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를 보는 이들의 입에선 탄식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3-3 동점을 기록한 한국은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습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5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말레이시아와 맞붙었습니다.
사실 이번 경기는 큰 긴장감을 자아내진 않았습니다. 한국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23위로, 말레이시아(130위)보다 무려 107계단 앞서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조 최약체로 분류되던 말레이시아를 상대하는데 클린스만호가 고전한 겁니다.
말레이시아전 어땠나…‘조 최약체’ 상대로 고군분투
말레이시아는 공격진의 강한 압박, 밀집 수비 대형을 유지했습니다. 한국은 전반 21분 정우영의 선제골로 균형을 깨뜨렸죠. 왼쪽 측면에서 얻어낸 코너킥 찬스에서 이강인이 올려준 볼을 정우영이 정면에서 뛰면서 머리로 받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후반 6분 만에 수비 실수로 동점골을 내줬는데요. 페널티지역 근처에서 황인범이 공을 뺏겼고, 이 공을 넘겨받은 파이살 할림이 김민재와 조현우 사이로 칩슛을 날려 득점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은 후반 17분 페널티킥으로 역전골도 내줬죠.
후반 38분 이강인이 프리킥으로 직접 슈팅한 공이 골대 오른쪽 모서리와 골키퍼 손을 연달아 맞으면서 골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골은 골키퍼의 자책골로 기록됐는데요. 한국은 후반 49분 오현규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손흥민이 득점으로 마무리하면서 3-2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후반 60분 모랄레스에게 골을 헌납하며 동점으로 경기를 종료했는데요. 바레인과 1차전에서 3-1로 이기고 요르단과 2차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둔 한국은 1승 2무(승점 5)를 기록해 조 2위로 조별리그를 마쳤죠.
한국의 이번 목표는 64년 만의 우승입니다. 그런데 토너먼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 최약체를 상대로 진땀을 뺀 건데요. 한국과 말레이시아 팬들이 극히 상반된 반응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관중석에 있던 한국 응원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지만, 말레이시아 관중들은 마치 승리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죠.
할림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은 세계 최고였고, 미래를 위해 배울 수 있는 경기였다. 냉정히 우린 그 수준이 아니다”라며 “한국은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팀이고 좋은 선수들을 보유했다.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전했습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겁니다.
선수 비난 높아져…손흥민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간“
무기력한 경기력이 이어지면서 비판도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까지 나와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죠.
앞서 20일 요르단전 이후 비난 여론에 직면한 조규성의 SNS에는 “머리카락 잘라라”, “축구선수인지 예능인인지 모르겠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조규성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친 탓이었는데요. 경기 전날 그가 출연한 예능 ‘나 혼자 산다’의 녹화분이 방송된 점도 비난 여론을 확산케 했습니다.
말레이시아전에서 또 한 번 투톱으로 기용된 조규성은 이날도 끝내 반등하지 못하면서 더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부진에 대한 비난은) 신경 쓰지 않는다”라며 “매우 아쉽지만, 내가 넣지 못하고 있다. 공격수가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그걸 따지며 경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후반 11분 상대 팀에 페널티킥 기회를 내준 설영우도 “멋 부릴 때가 아니다. 2부 리그에 가야 할 판”, “웨스트햄이 아니라 그냥 햄” 등의 비판을 받았죠.
이에 손흥민이 직접 미디어 앞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손흥민은 말레이시아전을 마치고 “대회 준비 전 기자분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선수들을 흔들지 말고 보호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라며 “많은 팬이 온라인, SNS에서 조금 선 넘는 발언을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안타깝다. 모든 선수는 가족과 친구, 동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마음 아프다.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간”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외신도 당황…“클린스만의 한국, 위협적이지 않아”
한국은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습니다. 손흥민뿐 아니라 김민재, 이강인 등 유럽 빅클럽 주전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가 꾸준히 나왔죠. 게다가 아시안컵 전까지 6경기에서 20골을 넣고 무실점 연승을 이어가는 등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막이 오르자, 클린스만호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바레인전은 3-1로 이겼지만, 후반 나온 2골은 이강인 홀로 만들어낸 득점이었죠. 요르단전에선 고전했고, 경기 종료 직전에 나온 상대팀의 자책골 덕분에 2-2로 비겼습니다.
