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격적인 선거철이 시작됐다.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 시기다.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직선거법은 선거기간 동안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세부적이고 모호하다. 검찰 ‘공안통’으로 꼽히는 전문가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와 함께 선거 기간 동안 조심해야 할 부분을 정리해봤다.
흔히들 생각하는 선거범죄라면 ‘돈’을 떠올린다. 유권자에게 현금이나 금품을 주는 금품선거 범죄. 그러나 실제 선거범죄는 금품선거 외에도 흑색선전, 공무원의 선거개입, 선거폭력, 부정선거운동으로 다양하다.
대한민국 선거사에 유명한 사건이 있다.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북한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사건,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에 대한 병역비리에 대한 허위사실을 폭로한 김대업 사건(이른바 병풍사건),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아 오피스텔을 국회의원이 점검했던 사건, 최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이다.
이 사건들은 각각의 유형으로 나뉜다. 자유당 부정선거는 공무원선거개입과 선거폭력, 금품선거에 해당한다. 총풍사건은 공무원 선거개입, 병풍사건은 흑색선전이다. 국정원댓글 사건과 울산시장 사건은 공무원 선거개입에 해당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선거 범죄는 그 유형과 형태가 계속 변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2010년 5회 전국 지방선거 직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돈과 관련한 선거사건은 596건(35.7%), 거짓말로 인한 선거사건은 247건(14.8%), 불법선전으로 인한 선거사건은 153건(9.1%)으로 집계됐다. 금품선거 사건 비율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며 그 비중은 달라졌다. 2020년 21대 총선 직후 조사된 대검 자료에 따르면 19~21대 선거 범죄 유형 가운데 금품수수 사건 수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흑색선전은 증가하는 양상이다.
“고무신 한 짝 줄 테니 1번 찍어주소!”
과거의 선거범죄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은밀하고 애매하고 자극적이다.
과거에는 유권자에게 고무신이나 설탕 등을 주면서 자신이나 여당 후보를 찍으라고 말했다. 깡패를 동원에 투표함에 기표용지를 넣기도 했으나, 민주화와 법치주의가 자리를 잡은 지금은 불가능한 방법이다.
요즘엔 뉴스 통한 상대후보 비방
최근 범죄는 상대 후보의 문제점을 뉴스로 가장해 공표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이 뉴스를 본 유권자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지역구에 도로나 철도 등 기반시설을 마치 특정 후보자가 한 것처럼 포장해 유권자들로부터 호감을 사게 하는 방법도 흔하다.
극렬지지층이 서로 상대후보를 욕설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친 언사로 공격하고 녹음파일이나 동영상을 배포하는 사례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례가 지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당 시절에도 애국청년단이나 서북청년단 등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단체가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물리적 충돌도 일삼은 사례가 있었다.
금품거래나 폭력이 포함된 선거범죄는 증거 확보도 쉽다. 그러나 최근 선거사건은 혐의 인정 여부도 애매하고 증거 확보도 어렵다.
차라리 금품선거 사건 수사는 할만 했는데…
자유당 시절 ‘고무신 선거’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처럼 과거에는 금품선거가 대부분이었다. 금품을 받은 사람도 금품 수수사실을 스스로 밝히지 않으므로 적발이 쉽지 않다.
선거범죄는 당락이 걸려있기 때문에 관련자들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사례가 많아 단속이 쉽지 않다. 후보자 선거사무장이 가방에 현금을 가득 담아 가는 것을 선관위 직원이 발견하면 이를 제지할 수 있을까? 그 돈이 유권자에게 살포할지 아니면 적법한 선거자금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선거법 제230조제4항에서 선거기간 중 포장된 선물 또는 돈 봉투 등 다수의 선거인에게 배부하도록 구분된 형태로 되어 있는 금품을 운반하는 자도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돈을 봉투에 담아 구분한 상태로 들고 다녀도 선거법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선거운동원이 유권자에게 현금을 주는 모습을 누가 목격하지 않는 이상 처벌이 불가했는데, 이 같은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돈 봉투를 운반하는 자도 처벌하게 한 것이다.
‘말’로 하는 흑색선전, 처벌 수위 높아
이처럼 기존에는 금품선거를 막기 위한 활동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흑색선전을 막기 위한 활동이 중심이 됐다. 가짜뉴스와 허위사실공표, 팩트체크 등 모두 흑색선전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선관위도 공직선거법 제8조에 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를 규정하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등 무려 3개의 법률상 위원회를 두고 있다. 선거부정을 감시하는 공정선거지원단 외에 별도로 인터넷 언론을 통한 불법을 감시하기 위해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까지 두고 있다.
최근에도 가짜뉴스를 통한 선거범죄에 대한 수사가 많이 이루어진다. 흑색선선사범은 선거법상 낙선목적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 제250조 제2항 낙선목적허위사실공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법정최저형이 벌금 250만 원이라 유죄가 인정되면 선고유예를 받지 않는 한 당선무효다.
흑색선전은 선거범죄 중에서는 투표함탈취(제243조), 투표소에서 무기휴대죄(245조)를 제외하고 가장 형이 중한 범죄 중 하나이다.
뉴스에도 카톡에도…사방 곳곳에 흑색선전
흑색선전은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더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한 단체대화방 메시지 전달, 트위터(X)를 통한 일방적 허위정보 전달,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한 영상전달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AI를 이용한 허위사실공표도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관위도 총선을 앞두고 ‘허위사실공표·비방 특별대응팀(AI 전담팀)’을 꾸리는 등 대응에 나섰다.
흑색선전범죄를 단속하기 어려운 이유는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위인지 여부가 애매한 상황에서 공표자가 알권리를 주장하며 배포할 경우 즉시 단속하기 어렵다. 허위사실공표자가 언론사일 경우, 또는 언론사를 가장한 경우 단속이 더 쉽지 않다. 그 허위사실의 출처가 누구인지도 확인이 어렵다.
최근 선거범죄 중 신종 범죄 유형으로 아이디를 다수 확보해 포털 등에 후보자에 대한 홍보성 댓글,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사례가 있었다. 정당 공천 관련 여론조사에 대비해 전화회선을 대량 개통한 후 특정 번호로 착신시켜 여론조사에 응하는 등으로 공천업무를 방해한 범죄도 있었다.
여론조사를 가장한 선거범죄도 있었다. 특정 후보자로부터 지시를 받아 그 후보자가 적합한 후보자인 것처럼 설문지를 만들어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 여론조사에 응하는 유권자들에게 그 후보자를 홍보하는 방식이다.
여론조사 시 가중치(나이, 성별 등)를 조작해 여론조사결과를 왜곡해서 발표하는 사례도 있다.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는 “선거가 민주화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는 문화가 형성돼도 선거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진화한다”며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만큼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는 범죄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 =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
법무법인 인화는 2020년 대검찰청 선거상황실장을 역임한 최창민 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공공수사1부장)를 중심으로 경력 15년 이상의 변호사 6명의 ‘선거사건 패스트트랙 대응팀’을 구성해 선거사건에 대응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