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버스 운행 가능 기간 11년→16년 연장 법 개정안 법사위 심사 앞둬
노후 버스, 긴급제동장치 의무 장착 대상 제외…일부 안전장비 설치 불가
국내 버스산업 황폐화, 중국산 버스 국내 진출 가속화 우려도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등 노선버스의 내구연한을 기존 11년에서 최장 16년까지 늘리는 내용의 법안이 추진돼 시민 안전은 물론 환경 오염에 미치는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23일 버스업계에 따르면 노선버스 차령(車齡)을 연장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버스 차량의 운행 기간을 규정하는 내구연한 제도는 도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법은 노선버스 차량을 최대 9년까지 운영하되 도로교통공단 검사에 합격한 차량에 한해 2년 범위에서 차령(車齡)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천연가스(CNG)버스를 비롯, 대중교통 부족 지역 등의 버스 차령을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노선버스 투입 가능 기간은 최대 14년까지 늘어나고, 7년 연장 대상인 전기 및 수소전기버스는 최대 16년까지 노선버스 투입이 가능해진다.
개정안의 취지는 법 제정 당시에 비해 버스 제작 기술이 발전했고,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친환경 차량이 도입되는 등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반영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버스 교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운수회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운수회사 버스교체 부담 덜어주려 승객 안전 도외시?
문제는 10년 이상 운행한 버스의 경우 최신 안전보조장치 장착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운수회사들의 버스 교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승객 불편과 안전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범퍼 등에 설치된 센서로 주행 중 추돌 위험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량을 멈춰주는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Advanced Emergency Braking System)가 대표적이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광역버스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8년 이후 출시되는 신규 차량에 차로이탈경고장치(LDWS)와 AEBS 적용을 의무화했다. 다만 법 제정 이전 생산된 차량의 경우 AEBS 장착은 권고 사항에 그쳤다. 장착이 수월한 LDWS와 달리, 기존 차량에 AEBS를 설치하려면 2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드는데다, 2015년 이전 출시된 버스는 차량 부품을 잇는 시스템이 없어 AEBS 장착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해 10월 승객 20여 명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기사가 휴대전화를 보다 앞서가던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아 4명이 숨지는 등 AEBS 미장착 버스에 의한 사고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본 제도대로라면 AEBS 미장착 버스들은 오는 2028년부터 도로 위에서 자취를 감출 예정이었지만,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통과로 버스 차령이 연장되면 2031년까지 운행이 가능해진다.
승객 안전을 위해 마련된 안전보조장치 장착 의무화가 차령 연장을 통해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또, 노후 버스는 승객의 신속한 대피를 돕는 비상탈출구를 비롯, 승객을 자동으로 감지해 끼임 사고를 막는 출입문 초음파 센서 등 법적으로 의무화되거나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도입한 안전장치의 적용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다.
노후 차량일수록 안전을 위한 철저한 정비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조사의 차량 보증기한이 지나면 운수회사가 모든 정비를 책임져야 하는데, 인력 및 기술 부족 등을 이유로 필요한 정비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차령 연장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사고 발생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2017년 차령이 적법하게 연장된 시내버스가 주행 도중 엔진 화재를 일으켜 승객 6명이 긴급 대피했고, 이튿날 같은 회사 소속 노후 버스가 또다시 운행 중 불이 나 멈춰 섰다. 당시 화재 원인으로 정비 불량이 꼽혔으며, 관할 지자체는 해결책으로 9년 이상 버스의 차령 연장을 가급적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친환경 차량 전환 계획과 상충 우려도
버스 차령 연장이 정부 탄소 중립 정책의 핵심인 친환경 차량 전환 계획과 상충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업계에 따르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시 기존 차령(11년)을 초과하고도 폐차되지 않고 운행되는 시내버스가 연평균 약 2350대, 향후 3년간 약 7000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 개정으로 차령 연장 혜택을 받게 되는 버스 대부분은 디젤 또는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이다. 디젤버스는 일반 승용차보다 온실가스는 30배, 미세먼지는 43배 이상 배출하는 탓에 수도권 대기오염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과거 저공해 차량으로 주목받았던 천연가스버스 역시 디젤버스보다 덜할 뿐 오염물을 배출하긴 마찬가지다. 1km당 이산화탄소 968.55g, 질소산화물 0.797g을 배출한다. 시내버스 일평균 주행거리(229Km)를 감안하면 연간 한 대의 천연가스버스가 이산화탄소 80.9t, 질소산화물 66kg을 발생시키는 셈이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실현 방안에는 전기 및 수소차량 보급 확산 등 기존 내연기관 중심에서 친환경차 중심으로의 수송 체계 전환이 명시돼 있다.
이를 위해 2022년 기준 1.7% 수준인 친환경차의 등록 비중을 오는 2030년 16.7%까지 높일 방침이지만, 법 개정으로 기존 내연기관 버스의 차령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정부의 친환경차 전환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과도한 차령 연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버스 및 지하철 등 대중교통분야 세계 최대 규모 협의체인 세계대중교통협회(UITP)가 밝힌 버스의 차량 수명은 12년으로, 현행 국내 기준인 11년과 큰 차이가 없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교통당국의 검사로는 차량 운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샤시, 엔진 등의 문제 여부를 세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매년 되풀이되는 미세먼지 및 기후위기에 따른 친환경차 보급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내연기관 버스에 대한 차령 연장은 탄소중립 실현에 대한 각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국내 버스산업 무너지면 중국산 버스로 대체?
개정안이 국내 버스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버스 차령 연장에 따른 구매 수요 감소가 국내 버스산업 위축 및 중소 버스 제작 업체와 부품사의 경영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24년 대차 또는 폐차 시기가 도래하는 약 2350대의 시내버스를 매출로 환산하면 연 1조1000억원 규모로, 업계에서는 노선버스 시장 수요가 장기적으로 30% 이상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버스 및 트럭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 1000여 곳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으로, 버스 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상용차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 20여 개 부품사의 2022년 평균 이익률은 1% 내외에 불과한 형편이다.
경영난이 더욱 악화하면 신기술 개발 동력 상실뿐 아니라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국내 상용 부품사의 어려움으로 인한 빈자리를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산 버스가 파고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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