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이 생긴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조차 직장 내 괴롭힘이 폭 넓게 나타나는 등 서구 주요 국가에 비해 국내 직장인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이 높은 실정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명확한 법적 기준 마련을 포함해 관련 법과 제도를 더욱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과 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내부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과태료 조항이 생긴 뒤 점차 법제도가 실효성을 얻어가고 있다”면서도 “현실에 더욱 적합하도록 법과 제도를 더욱 객관적으로 다듬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관련 조항은 2019년 새로 생긴 뒤 2021년 과태료 부과와 사용자 조사의무 등 개정작업을 거쳤다.
그럼에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2019년 2천 여 건에서 2023년 약 9천 여 건으로 4.5배 빠르게 늘었고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는 ‘모호한 법적 기준’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등을 비롯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법처벌 조항을 보유한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어떤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에 관한 법적 기준을 보유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도 이런 비판을 잘 알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공정일터를 위한 청년 간담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법적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일회성인지 반복적인지 등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판단이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도 개선할 사안으로 꼽힌다.
노무법인 솔루션의 김지수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지방고용노동청의 감독관 한 사람이 판단하기 때문에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며 “노동위원회에서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절차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연공서열, 나이, 사회적 배경에 따른 차별에 관한 인식 개선 △사내 교육 강제 및 전문 조사관 양성 △허위 신고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이 제도 개선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 발표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폭 넓게 나타나 사회적 충격을 줬다. 중소기업도 아닌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든 국내 대표적 기업에서조차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해 있었다는 점에서다.
고용노동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을 직접 당하거나 동료가 당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비율이 55.5%로 나왔다. 또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에 대한 회사의 조치가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도 65%에 이르렀다.
이뿐 아니라 한 공기업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면직통보를 당하는 일이 생기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은 업종, 분야, 규모를 가리지 않고 폭 넓게 만연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2023년 12월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난 2주 동안 정신 상태(우울) 점검’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응답자들의 우울 척도 평균 점수는 8.23점으로 경험하지 않은 응답자들(4.64점)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직장인 20%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조사 보고서를 봐도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은 20~30% 이상으로 유럽(EU) 국가나 호주 등의 10% 아래와 비교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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