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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국가경제 짊어진 ‘삼성’… 이재용 ‘사업보국’의 길

아시아투데이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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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최원영
최원영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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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대한민국 전권을 장악한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최고회의부의장이 일본에 있던 이병철 삼성물산 회장을 한국으로 급하게 호출했다. 이미 당국은 주요 그룹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며 줄줄이 회장들을 감옥에 잡아 넣고 있던터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방과 전쟁을 겪은 대혼돈의 시기, 합법적으로만 돈을 벌어 성공한 기업인이 어디 있었을까만. 어찌됐든 큰 회사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기업의 존속을 위협하는 천문학적 벌금을 물거나 감옥 생활을 해야 할 수 있는 상황, 다급해진 이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박 부의장을 찾았다.

달라진 세상의 최고 권력자 앞에 선 이 회장은 치열하게 설득했다. 기업하는 사람은 ‘사업을 잘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 정부가 국가 운용을 잘하게 돕는 게 본연의 일’이라는 취지의 설명이 이어졌고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부정축재자로 몰아 처벌하지 말고 경제 건설에 기여할 수 있게 새 기회를 주는 게 국가에 이익’이라고 절박함을 전했다. 최고회의 일각에선 ‘기업인들을 용서해선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갑론을박을 끝낸 박 부의장이 마침내 주사위를 던졌다. 기업인들에게 부정축재 혐의를 사면해 주는대신 기업의 자금을 핵심 기간산업에 투자하도록 ‘투자명령 법령’을 공포했다. 투자를 강제 하는 법령이라니. 어찌했든 부당이득에 대한 벌과금만큼 투자하고 또 키운 기업의 일정 지분을 정부에 넘기면 선고를 유예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그렇게 투자와 환수를 위한 정부와 기업간 소통창구 ‘경제재건 촉진회’가 만들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지금의 한국경제인협회의 전신이다. 기회(?)를 얻은 기업들이 기간산업을 키우기 위한 대대적 투자를 시작했고 공장들이 줄줄이 지어졌다. ‘한강의 기적’이 움튼 역사적 순간이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연 수출액은 3800만달러, 드라마 속 남미 오지의 나라 ‘수리남’, 아프가니스탄이나 모리셔스 보다 낮은 세계 수출국가 87위 였다. 달나라 가는 것만큼 어려울 거란 수출 3억달러 돌파가 1960년대말 이뤄졌다. 이제 막 10억달러를 넘긴 1971년 정부는 불가능 해 보이던 수출 100억달러 목표를 세웠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에 ‘미션 임파서블’ 명령을 내린 이후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임무를 완수했을까.

1978 해외사업추진위원회
1978년 해외사업추진위원회 당시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사진 왼쪽 첫번째)의 말을 이건희 선대회장(왼쪽 두번째)이 경청하는 모습. /삼성전자

◇63년의 시간… 모든 게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
그렇게 63년이 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역대 가장 높은 6835억달러, 전세계 6번째로 수출을 많이 한 나라로 기록됐다. 전체 수출액의 약 20% 는 한국을 ‘첨단산업의 나라’로 격상 시켜 준 반도체 몫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감옥에 가두거나 재산을 압류하지 않은 대신, 기회를 줬던 이병철의 삼성은 오늘날 국가경제를 이끄는 주축으로 올라섰다. 핵심기업 삼성전자는 호황기 기준 1년에 매출 302조원, 59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압도적 초거대 기업으로 커나갔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스마트폰 판매 1위, TV 판매 1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1위,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직장 1위 타이틀이 모두 삼성의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 철칙처럼 따르는 삼성의 경영이념은 조부 이병철 창업회장이 새긴 ‘사업 보국’이다. 사업을 통해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다소 광대한 경영철학은 1등 기업이 짊어진 숙명 같은 것이다. 삼성은 그렇게 1938년 문을 연 시점부터 86년간 한국에 의해, 한국에서, 한국과 함께 성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삼성’의 지붕 아래 있는 직원들, 소위 삼성맨의 숫자는 27만4002명에 달한다. 이들과 거래하는 2·3차 협력사를 따져본다면 그 숫자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한 명의 직원이 대략 4인 가구를 먹여 살린다고 봤을 때 삼성이 우리나라 가계 경제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그룹의 맏형 삼성전자가 협력사로부터 물품을 구매한 금액만 219조8000억원(2022년)이고, 직원들한테 쓴 연봉은 37조6000억원에 달했다. 그 낙수효과는 우리 경제 선순환 구조에 핵심 코어 역할을 했을 거란 게 지배적 분석이다.

삼성이 매년 내는 법인세는 2021년 기준 삼성전자 하나만 따져도 전세계 약 15조원, 이중 국내에만 대략 12조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올리는 수익의 25% 가량은 세금인 셈이다. 삼성의 몸집이 커질 수록 이 사회와 동행하는 경제적·사회적 나눔도 늘어나는 셈이다. 2020년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후 이 회장과 유족은 26조원의 유산 중 60%를 세금과 기부를 통해 사회에 돌려주는, 전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사회 환원 기록을 남겼다.

63년전 국가가 명령한 임무를 삼성은 충실히 완수한 듯 보인다. 그렇게 많은 게 달라졌지만 손자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11월, 다시 63년 전의 조부와 같은 처지가 됐다.

“저에게는 기업가로서 지속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인 책무가 있습니다. 삼성이 진정한 초인류 기업,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삼성가에 반복돼 온 이 멘트는 법원에서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한 이 회장의 최후진술이다. 수십년 한국과 성장해 온 1등 기업인의 숙명일까. 다시한번 그 무게를 가늠해본다.

