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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잇단 변심에 전기차 침체까지…64조 투자 무색해진 韓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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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잇단 변심에 전기차 침체까지…64조 투자 무색해진 韓기업
포스코그룹의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데모플랜트 공장 및 염수저장시설.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 가격이 오랜 기간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시차를 두고 배터리셀 업계의 매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 제공=포스코홀딩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신공장(메타플랜트)을 짓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당초 기대와 달리 투자세액공제 규모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미국발(發) 정책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국 우선주의’로 기우는 미국의 정책 변수에 기업들은 또다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투자의 속도 조절이 일단 유력한 카드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전기차 수요 감소와 리튬·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가격 급락의 부작용이 밸류체인을 타고 업계 전반에 불어닥칠 것으로 전망돼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배터리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 리스크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은 첨단 제조 시설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을 폈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7조 원 이상을 들여 전기차 신공장을 짓고 있고 국내 배터리 3사가 북미 지역에 2025년 전후로 완공 예정인 배터리 공장(단독·합작 포함)은 14곳, 전체 투자 규모만 64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쏟아부은 것만큼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가 대표적이다. 미 행정부는 IRA를 도입할 당시 전기차 공장과 같은 청정 제조 시설에 대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액공제를 최대 30%까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기차 신공장 하나를 짓는 데만 7조 원이 넘는 돈이 소요되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美 잇단 변심에 전기차 침체까지…64조 투자 무색해진 韓기업

현실은 달랐다. 투자세액공제는 제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지원 한도(100억 달러)가 생겼고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 등 까다로운 평가 기준까지 추가됐다. 미 행정부가 현대차그룹처럼 투자액이 커 세액공제 폭도 클 수밖에 없는 기업들을 솎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도를 따로 두지 않은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45X 조항)도 미국의 이익에 따라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 변수만 문제가 아니다. 본격화한 전기차 수요 둔화는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생산 조절을 넘어 배터리 업계의 투자 계획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분석 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미국의 전기차(테슬라·리비안 제외) 재고는 114일분으로 전년 동기(53일분) 대비 두 배 이상 많았다. 미국 평균 자동차 재고가 71일분인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 재고는 매우 높다.

부진한 전기차 수요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전기차 생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GM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쉐보레 이쿼녹스와 전기픽업트럭 실버라도의 전기차 생산을 연기했고 포드도 자사 대표 전기차 모델인 F-150라이트닝 픽업트럭의 올해 생산 목표를 주당 3200대에서 1600대로 절반 낮췄다. 현대차·기아는 아직 전기차 생산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있다.

전기차의 생산 조절은 배터리 업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배터리3사의 수주잔액은 1000조 원에 이른다. 일감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 속도 조절을 길게 가져가면 배터리 업계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리튬·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이 오랜 기간 낮은 가격대에 머물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리튬 평균 가격은 19일 기준 1㎏당 86.50위안으로 최고점(2022년 11월)의 15% 수준이다. 고성능 배터리에 투입되는 핵심 광물인 니켈 가격도 같은 기간 톤당 1만 6036달러로 2년 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광물가격의 하락은 에코프로·엘에프 등 배터리 소재 업체의 재고 평가 손실을 거쳐 배터리셀사의 매출도 떨어뜨린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평균 13%로 전망됐다. 2022년 80.8%, 2023년 40.7%(추정)에 비하면 양적 성장 속도가 대폭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다 보니 배터리 업계도 생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전기차 수요 둔화에 미국의 세 번째 배터리 공장 건설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11월 미국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가 운영하는 조지아주 공장의 생산 규모를 축소했다. 최근에는 켄터키주 2공장 가동 계획도 연기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LG엔솔도 지난해 11월 포드와 체결했던 배터리 합작법인 업무협약(MOU)을 철회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시장은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IRA 폐지와 같은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어 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 정국”이라며 “배터리 시장도 가격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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