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이 발발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간다. 러시아는 침공 기간에 동부지역의 도네츠크, 헤르손, 루한스크, 자포리자 등 4개 주를 합병한 2023년 9월 이후 영토에 큰 변경이 없는 채로 양쪽 모두 교착상태에 있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하르키우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10여 명의 시민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나의 오랜 친구 타치아나 이사예바가 관장으로 있는 우크라이나젠더박물관은 바로 하르키우에 위치해 있다.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여성박물관이 이곳에 있기에 방문했던 2017년이 바로 어제 같은데, 평화로웠던 도시는 계속되는 전쟁의 참화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북동쪽에 위치한 하르키우는 러시아국경에서 불과 30km 거리에 있어 공습 처음부터 피해를 입었고, 러시아군이 안정적으로 점령한 도네츠크와 돈바스크에서 300~400km 거리의 교통 요지에 있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도 피해가 클 수 있다.
전선의 교착상태 속에서 우크라이나 내부의 오랜 부패문제, 통치시스템의 부재, 극우주의적 분위기의 확산, 그리고 극심한 사회분열도 문제이지만, 단시간에 해외로 빠져나간 인구도 우크라이나의 공동화 현상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타치아나 이사예바 관장과 가족들도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피신하였다.
숫자로 확인하면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훨씬 비관적으로 다가온다. 2022년 2월 러시아 공습 이후에 우크라이나인들이 국내의 다른 도시나 해외로 떠나는 피란 행렬에 몸을 실었다. 대략 3760만 명의 우크라이나 인구 가운데 거의 2000만 명이 해외로 피신하였고, 그 중 1200만여 명이 귀환하였으나 아직 860만 명 정도가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2023년 5월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는 2900만여 명이다. 그마저도 노동가능 인구 중 250만 명이 실업 상태이며, 전쟁 때문에 타지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국내 실향민 500만 명을 고려하면, 결국 900만 명 정도가 우크라이나 인구를 먹여살리는 실정에 놓였다는 연구도 있다.
놀라운 것은 다양한 세대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해외의 피란처 곳곳에서 여성의 역사와 기억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타치아나 이사예바 관장은 전쟁 발발 이후 ‘전쟁에 관한 허스토리’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타지와 타국으로 피신한 피란민, 전시상황에서 성폭력과 기아를 경험한 여성과 아동, 전투원으로 입대한 여성군인,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수많은 시민여성들의 인터뷰 작업을 시작하였다. 인터뷰 자료는 우크라이나젠더박물관의 중요한 전시콘텐츠일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현대사 기록물이 될 것이다.
한편 타냐 코르니엔코(Tanya Kornienko)는 여성인물 초상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디지털 세대답게 우크라이나 민속화풍으로 여성인물을 표현하고, 그 이미지들을 사용해 달력, 액자, 티셔츠, 스티커, 컵, 액세서리로 만들어 대중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제 역사 속 여성인물들은 박물관이나 연구기관뿐 아니라 카페나 쇼핑센터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되어 생생하게 다시 살아난다.
젠더뮤지엄코리아는 예술가들, 전시기획자들, 역사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한국 역사 속 위대한 여성 인물을 되살리는 초상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쏘아 올리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노력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이러한 노력은 새로운 우크라이나로 나아가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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