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양가 부담…서울 ‘청약불패’ 옛말
계약 포기 속출, ‘n차 무순위 청약’ 거듭
“청약 메리트↓…자금여력 된다면 신축보다 구축 선호”
이른바 ‘청약불패’로 여겨지던 서울 분양시장 분위기가 한껏 얼어붙었다. 부동산시장 침체 속 분양가가 상승 흐름을 지속하면서 가격에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분양시장에서 발길을 돌리면서다.
24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e편한세상 답십리 아르테포레’는 미계약 물량 15가구에 대한 2차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앞서 이곳 단지는 지난해 10월 분양 당시 1순위 청약에서 24가구 모집에 2393명이 지원하며 99.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97가구 특별공급 역시 6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일명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 84㎡ 분양가가 12억원에 육박하며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지만 선방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계약을 앞두고 당첨자 54명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무순위 청약을 거듭하고 있다.
오는 3월 입주를 앞둔 동작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역시 무순위 청약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순위 청약 당시 401가구 모집에 5626명이 접수해 14대 1의 경쟁률을 냈으나, 이곳 단지에서도 계약을 포기하는 당첨자가 속출했다. 최근 강동구 ‘강동 중앙하이츠 시티’와 구로구 ‘남구로역 동일 센타시아’는 각각 5차, 8차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이처럼 우수한 청약 성적을 거뒀음에도 미계약 물량이 발생하는 단지들이 늘고 있다. 무순위 청약을 실시해도 곧장 주인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반적인 아파트 시세는 하락세를 보이지만, 원자잿값이 오르며 연일 분양가를 끌어 올리고 있어서다. 고금리와 정부 규제 완화로 강남 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역이 분양가상한제에서 벗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R114 집계를 보면 지난해 규제지역으로 남은 강남 3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보다 비쌌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을 제외하고 서울에서 공급된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3505만원으로 1년 전(3442만원) 대비 1.8% 올랐다. 2년 전(2549만원)과 비교하면 37.5% 뛰었다.
반면 같은 기준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3253만원으로 1년 전(3276만원)보다는 0.7%, 2년 전(3506만원) 대비 7.2% 각각 줄었다.
분양가가 시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책정되면서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청약 메리트가 반감된 셈이다. ‘선당후곰’(선 당첨 후 고민)도 옛말이 됐다.
신축 단지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면서 ‘청약통장 무용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수는 2561만3522명으로 1년 전 2538만1295명 대비 2.9% 줄었다. 2022년 6월 가입자수가 2793만1991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1년 6개월 연속 하락세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분상제가 있었을 때는 분양가가 합리적인 쪽으로 수요가 몰렸지만, 이제는 민간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비싸졌다”며 “이미 돈이 충분하고 자금 여력이 뒷받침된다면 시장에 물건이 쌓여 있으니 구축 가운데 취사 선택해 내 집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은 떨어지는데 신규 분양가가 계속 오르면서 청약에 당첨돼도 실익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과거처럼 시세차익을 거두기 어려워진 만큼 매수심리가 살아나려면 금리 인하가 어느 정도 가시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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