없이 환전할 수 있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재환전도 무료로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조치는 일단 초기 흥행에 성공한 모습이다. 토스뱅크에 따르면 출시 후 6일간 토스뱅크 외화 소비자가 아낀 환전 수수료는 18억원에 달한다.
금액 기준으로 가장 환전을 많이 한 통화는 전체 환전의 66%를 차지한 일본 엔화였다. 이어 미국 달러(27%), 유로(3%) 순으로 환전이 이뤄졌다. 이밖에 베트남(동), 태국(바트), 필리핀(페소) 등 여행지로 각광받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환전 이용 빈도도 높았다.
토스뱅크의 환전수수료 면제 조치는 국내 시중은행으로도 즉각 확대됐다.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일부 은행이 사실상의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를 시작했고, 나머지 은행들 또한 관련 서비스 시행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당장 신한은행은 오는 14일 ‘쏠(SOL)트래블 체크카드’ 출시를 예고했다.전 세계 30종 통화 100% 환율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해당 체크카드는 해외결제 및 ATM 인출 수수료 면제 조치도 지원해 눈길을 끈다.
하나은행은 토스뱅크의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가 시작된 당일, ‘하나 트래블로그 체크카드’의 즉시 발급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미 지난 2022년부터 해당 체크카드를 통해 환전 및 ATM수수료 면제 혜택을 제공중이었던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금융소비자 편의성 제고를 위한 즉시 발급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밖에 아직 관련 서비스 출시를 하지 않고 있는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도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일부 은행은 수수료 면제 조치를 확정하고 출시 시점을 조율 중인데 이르면 설 연휴 전후로 공개가 예상된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인뱅과의 조달 비용 차이 등을 고려하면 현재 토스뱅크가 시행 중인 ‘재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의 시행까지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수수료 면제 조치 자체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금융소비자 편의성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환전이 쏘아올린 ‘수수료 0원’
다만 은행업계에서는 이번 환전 수수료 면제와는 별개로 해당 조치가 그간 은행권을 대상으로 지적돼 온 ‘수수료 편취’ 논란으로까지 이어질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불거진 이자 장사 논란에 더해 은행권이 소비자로부터 과도한 수수료 수익을 취득, 은행 배를 불리는 데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재차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초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은 나란히 모바일로 집행되는 이체 수수료(예금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은행은 60대 이상의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창구에서 거래 시 발생하는 이체 수수료의 면제 조치도 발표, 시행한 바 있다.
다만, 이체 수수료의 경우 전체 이체 수수료 수익에서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수준에 불과해 실제 수수료 순익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했다.
문제는 이후 정치권과 당국을 중심으로 수수료 수익체계를 들여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에는 은행권의 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문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상당수 은행이 일부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상품의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환전 수수료 면제 조치가 아직 수수료 면제 조치가 시행되지 않고 있는 다른 영역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대두된다. 실제 지난해 이체 수수료 면제 조치 당시, 업계 안팎에서는 수수료 면제의 다음 타깃으로 △창구 이체 △외화 환전 △ATM 부문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 바 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여행 목적 환전의 경우, 은행 전체 외환 금융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환전수수료 면제 조치가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수수료를 통해 다른 서비스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수수료를 면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환전 수수료 수익은 약 115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3분기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순수수료 이익(약 2조5000억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수수료 면제, 수익성 감소로 연결될까
무엇보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수수료 면제 조치가 은행권 전반의 수익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국내 시중은행의 비이자익에서 수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0~90% 수준에 이른다. 사실상 전체 이익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수익원’ 이자익을 제외한 상당 비중의 수익이 수수료에서 창출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불거진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이슈로 신탁사업 부문 수수료 수익 감소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이 ELS상품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 수수료익은 2012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환전 수수료(1150억원)보다 2배 가까이 큰 규모다.
여기에 이번 환전수수료 면제로 촉발될 또 한번의 수수료 무료 기조가 향후 비이자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장 수수료의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이를 상쇄하기 위한 추가적인 비이자익 확보 및 발굴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만, ELS사태로 펀드 등 신탁 사업 위축이 불가피한 데다, 당장 상생기조에 우선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당장은 뾰족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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