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 지원법) 보조금 집행이 오는 3월로 예고되면서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한 한국과 대만의 자존심 경쟁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칩스법 최대 수혜 대상자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TSMC는 각각 미국 텍사스주와 애리조나주에 수십조원을 투입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고 있다. 보조금 지급으로 지지부진했던 공장 준공에 가속도가 붙으면 HBM(고대역폭메모리)과 첨단 패키징을 묶는 ‘턴키 서비스’가 가능해져, 파운드리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붙을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인근인 테일러시에 173억 달러(약 23조원)를 투자해 5세대(5G) 이동통신, 고성능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에 활용되는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테일러 공장은 네덜란드 ASML사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투입돼 4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 파운드리를 지원할 전망이다. 당초 올 하반기 공장 가동이 목표였지만 미국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 지급 일정이 늦어지면서 준공시기가 1년가량 늦춰져 2025년 말에나 대량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칩스법의 실질적인 집행은 삼성전자의 올해 AI 반도체 전략인 ‘GDP’를 가속화할 것으로 풀이된다. GDP는 GAA(게이트올어라운드)·DRAM(D램)·PACKAGING(패키징)의 앞머리를 딴 약자로, AI에 특화된 HBM과 초미세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공정을 한 번에 고객사에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업계는 테일러 공장이 삼성전자의 GDP 전략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것으로 본다.
이는 생성형 AI 시대의 본격적인 개화를 앞둔 상황에서 경쟁사인 TSMC를 앞지를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구현을 위해서는 저전력·고효율의 AI반도체와 HBM이 필수적으로 탑재돼야 하는데 현재 HBM과 첨단 패키징을 묶어서 서비스할 수 있는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실제 삼성전자는 고성능·저전력 온디바이스 AI용 D램 솔루션인 LPDDR5X, LPDDR5X 기반 메모리 모듈인 LPPDR5X CAMM2, LLW(저지연 와이드) D램 등을 포트폴리오로 갖췄다. 낸드 솔루션으로는 PCIe 5.0 기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제품인 ‘PM9E1’이 올 6월 개발된다. 생성형 AI를 지원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을 1초 이내로 D램에 전송할 수 있는 메모리다. 때문에 온디바이스 AI 기기가 확산될수록 삼성전자가 TSMC보다 경쟁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 HBM은 연간 최소 1000만개 이상이 더 필요한데 이는 TSMC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다”라면서 “현재로서는 삼성전자가 TSMC의 가장 유력한 대체재”라고 말했다. 또 “특히 삼성의 HBM과 파운드리 ‘턴키 솔루션’은 고객사 입장에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유인책”이라며 “삼성의 첨단 파운드리가 완성되면 빅테크 입장에서는 삼성과 파트너십을 맺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고, 오픈AI 등도 그걸 알기 때문에 먼저 움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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