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까지 1년 간 접수 민원 1410건
정치권 “법, 윤리적 책임 되짚어야”
은행권 긴장 모드 속 KPI 투자상품 관련 배점 개편
“만기 안내를 받았는데 손실률이 -52.1%다. 입금된 금액을 보니 숨이 막히고 손까지 떨렸다. 아직 만기가 세 개 더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원금 손실은 없을꺼라더니 내 돈은 누가 책임지나.”
은행권에서 판매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원금 손실이 현실화되자 각 판매사마다 소비자 민원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릴레이 현장 조사에 돌입한 금융당국이 늦어도 오는 3월까지 홍콩H지수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대책을 내놓기로 한 가운데 정치권까지 압박에 가세하면서 은행들은 초긴장 상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이달 12일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접수된 홍콩 ELS 관련 전체 민원 건수는 1410건으로 조사됐다. 각 판매사를 비롯해 홍콩 ELS 가입자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투자 피해를 호소하거나 울분을 토로하는 사례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투자 원금의 반토막 손실이 확정되는 등 투자자 피해가 가시화되면서 금융당국은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집중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일부터 KB국민은행,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12개 주요 판매사에 대해 현장검사에 들어갔다. 일부 금융사의 경우 분쟁민원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민원 조사도 동시에 실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은행권은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등 사모펀드 사태 이후 투자자 보호를 전제로 ELS 같은 고난도 금융상품의 신탁판매 허용을 요청했던 점을 고려해 고객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로 인한 위법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히 조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예·적금이 아닌 금융투자상품이기 때문에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 하에 (투자자가) 책임져야 할 게 있다”면서도 “책임의 문제와 별개로 손실 부담, 책임소재 정리에 대해서는 개선돼야 한다는 점은 여지가 없다. 2∼3월 정도에 필요한 것을 빨리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압박에 들어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홍콩 ELS 상품의 82%를 판매한 은행들이 법적 책임 외에 윤리적 책임을 다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는 “2019년 파생결합증권(DLS), DLF 불완전 판매 사태를 계기로 금융지원소비자보호법이 제정돼 2021년부터 시행됐음에도 유사한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을 금융당국과 국회도 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손실 확정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민원이 많이 오고 있다”면서 “금감원에서 민원 조사에 대한 지시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지만, 국민은행에 민원 조사를 하고 있는 만큼 민원 유형 데이터를 준비하는 등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은 핵심성과지표(KPI)에 투자상품 관련 배점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등 전면 개편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은 올해부터 초고령자 기준을 80세에서 65세로 확대하고,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에게 투자상품을 판매할 경우 해당 실적을 KPI에서 제외한다. 65세 이상 고객에게는 ELS를 포함한 고위험 상품에 대한 실적을 KPI에서 제외한다.
하나은행은 영업점 수익률 평가항목에서 ELT 등 구조화 상품의 수익률은 제외하고 있고, 80세 이상 초고령 투자자에게 판매 때 실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부터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에게 투자 상품을 판매할 경우 해당 실적을 평가에서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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