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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배의 금융의 창] 부동산 PF, ‘죄수의 딜레마’ 경계를

이투데이 조회수  

박덕배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금융의 창 대표


개별금융사 ‘살자’ 하면 공멸 초래
정책기능 살려 공조체제 유도하고
가격안정보다 거래활성화 꾀해야

새해 벽두부터 국내 도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이 금융기관 채권단과의 오랜 논의 끝에 가까스로 합의되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의 부실로 정상 경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내 부동산 PF는 담보가 아닌 아파트 건설 현장 등 사업장의 ‘사업성’을 보고 금융회사가 건설회사가 만든 서류상의 PF 사업 주체에 빌려주는 금융기법이다. 따로 담보를 확보하지 않는 것은 사업 자체가 채권의 담보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금융기관에선 개발계획에서부터 업체의 사업수행 이력 등 다각도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자금 집행을 실행한다.

건설사의 초기 사업비는 부동산 PF 대출을 통해 충당한 다음에 공사가 마무리돼 가면 분양자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받아 갚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태영건설 사태는 60여 곳에 부동산 PF 사업장을 둔 대형 건설회사로서 금리상승과 부동산경기 침체로 차입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국내 부동산 PF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2015년부터 부동산시장이 회복되고, 코로나 저금리를 틈타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은행 업계에 대한 건전성 규제로 고수익을 노린 비은행 금융권의 참여가 PF 급증에 한몫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23년 6월 말 기준 133조 1000억 원이며, 이 중 은행권의 비중이 32.4%, 비은행권이 67.6%이다. 대출 외에도 주로 증권회사가 취급한 부동산 PF 채무 보증 잔액도 매우 크다.

문제는 비은행권 금융기관의 PF인데, 그중에서도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상호금융기관 등 소위 서민금융기관의 PF 대출이다.

이들 금융기관은 자신의 업권별 자본금이나 자산 등에 대비한 PF 비중이 은행권에 비해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관여된 PF 사업장이 질적인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주로 은행권 등에서 거부한 사업 초기 토지매입 등에 사용되는 고금리 대출인 ‘브리지론’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부동산 PF 여건이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된 2022년 후반부터 시장금리가 빠르게 오른 데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회복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거래량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특히 비은행권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PF 대출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나이스신용평가는 대형건설사 5곳의 추가 우발채무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심화에 따른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건설경기는 물론 국내 경기 전반의 침체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는 국면이다.

정부는 현재 부동산 PF 대출 금융사들은 부실하거나 부실 우려가 있는 PF 사업장의 정상화를 위해 ‘PF 대주단 협약’을 맺어 정상화 방안을 수립하고, 부동산 PF 정상화 펀드도 조성하고는 있지만 속도감이나 강도가 크게 떨어진다. 경제적 여건이 계속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가세하면 급작스럽게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특히 4월 총선 전후 정책당국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약해진 틈을 타 금융회사들이 서로 자기 몫을 챙기려다 보면 위기가 더욱 빨리 다가올 수 있다. 개별 금융회사의 처지에서는 그게 최고의 선택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결국 최악의 선택이 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기 때문이다. 자칫 비은행 금융권이 공멸할 수 있고, 그 여파가 우량 건설사뿐만 아니라 안심하고 있는 은행권에도 미치게 된다.

본래 위기는 외면하거나 피하려다 보면 나중에 피할 수 없는 큰 위기로 돌아오는 법이다. 예견되는 위기가 크게 확대되지 않도록 정책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금융권 전체 차원의 공조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하여 금융기관을 설득하고 일정 양보를 얻어내, 이들이 PF 부실 건설사와의 해결책을 독려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침체기에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정책은 거래 없는 가격안정보다 거래 활성화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높아진 가격에서는 미분양 주택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그리고 비은행권 서민금융기관 시스템마저 붕괴할 때 부동산 PF와 관계없는 서민의 생활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이투데이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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