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제3지대 정당 정치인들이 단일 대오를 놓고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며 엇갈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제3지대 정당 사이에 이념과 정책의 차이뿐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히며 이른바 ‘빅텐트’ 형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늘고 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이 주도하는 제3지대 빅텐트 형성 여부가 이번 주 안으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낙연 위원장은 전날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빅텐트는) 선거로부터 역산할 경우 2월 초순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며 “그 일정에는 맞추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당을 통한 단일 대오 형성을 위해서는 늦어도 각 당 사이에 이번 주 안으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운미래와 개혁신당 및 미래대연합은 22일 통합 접점 마련을 위한 협의체를 가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제3지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받은 이준석 대표는 새로운미래와 개혁신당 사이 합당에 대해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당이 창당한 다음날 합당하는 것은 코미디 아닌가”라며 “골든타임은 지나갔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다른 방식의 연대 형태를 제안했다. 이 대표는 △각 당별 지역구 배분을 통한 공천 △지역구는 단일 기호로 출마하되 당별로 비례대표 별도 선정 등의 방식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 열망이 있을 경우’에 완전한 합당을 통한 빅텐트 구축이 가능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이 위원장이 이끄는 새로운미래와 합당에 일정 부분 거리를 둔 셈이다.
이 대표와 이 위원장 사이의 불협화음뿐 아니라 여러 불안의 씨앗들이 도사리고 있어 빅텐트 형성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먼저 이 위원장과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내 ‘비명(비 이재명)계’ 모임이었던 ‘원칙과상식’에서 나와 당에 잔류하면서 이 위원장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이 위원장은 16일 ‘배종찬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윤 의원의 잔류 결정에 대해 “정치인의 거취 결정은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신경민 의원께서 제가 많이 서운해했다고 하셨는데 꼭 정확하진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 ‘원칙과상식’ 구성원이었던 이원욱 미래대연합 공동대표가 이낙연 위원장과 “따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이 위원장으로서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에 이 위원장은 “표현의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당신들이 앞장서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하면서 민주당 출신 제3지대 정치인 사이에 주도권 싸움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또 개혁신당과 새로운선택에 합류한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과의 불협화음도 빅텐트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류 전 의원은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정치인으로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2030세대 위주인 개혁신당 지지층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더구나 천하람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류 전 의원이 정의당을 탈당하지 않고 새로운선택에서 활동하는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천하람 최고위원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허은아 의원한테 류호정 의원처럼 되지 말자고 했다”고 날을 세웠다.
미래대연합과 개혁신당 사이에도 정치적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원욱 공동대표는 이준석 대표가 18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갈라치기를 통한 ‘2030 MZ세대’에 소구하는 전략을 확실히 결정한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런 전략이 나올 것 같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혐오를 낳고 갈라치기를 하는 것은 지양해 주면 어떨까”고 비판했다.
제3지대 정당 사이에 이견이 드러나면서 빅텐트 형성을 놓고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제3지대 정치인들 사이에 정치적 스펙트럼이 큰 데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한 상황에서 신당이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장윤미 변호사는 1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이준석 전 대표는 윤석열 정권을 만든 당사자고 이낙연 전 총리는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부의 총리였다”며 “총선 앞두고 뭔가 원내 입성을 해야 되고 세력화를 해야 되겠으니까 뭉치겠다? 두 사람이 정치적 공감대가 없는데 뭘 양보해서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번 총선처럼 견해 차이가 큰 정치인 사이에 합당이 이뤄진 사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 역사에서 제3지대 정당으로 △1인 정당(통일국민당’신정치개혁당’국민통합21’창조한국당) △지역별 정당(자유민주연합’국민중심당’자유선진당’민주평화당) △이념별 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게 제3지대를 이뤘던 과거 사례들은 대체로 지역과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구성해 선거에 나선 경우다.
정치권의 빅텐트 논의는 대체로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한 표라도 많이 얻으면 당선되는 구조에서 주요 정당들이 중도층 공략 경쟁을 벌이고 결국은 이념에 치우친 거대 양당제로 귀결되는 형태로 흘러가는 일이 많았다.
이번 총선에서 논의되는 제3지대 빅텐트론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양분하고 있는 기득권에 반하는 반기득권(Anti-establishment) 논리에 따라 등장했다.
하지만 반기득권 역시 새로운 아젠다는 아니다. 2020년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야권의 혁신 방안으로 ‘신당 창당’을 제안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2020년 11월7일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 주도하는 연구모임 국민미래포럼 강연 뒤 비공개 간담회에서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서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롭게 모이자”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당은 결국 국민의힘과의 합당으로 귀결됐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에 대해 “당의 색깔이든 ‘미래’개혁’ 이런 (개혁신당의) 핵심 개념들도 다 제가 했던 것들 아니냐”며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양당제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에서도 제3지대 움직임이 나온다.
지난해 9월24일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뉴욕시장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패배한 뒤 탈당한 앤드루 양(Andrew Yang)과 공화당 출신인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Christine Todd Whitman) 전 뉴저지 주지사의 주도아래 ‘전진당(Forward)’이라는 정당이 창당됐다.
이들 역시 한국 제3지대처럼 양당 구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대안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알리면서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들은 자신들을 급진적 중도로 규정하고 기본소득을 대표적인 정책으로 내세웠다.
다만 미국의 전진당이 한국 제3지대와 다른 점으로는 당장 코 앞에 닥친 대선과 총선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주’지방 선거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 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 꼽힌다.
미국에서도 양당제가 확립된 뒤 제3의 정당이 자리를 잡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나선 랠프 네이더가 민주당 표를 잠식해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영향을 미친 사례가 정치권에 충격을 준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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