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략 산업으로 떠오른 배터리 업계가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다. 전기차 판매 둔화세가 지속되면서 배터리 업황도 위기에 놓였다. ‘더 높이 뛰기 위한 숨 고르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철저한 대비가 필수다. 올해 그리고 그 이후의 배터리 시장은 어떻게 전개되고,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비즈워치가 배터리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답을 구해본다. [편집자]
“2026년까지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먼 미래의 차세대 기술이 아닌 ‘시장용 기술 업그레이드’다. 향후 수년간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올해와 내년, 이 두 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국 배터리 산업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본다.”
전기차 성장률 둔화에 따른 배터리 업계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관련 기업들의 실적 성장세가 꺾이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테슬라발 치킨게임, 중국의 고공성장 탓에 녹록지 않은 시기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배터리 3사는 올해와 내년까지 컨틴전시 플랜을 잡아야 할 것”이라며 ‘겨울나기’를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3사의 공통 과제로는 ‘시장 대응용 기술 개선’이 지목됐다. 중장기 차세대 기술 개발에 다소 힘을 빼는 대신 LFP와 고전압 미드니켈 등 중저가 배터리 기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집약적 성격이 강한 배터리 산업의 특성과 치고 올라오는 자원 부국들을 고려했을 때,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점유율 합이 10%대로 꺾이는 순간 침식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 2~3년간 한국 배터리 3사 총 점유율 20% 초반대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어 구체적 미션은 3사 3색으로 진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질적성장’, 삼성SDI는 ‘양적성장’, SK온은 ‘생존’ 등이다.
아울러 박 교수는 “올해 한국 배터리 3사 모두 4680 배터리 개발 경쟁에 뛰어드는데 이는 곧 3사의 기술을 비교할 기준점 될 것”이라며 “셀은 폼팩터(형태)와 사이즈 등에 따라 에너지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동일한 계열의 같은 폼팩터라면 에너지 밀도 등 기술력을 비교할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배터리 3사의 기술을 가늠할 벤치마크가 25여 년 만 다시 등장한 것이다.
“기술·가격 경쟁 본격화…향후 2년이 주요 변곡점”
– 지난해 말까지의 글로벌 및 한국 배터리 업황을 총평한다면.
▲ 짧게 ‘한국과 중국 간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잘 나간다는 의미다. 지난해에 이어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이를 뒷받침한다. 점유율이 뒤집혔다는건 ‘한국의 성장률이 낮다’는 의미다. 역(逆) 초격차가 됐다.
– 한·중 역초격차의 원인은 무엇일까.
▲ 중국이 양산하는 배터리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촘촘하다. 한국이 NCA·NCM 등 중대형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하는 반면 중국은 삼원계·LFP·소디움(나트륨) 등 여러 가지 배터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양한 제품군에 기반, 시장에 침투하기 용이하니 중국의 장악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 ‘그래도 실력은 중국보다 한국이 아직 한 수 위’라는 시각이 있는데.
▲ 그건 6~7년 전 얘기다. 그땐 확실히 한국 기술력이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고공 성장을 해왔고 거의 따라붙은 상황이다. 그 배경엔 산업 스파이가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 장비업체를 비롯 핵심 인력들을 중국 기업에 이어주는 브로커도 있다. 기술 및 인력 유출 피해가 극심한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일본 파나소닉도 재기를 노리며 뛰고 있다. 현재 기준 일본의 시장 점유율이 크진 않다. 하지만 기술력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이 언제나 선도해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삼원계·흑연 음극재 등 배터리 관련 주요 신기술을 일본이 만들었다. 테슬라가 퍼스트 밴더로 파나소닉을 점한 것 역시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나는 중국과 뛰는 일본 사이에 한국이 끼인 모양새다.
그렇다고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못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베스트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 다만 중국의 베스트 퍼포먼스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월등히 잘하다보니 한국이 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중국의 초격차가 고착화 된 느낌이다.
– 올해 배터리 업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 올해 전망은 확실하다. 부정적이다.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지난해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부정적 요소가 터지고 있고 이러한 상황은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선 전기차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치킨게임이 본격화될 것이다. 지난해 초 테슬라가 시작한 치킨게임 1차전이 ‘테슬라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GM과 포드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테슬라에 밀렸다. 사업부만 놓고 봤을 때, 지난해 테슬라 이외 주요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적자가 났다. 또 북미에 진출한 대다수 전기차 배터리 충전 회사들이 테슬라의 NACS* 규격을 쓰겠다고 발표, 북미 내 천하통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것들이 치킨게임의 성과다.
NACS는 테슬라의 고유 충전 방식이다. 지난해 12월 국제자동차공학회는 북미 지역에서의 전기차 충전 표준 규격을 NACS로 확정했다. 일부를 제외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 기업들도 자사 전기차 충전 규격을 NACS로 통일하는 추세다.
올해는 이러한 양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발 치킨게임 1차전이 북미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2차전은 중국과 유럽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한국 3사가 ‘4680’ 원통형 양산을 선언함에 따라 이들의 기술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3사가 동일한 폼팩터 양산에 뛰어든 것은 1998~1999년경 ‘1860’ 소형 원통형에 이어 25여년만이다.