1972 장충동 자택에서 이병철 명희 건희 인희 재용
1972년 장충동 자택에서 이병철 창업회장(사진 왼쪽 첫번째)과 아들 이건희 선대회장(윗쪽), 장녀 이인희 전 한솔그룹 총수(오른쪽 첫번째),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손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아래). /삼성전자

◇기업인의 무게… 가업승계와 사업보국은 이음동의어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구광모 회장이 부럽다고들 한다. 결단코 나는 아니다. 이들이 짊어진 무게가 어떤지 멀리서나마 엿봐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풍족함이 부러운 거라면 차라리 중소·중견기업 오너의 2세, 3세가 낫다. 모두가 주시하는 리더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재용 회장은 12조100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지만 전세계 부자 순위는 262위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브랜드가치가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에 이어 글로벌 5위(영국 브랜드파이낸스 기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떠올려보라. 재계 2위 그룹 SK의 최태원 회장은 주식 포함 전재산이 2조원대에 불과하다. 태어날 때부터 ‘사업보국’을 사명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자기 재산이 얼마나 더 늘어나고 아니고는 이미 안중에 없다. 회사를 지키고, 또 키우고 그렇게 국가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날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배워왔다.

IMF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취약해진 국내 대기업들의 취약해진 기업 지배구조를 파고 들었다. 오너들의 경각심이 극에 달했다. 2003년 소버린이 SK를 뒤흔들자 최태원 회장은 회사를 지켜내는 데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2017년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정점이던 현대모비스를 집중 매집해, 당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려던 정의선 회장을 막아섰다. 정 회장이 직접 프리젠테이션까지 나서 우호지분의 지지를 얻어내고서야 방어엔 성공했지만 기회를 놓친 그룹은 여태껏 얽힌 지배구조 실타래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1등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2015년 삼성물산 지분 7%를 쥐고 흔든 엘리엇 공격으로부터 삼성을 지켜내려던 이 회장의 경영권 방어 행보가 지금껏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과 사회에선 대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탓하기만 했지 그 이면의 위기는 제대로 보려하지 않았다. 기업인들은, 경영자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건 배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삼성·SK·현대차·LG라는 이름의 회사를 오너보다 더 아끼고 창립 초기의 이념대로 성장 시켜나갈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한 TV방송에서 대놓고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시대착오적인 발언으로 여길 지 모르겠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단행해야 하는 글로벌 확장의 꿈은 자신의 핏줄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고도 했다. 전문경영인이 그런 리스크 큰 모험을 할 리 없고, 감행했더라도 손실이 커지면 손을 떼거나 안 떼어도 그 자리의 보전 자체가 힘들어지는 걸 이유로 들었다.

지난 29일 무역협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수출 장수기업 42%가 상속세 폭탄에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 수출 업력이 길수록 수출 규모와 품목수·대상국수·고용인원이 모두 커지지만 기업이 장수 하기 위한 첫 걸음인 ‘가업승계’는 매우 어렵다는 분석이다. 조세부담 때문이다. 차라리 폐업을 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최대 60%다. 가업을 잇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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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 /삼성전자

◇’한강의 기적’ 재현할까… 골든타임 흐른다
TV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시기, 모두가 말렸지만 첨단 반도체사업에 맨주먹으로 도전해 기술력으로 업계를 장악한 삼성의 치열함과,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하나로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과 담판을 내 차관을 얻어 허허벌판에 지금의 세계 1위 조선사를 만든 ‘현대’의 거인을 떠올려본다. 그 피를 이은, 기업들이 첨단 IT기기의 대명사 ‘갤럭시’를 만들고, 세계 3위 자동차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국위선양’이 가진 뜻을 헤아려본다.

1961년, 국가를 이끌기로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로부터 어떤 한국의 미래를 봤을까. 다음 세대에게 배고픔만은 물려주지 말자던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의기투합을 본다. 해방과 전쟁 직후 먹고 살기 힘든 ‘보릿고개’ 그 폐허의 대한민국에서 이룬 ‘한강의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 지, 고군분투 한 63년의 역사와 결과를 나는 안다.

국가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삼성의 중요한 경영 판단과 결단의 골든타임 시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갈아엎고 있는 첨단IT 업계 판도는 한순간에 뒤바뀐다. AI 반도체로 통하는 GPU 시장 90%를 장악한 미국의 ‘엔비디아’가 그 예다. 단 1개 기업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을 추월했다.

삼성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순식간에 조단위 적자 행진의 주인공이 된 반도체와 바이오 등 신사업에 2026년까지 45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가 예정돼 있고 그 본격화는 올해다. 삼성은 세계 브랜드가치 1위 애플과 가장 트렌디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AI’와 ‘폴더블’을 무기로 중요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시장은 대선·총선 등 정치이슈를 맞아 다시 한번 급변하는 경영환경이 예고 돼 있다. 누군가는 책임지고 결단해야 하는 시기다.

이제 2월 5일, 이재용 회장 공판 선고가 다가온다. 어려운 나노의 공학과 천문학적 재화·서비스를 관리하는 거대한 시스템, 글로벌 정세를 꿰뚫는 심오한 전략들이 삼성내에서 정신 없이 오가고 있지만, 그 날 이후 달라질 미래는 알 수가 없다. 전략물자가 돼 버린 반도체, ‘메이드인 코리아’가 붙은 스마트폰이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해 본다.

아시아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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