말레이시아전은 관중은 물론 외신까지 당황케 했죠.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향해 “한일전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일본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3실점 중 2실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조 1위를 원했다. 선수들은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답했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란 매체 풋볼 아이넷의 모함마드 자마니 기자는 “클린스만의 한국은 인상적이지 않다. 파울루 벤투 감독 때 한국은 무서운 팀이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매체 스포츠호치의 호시노 고지 기자는 “우승을 목표로 삼은 팀의 감독이 한 선택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라고 의문스러워했죠.
그간 외유 논란에 시달렸던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결과로 답하겠다고 밝혔지만, 상대를 파고드는 뚜렷한 전략과 전술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말레이시아 매체 하리마우 말라야의 기자가 “황희찬이 더 공격적인 역할을 맡고 손흥민이 페널티지역 바깥 공간을 중심으로 프리롤을 소화하게 된다면 공격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클린스만 감독을 대신해(?) 조언을 건네기도 했죠.
일본도 험난했던 조별리그…우승 후보 양팀 모두 고전
공이 둥글기 때문일까요?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게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강력한 우승 후보, 일본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겁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FIFA 랭킹(17위)과 대회 최다 우승(4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엔트리 26명 중 20명이 유럽파입니다. 대회 직전 축구통계업체 옵타가 분석한 아시안컵 우승확률에서 24개 참가국 중 가장 높은 24.6%를 기록했는데요. 곳곳에서 D조 1위는 일본이 떼놓은 당상이라는 예측이 나왔죠.
그러나 일본은 수비가 무너지면서 ‘무실점 완승’을 한 번도 만들지 못하고 토너먼트에 올랐습니다. 이라크에 1-2로 덜미를 잡히면서 베트남을 4-2, 인도네시아를 3-1로 이겼음에도 예상했던 ‘이름값’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은 조별리그를 마치고 “공격진이 더 다양한 움직임을 가져가야 한다”며 “다음 경기(16강)에선 무실점 경기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일본 매체는 일본의 우위를 점쳤습니다. 일본 스포츠 신문 주니치 스포츠는 “한국은 5-4-1전형으로 수비한 말레이시아를 공격했지만, 효과적으로 무너뜨리지 못했다”라며 한국이 특정 선수들에 기댄 채 경기를 풀어간 점을 지적했는데요. 매체는 “일본과 팀 완성도를 비교하면 차이가 훨씬 크다”라며 조직력 면에서 일본이 앞선다고 강조했습니다.
쉽지 않은 16강…클린스만 “진지하게 분석할 것”
16강은 그리 낙관적이진 않습니다.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실점한 한국은 E조 최약체 말레이시아엔 3골을 헌납했습니다. 이 경기력을 이어간다면 우승은 거론할 수 없다는 게 주된 평가죠.
만약 한국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면, 국내 팬들은 황금 시간대에 경기를 관전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 경우 16강전은 31일 오후 8시 30분, 8강전은 다음 달 3일 같은 시간에 열릴 예정이었죠. 4강과 결승전은 자정에 열리지만, 조 1위가 됐다면 적어도 8강까진 한국에서 황금시간대 중계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조 2위로 조별리그를 마친 한국은 31일 오전 1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을 치르게 됐습니다. 8강에 올라도 다음 달 3일 오전 0시 30분에 경기를 치르죠. 또 8강 상대가 될 호주, 인도네시아는 28일 16강전을 치르는데, 한국과 사우디는 현지 시간으로 30일에야 격돌합니다. 16강에서 승리해도 이틀을 덜 쉬고 8강전을 치르게 되는 거죠.
다만 강력한 팀들을 피하게 됐다는 이점은 있습니다. 조 1위로 진출했다면 16강에서 일본, 8강에서 이란, 4강에서 카타르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들과 모두 엇갈리게 됐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에서만 6실점을 한 팀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절대적으로 믿는다”라며 “진지하게 분석하고 대화를 나누겠다”라고 답했는데요. 그는 “이번 대회에 쉬운 팀은 없고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우승하기 위해 어떤 상대도 꺾어야 하는 만큼 잘 준비해서 좋은 경기를 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댓글1
선수 비난할게 아니예요..3대3되서 동점 됐는데도 실실 쪼개는,감독이랍시고 지가 한국으로 올 생각은 안 하고 화상통신으로 선수들 봐주는 우리나라가 이기는 것에 진심이 아닌 클린스만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