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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내줬다. 지난해 사상 첫 3조 달러 기업에 이름을 올렸던 애플은, 현재 시가총액 2조9752억 달러로 MS(3조21억 달러)에 글로벌 시총 1위 자리는 물론 글로벌 유일 시총 3조 달러 기업이라는 타이틀까지 내줬다.
애플 주가가 1년 가량 횡보한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러 분석이 제기된다. 외신 등 대부분 업계에서는 우선 애플 특유의 독과점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애플의 성공을 이끌어 온 ‘폐쇄적 생태계’가 이제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올 3월 유럽에서 시행되는 디지털 시장법(DMA)과 관련해 수수료를 인하하는 한편 앱 결제 체계를 변경하는 등 각국의 독과점 칼날을 피하기 위해 ‘생태계 개방전략’을 펼치고 있다.
독과점 이슈는 애플 생태계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 애플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아이메시지’ 생태계가 대표적이다. 애플은 올해부터 3세대 문자 표준인 ‘RCS(Rich Communication Suite)’를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 도입하기로 했다. 안드로이드 OS 개발사인 구글과, 미국 빅테크의 IT 독과점을 우려한 유럽연합(EU)의 합동 공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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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지금까지 애플 제품 간에는 ‘아이메시지’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도록 했으며, 애플 제품과 비(非)애플 제품간의 문자메시지 전송시에는 RCS 대비 몇세대 뒤진 SMS와 MMS 규격을 적용했다. 이 때문에 문자메시지 플랫폼을 활용해 아이폰에서 안드로이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낼 경우, 저해상도 파일 전송만 가능했다.
애플의 서비스 생태계 독과점 와해는 주가에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애플의 주요 항목별 매출을 보면 아이폰과 서비스(앱스토어 수수료 등) 항목을 제외하고는 1년새 매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실제 애플의 서비스 부문 매출은 2022년 3분기 191억8800만 달러에서 223억1400만 달러로 16%이상 증가했다. 반면 맥(115억달러→76억달러), 아이패드(71억달러→64억달러), 악세사리 등 주변기기(96억달러→93억달러) 매출은 1년새 감소했으며 아이폰 매출 또한 426억달러에서 438억달러로 2.8% 느는데 그쳤다. 애플의 사업부문별 매출 중 유일하게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 중인 서비스 매출이 독과점 이슈 등으로 감소할 경우, 애플의 시가총액 3조 달러 돌파는 향후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애플의 이 같은 주가 횡보가 반도체 설계역량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애플은 아이폰에 적용한 ‘A’ 시리즈와 맥북 등에 적용한 ‘M’ 시리즈 같은 자체 제작 칩을 바탕으로, 최근 몇년새 소프트웨어(SW) 뿐 아니라 하드웨어(HW) 역량 또한 여타 제조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최근 애플의 퍼포먼스를 살펴보면, 이 같은 압도적 칩 성능 우위가 점점 사라지는 모습이다. 실제 ‘아이폰15 프로’에 탑재된 AP ‘A17 프로’의 긱벤치 멀티코어 점수는 7194점으로 ‘갤럭시S24 울트라’에 탑재된 퀄컴의 ‘갤럭시향 스냅드래곤 3세대’의 7249점 보다 낮다. 싱글코어 점수는 여전히 A17 프로(2890점)가 스냅드래곤 3세대 for 갤럭시(2300점) 대비 높지만, 코어 여러개를 활용해 동시에 연산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퀄컴 AP가 애플 AP의 성능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고로 스냅드래곤 3세대에는 8개의 코어가, A17프로에는 6개의 코어가 각각 탑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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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에 탑재된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 또한 퀄컴이나 삼성이 설계한 칩이 애플 칩 성능을 넘어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갤럭시S24에 들어간 AP ‘엑시노스2400’에는 삼성전자와 AMD가 공동 개발한 GPU ‘엑스클립스 940’이 탑재됐는데, 애플 칩 대비 그래픽 처리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A17프로는 스냅드래곤3세대나 엑시노스2400 대비 한세대 앞선 3나노 공정에서 제작됐다. 애플칩이 이 같은 공정상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삼성·퀄컴 칩과 비슷한 성능을 보인다는 점에서, 칩 설계능력에서는 안드로이드 진영이 애플 대비 앞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 아이폰15 시리즈 출시 당시 AP 최적화 문제 등으로 ‘발열’ 논란이 있었다는 점에서 ‘애플답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애플 맥북 시리즈의 판매량이 계속 하락하는 이유 또한 칩 설계역량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애플 노트북 출하량은 지난해 3분기 기준 626만6000여대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1.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애플 노트북의 시장 점유율 또한 11.7%에서 9.7%로 2%포인트 하락했다. 애플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맥북 매출은 76억1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15억800만달러) 대비 크게 줄었다.
실제 애플이 지난해 4분기 내놓은 노트북용 칩셋 ‘M3’ 시리즈를 보면 애플의 칩설계 역량이 정체 됐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애플의 ‘M3프로’의 중앙처리장치(CPU) 성능은 2021년 출시된 ‘M1프로’ 대비 20% 가량 빨라진데 그쳤으며, 퍼포먼스 코어는 ‘M2프로’ 대비 2개 적은 6개를 탑재해 ‘성능 다운그레이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원 메모리 대역폭 또한 M2프로가 200GB인 반면, M3프로는 150GB로 오히려 줄어든 점 또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애플의 칩 설계 역량 문제는 최근 몇년새 발생한 핵심인력 유출과 관련이 깊다. 실제 A13, A14, M1 칩 개발 등에 참여했던 제라드 월리엄 애플 수석 개발자는 2019년 애플을 퇴사한 후 ‘누비아’라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를 창업했으며, 2021년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하며 이제는 퀄컴 칩 역량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애플 M1칩 개발 과정을 주도했던 개발자 제프 월콕스는 2년전 인텔로 이직했으며, M1 칩 설계 담당이었던 마이크 플리포 또한 2022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다.
이 같은 설계역량 하락과 맞물려 애플의 칩 관련 매출 또한 하락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애플의 지난해 반도체 관련 매출은 170억 달러로 2022년 180억 달러 대비 5.8% 가량 줄었다.
이외에도 업계에서는 ‘애플이 AI 관련 분야에서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지적한다. MS, 구글, 메타, 엔비디아 등이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과 다른 행보다.
물론 애플 또한 AI 시장에서 다영한 전략을 시도 중이다. 애플은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LLM)인 비쿠나(Vicuna)에 기반한 독자언어모델 ‘페렛(Ferret’)을 지난해 공개하며 멀티모달 기반의 AI 성능 고도화를 예고한 바 있다. 참고로 비쿠나는 버클리대와 스탠포드대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에서 메타의 LLM인 라마(LLaMA)를 파인튜닝한 후 내놓은 모델이다. 애플은 또 자체 LLM 프레임워크 ‘에이젝스(Ajax)’를 기반으로 한 ‘애플 GPT’를 연내 공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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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 관계자는 “다음달 2일 정식 출고되는 애플의 공간 컴퓨팅 기기 ‘비전프로’의 성과에 따라 애플의 시총 3조달러 기업 재진입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애플을 둘러싼 독과점 리스크 및 애플 매출의 17%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애국소비’ 열풍 등 애플 관련 리스크가 여럿이라는 점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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