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은행권 분위기가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를 두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대규모 손실이 연이어 확정되는 가운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투자자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납작 엎드린 채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기반 ELS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를 중심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ELS 투자자들이 몰려 장소를 옮겨 진행됐다.
주최 측은 애초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세미나실을 마련했지만 행사를 앞두고 ELS 투자자들과 취재진이 몰리며 급하게 장소를 수백 명이 들어가는 회의실로 바꿨다. 그럼에도 토론회장은 ELS 투자자로 가득 차 설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ELS 투자자들은 19일에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삭발시위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금감원 앞에서 처음 시작된 ELS 투자자 단체행동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인데 이런 흐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도 ELS 관련 투자원금 손실이 속속 확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H지수는 지정학적 위험과 중국 경제 침체 영향 등에 따라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날에는 특히 장중 5천 포인트선이 붕괴되기도 했고 결국 15달 만에 최저점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홍콩 H지수는 패닉 장세가 재현되며 20차 당대회 직후인 2022년 10월31일 이후 최저점으로 마감해 홍콩 연계 ELS 투자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제시했던 지지선 5천 포인트가 붕괴될 위험에 노출됐다”고 바라봤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원금 손실 구간별 규모는 5000~5499가 3조3880억 원으로 가장 많지만 5천 포인트 아래인 3500~4999 구간도 3조5950억 원에 이른다.
ELS 투자원금은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농협) 기준 19일까지 2296억 원 가량이 손실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수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H지수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만큼 손실액이 더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은행권 긴장감은 이에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8일부터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이복현 원장이 3월까지 결론을 내겠단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만큼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의 현장검사를 받고 있는 일부 은행에서는 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엘리베이터나 회사 로비를 오갈 때 ELS 관련 사안을 언급하지 말라는 쪽지까지 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 이처럼 경계 태세에 돌입한 것은 ELS 판매액수가 컸던 만큼 불완전판매로 결론이 날 경우 손익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업 관련 신뢰도 하락까지 더하면 은행 관점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증권가는 이 때문에 올해 4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 가운데 올해 유일히 후퇴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금융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마저 내놓기도 한다.
H지수 기반 ELS 판매액수는 지난해 8월 말 기준 국민은행(8조1972억 원), 신한은행(2조3701억), 하나은행(2조1782억) 순으로 국민은행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우리은행 판매액수는 400억 원대에 불과해 이번 사태에서 비켜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감원 조사 결과에 따라 ELS 사태가 임원 징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은행 관점에서는 부담이다.
금융당국이 최근 몇 년 동안 은행의 내부통제 강화를 지속해서 강조하는 상황에서 임원급까지 책임을 묻는다면 은행의 신뢰도는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H지수는 2021년 고점 대비 급락하며 이를 기초로 하는 투자자 근심을 키우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5일 기준 H지수 기초 ELS 판매 잔액은 19조3천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79.6%에 달하는 15조4천억 원의 만기가 올해 돌아온다. 특히 상반기에만 10조2천억 원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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