– 테슬라발 치킨게임 2차전이 시작되면 업황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
▲ 테슬라와 중국 일부 기업 외 완성차 기업들이 적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 때 옥석이 가려지기 시작한다. 복합적인 어려움이 겹쳐 시장이 둔화되면 앞선 회사들은 여전히 잘 될 가능성이 크다. 중간 이하의 회사 또는 수익을 못 내는 회사들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올해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지금은 바닥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부터 바닥으로 치고 내려갈 것이다.
무엇보다 생존의 중요도는 배터리 업계에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는 직렬화 된 구조라, 완성차 기업의 고전이 셀 메이커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 있는 소부장 기업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 3사 점유율 20% 사수해야, LFP·고전압 미드니켈 주목”
– 좀 더 좁혀서 묻고 싶다. 이러한 대내외 악재가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겐 어떤 영향을 줄까.
▲ 올해는 3사 모두 긴축경영 혹은 비상경영에 돌입해야 할 정도로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등을 하기 위해선 ‘셀 제품군’과 ‘고객사 실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중 무엇이라도 개선돼야만 한다. 하지만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도 이들이 나아질 가능성은 낮다. 글로벌 시장 내 본격적인 기술경쟁은 2026년부터 시작된다.
지금부터 한국 3사는 배터리 시장 점유율 20%를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 이것이 깨지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지금도 배터리 업계 내엔 새로운 경쟁자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30여년 전 배터리는 한중일이 주력하던 산업이었지만, 요새 상황은 다르다. 전 세계가 관심을 두고 있다. 배터리를 에너지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향후엔 자원이 많은 나라가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는 자원집약적 성격이 강하기에 자원 부국들이 뒤늦게 시작하더라도 이 산업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시장 아랫부분, 즉 점유율이 낮은 곳부터 침식될 확률이 크다.
배터리 시장이 계속 커지는데 만일 한국 3사 점유율 합이 20% 밑으로 떨어진다면, 이는 한국이 세계 배터리 시장 평균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10%대로 꺾이면 3사가 2개사로 축소될 수도 있다. 20%대 초반 점유율을 계속 끌고 나가야만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치고 나갈 계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 올해 한국 배터리 3사의 과제를 꼽자면.
▲ 3사의 올해 과제는 같은 듯 다르다. 우선 공통 과제는 신기술이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시장 대응형 기술’을 업그레이드 하는 차원을 의미한다. 향후 전개될 열릴 전기차 대중화 시대엔 어떤 배터리가 대세가 될지 모른다. 때문에 우리도 다양한 성능 및 가격대의 제품을 갖춰 놔야 한다. 기술 혁신을 통한 수익성 향상을 노려야 하는데 올해 이 기반이 닦여야 한다.
가령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LFP*와 고전압형 미드니켈** 등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 3사의 공통된 숙제가 될 것이다. LFP는 올해 양산이 돼야 하는 게 바람직한데, 내년과 내후년으로 양산계획이 잡혀 있으니 늦은 감이 있다.
*LFP : 리튬·인산·철을 사용한 배터리. 주요 소재인 철(Fe)과 인(P)이 값싸고 풍부해 가격적 이점이 있다. 화학구조도 안정적이라 발화·폭발의 위험을 쉽게 낮출 수 있어 기술적 난이도도 낮은 편이다.
**고전압 미드니켈 : NCM 등 삼원계 배터리보다 니켈 함량을 40~60%가량 낮췄다. 가격은 중저가에 해당한다.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각사별로 살펴보면, 우선 LG에너지솔루션은 ‘질적성장’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규모를 늘려야 한다. 중국 CATL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5%대’임을 고려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금보다 2조~3조원을 더 늘려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중국의 고성장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런데 이 규모는 LG에너지솔루션의 연간 영업이익이다. 모든 영업이익을 연구개발에 투입하면 실적은 고꾸라질 수밖에 없고 주가에 부정적 영향도 클 것이다. 최근 부임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신임사장으로선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
삼성SDI는 ‘양적성장’을 준비해야 한다.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현재 기준 시장 점유율은 SK온보다 낮다. 물론 3사 가운데 질적인 상황은 가장 좋다. 당기순이익 등 지표가 양호해 버티거나 오래 가기에 유리하다. 다만 점유율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이러한 상황이 고착화되면 글로벌 시장 점유율 5% 정도를 차지하는 그저그런 회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기술력이 있어도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면 투자하기 어려운 회사가 될 수 있다.
SK온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수익성을 당장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는 숙제가 많은 한 해다. 이 숙제를 내년까지 얼마나 잘해주느냐에 따라 3년 후 3사의 생존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치열한 준비를 거친다면 3사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통상부 산하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 센터장 △전자부품연구원 차세대 전지 연구센터 초대 센터장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 자문역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기술총괄 및 간사 △20대 대통령인수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전문위원 등을 역임, 한국 배터리 기반을 다진 1세대 학자다. 현재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 산업 전환분과 민간위원,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기업 전환 전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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