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에서 끓는 주택 전세시장을 잠재우겠다며 도입한 ‘임대차 3법’은 오히려 전셋값 폭등을 부추겼다. 집주인들이 전세매물을 거둬들이자 기존 세입자도, 신규 세입자도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더 끓어올랐던 임대차 시장은 그 뒤 차갑게 식었다. 금리상승과 전세사기 여파로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전세시장은 엉켜있다. 전세수요가 뒷받침되는 수도권 아파트는 전세난이 다시 거론될 정도로 전셋값이 뛰고 있다. 하지만 다세대 등 빌라는 역전세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슬럼화하는 조짐까지 보인다. 양질의 전세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에도 시장은 미심쩍은 반응이다.
‘임대차3법’ 후 출렁…매물 줄자 다시 ‘전세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2019년말부터 상승해 2022년 중순 104.3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5월까지 하락하던 지수는 반등세로 돌아서며 이달 8일 기준 88.7을 기록했다. ▷관련기사: 지치지 않는 전셋값 상승에 ‘탈서울’…금리 내리면 더?(1월14일)
2021~2022년 전셋값 폭등의 배경으로 임대차 3법이 지목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말부터 오름세를 보이던 전셋값을 잡기 위해 이듬해 7월 임대차3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임대차 기간을 2+2년으로 연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재계약시 임대료 상승폭을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 30일내로 계약사항을 신고해야 하는 ‘전월세신고제’를 도입한 것이다.
취지는 좋았다. 당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이 빨라지고 주택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임차가구의 주거불안과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하기 위해 임대차 보장기간을 연장하고 계약 갱신 시 보증금을 5% 이상 증액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전셋값은 오히려 더 크게 상승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4년 임대가 부담스러운 집주인들이 전세매물을 거둬들이면서 공급이 줄자 임차보증금은 당연히 올라갔다”며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해준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전셋값 폭등의 고통은 결국 임차인에게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계약 갱신이 본격화되는 2022년말부터는 기준금리 상승과 전세사기 사태로 ‘역전세‘가 나타났다. 전세 수요자가 급감해 전세 시세가 기존 보증금보다 낮아졌는데 집주인의 자금 여력이 악화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2022년 1월 25.9%에서 지난해 4월 52.4%로 확대됐다. 지역별로는 서울(48.3%)보다 경기·인천(56.5%), 비수도권(50.9%)에서 높게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만기가 도래하는 전셋집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 보증금을 낮추고 차액을 집주인이 메워야 했다”며 “기존 세입자가 전세사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사 가지 않고 살던 집에 눌러앉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역전세난은 이내 ‘전세난‘으로 반전됐다. 전세 매물이 부족해 전셋값 고공행진이 이어진 탓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1월 둘째주 수도권 아파트 전세 매물은 8만352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4% 감소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도 지난해 6월부터 지난주까지 30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반년 넘게 전셋값이 계속 올랐다는 의미다.
전세사기 이어 반환보증 문턱에 ‘우는’ 빌라
빌라와 같은 비(非)아파트는 역전세 우려가 다시 커지는 모습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집토스가 수도권 연립·다세대 전월세 실거래가와 주택 공시가격을 분석한 결과, 2022년 체결된 전세계약의 66%가 올해 계약을 갱신할 경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 63%, 경기 66%, 인천 86%의 만기예정 빌라가 기존 전세금으로는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은 금천구(87%), 경기는 이천시(87%), 인천은 계양구(92%)의 가입불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 역시 각각 85%, 75% 수준이었다.
전세사기 여파로 아파트 쏠림 현상이 심화된 데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요건이 강화되면서 비아파트가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HUG는 지난해부터 기존계약의 담보인정비율을 100%에서 90%로 상향했고, 올해부터는 갱신계약에 대해서도 문턱을 높이기로 했다.
HUG 관계자는 이런 분석 결과에 대해 “최근 전셋값이 떨어지는 시점인데 2022년 고가 전세시장 기준으로 된 통계”라며 “반환보증 가입자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세시장 회복을 위해 민간임대 활성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토교통부는 1·10대책을 통해 소형주택 등록임대를 유도하고,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감정가에 협의매수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선물세트?’ 임대사업자 콧방귀 이유(1월16일)
소형 신축주택(60㎡ 이하, 수도권 6억·지방 3억 이하, 아파트 제외)을 매입하거나 소형 기축주택을 구입해 임대등록하는 경우 세제 산정시 한시적으로 주택수를 제외해준다. 단기 등록임대(6년)도 부활시키고 100채 이상 보유한 기업형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도 확대한다. ▷관련기사: “모두가 집 가질 순 없다”…다주택자에 면죄부 던진 윤 대통령(1월10일)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정부가 소형주택은 투자보다는 임대목적으로 보고 ‘다주택자들이 구입해서 임대하십사’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임대목적으로 한 소형주택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주택수 산정을 제외해 줄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주택수가 아닌 전체가액에 따라 과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억원짜리 원룸 5채를 갖고 있다고 해서 5주택자로 간주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어 “단기임대 의무임대기간(6년) 이후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요구하면 사실상 8년을 임대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장기(10년)와 다를 바 없다”며 “현재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장기 등록임대에만 해당되는데, 단기에 어떤 과세특례가 적용될지 향후 상세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부와 LH는 매입임대 사업의 매입 가격을 ‘감정가’ 수준으로 현실화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협의매수해 보증금 반환금액을 낙찰가보다 높이고 속도도 앞당길 계획이다. 다만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후 6개월이 지났지만 LH 공공매입이 실제로 성사된 경우는 아직 0건이다.
LH 관계자는 “경매 유예기간이 남아있어 아직 실적은 없는 상태지만 신청은 계속 받고 있다”며 “매입약정 기준에 대해서는 국토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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