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가전 전시 대폭 축소…외관보단 AI 성능 시연
AI 기반 미래 모빌리티…차체 대신 ‘소프트웨어’ 힘
중후장대 역시 최첨단 AI 기술 장착하고 CES 등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 참석한 기업들이 모두 AI(인공지능)에 방점을 찍었다.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가전, 반도체, 차량, 중공업 등 ‘모든 산업의 AI화’가 올해의 화두였다.
올해 CES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가전의 축소’ 였다. CES가 전통 가전 박람회 성격이 짙었던 것에 반해 지난해와 올해는 유독 가전 전시가 많이 쪼그라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생성형 AI 촉발로 시작된 산업의 인공지능 도입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 영역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외관인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다.
실제 올해 CES 전시부스에서도 이같은 기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주요 가전 기업들의 전시 부스엔 가전 대신 차량이 전시돼있고, 반도체 업계에서도 ‘생성형AI 발달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중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전자 부품 소재 기업에는 차량이 전시됐지만, 막상 ‘완성차 업체 부스에는 정작 차체가 보이지 않는 다소 모순적인 상황도 연출됐다.
전통 가전 전시 대폭 축소...외관보단 AI 성능 시연
글로벌 투톱 가전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냉장고·세탁기 등 전통적인 의미의 가전 전시가 대폭 축소됐다는 점이다. 전통 가전을 한두대 정도만 가져다놓은 다음 AI 기능을 탑재해 시연을 보이는 식이다.
먼저 LG전자는 아예 ‘인공지능’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으로 재정립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AI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실질적 이점을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가전으로부터 주변환경을 수집해 LG AI 브레인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또한 LG전자는 최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자사 스마트홈 플랫폼 LG 씽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AI 기반의 미래 스마트홈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이란 주제로 전시에 참석한 삼성전자는 ‘AI 비전 인사이드’를 탑재한 비스포크 냉장고를 선보였다. 식재료를 넣으면 자동으로 리스트를 만들고 유통기한 등까지 계산하는 스마트 가전이다. 또한 AI 컴패니언 ‘볼리’도 공개했다. 사용자 패턴을 학습해 집사 역할을 담당하고 집을 모니터링한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생성형 AI인 ‘삼성 가우스’ 활용 방안을 소개하고 AI 기반의 연결성을 강조한 ‘스마트싱스’와 ‘빅스비’를 강조했다. 동시에 5억대의 삼성전자 디바이스 중 AI를 개인화에 맞추기 위한 보안 서비스 ‘삼성 녹스’도 강조했다.
AI는 반도체에서도 화두였다. 고성능 컴퓨팅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올해부터 반도체 업황이 전반적으로 반등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각자의 경쟁력을 앞세워 AI 시대 강자로 부상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AI의 원동력 메모리 반도체’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어 “앞으로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며 메모리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각 고객에게 특화된 AI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고객맞춤형 메모리 플랫폼’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AI향 메모리 HBM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조직 개편에서는 ‘AI 인프라’ 조직을 신설했다. 이에 HBM 후발주자로 뛰어든 삼성전자 역시 올해 CES를 통해 “글로벌 기업 중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동시에 하는 유일한 업체가 삼성”이라며 자사의 강점을 피력했다.
AI 기반 미래 모빌리티... 차체 대신 '소프트웨어' 힘
올해 모빌리티관의 화두는 먹거리를 찾기 위한 변화는 물론 AI를 기반으로 미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소프트웨어’가 주를 이뤘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 자리잡은 전동화 바람은 올해 CES에서는 더 많은 업체들이 선보이며 대세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했다.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역대 최대 성과를 낸 현대차그룹은 단연코 올해 CES 모빌리티관의 주인공이었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슈퍼널, 모셔널, 제로원, 포티투닷 등 그룹 내 7개사가 총출동해 역대 최대 규모 부스를 꾸렸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주요 컨퍼런스를 몸소 이끌었다.
특히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의 전시는, 지난 CES 2020 당시 정 회장이 미래먹거리로 꼽았던 사업들의 구체화된 모습이었다.당시 정 회장은 하늘을 나는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생활공간과 이동수단을 결합한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주는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의 개념 제시하면서 ‘혁신’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올해 드디어 실체를 갖춘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UAM은 도심 항공 모빌리티에서 영역을 넓혀 AAM(미래 항공 모빌리티)로 진화했고, 현대차그룹의 미국 AAM 독립법인 슈퍼널이 최초로 CES에 참가해 실물 크기의 기체를 선보였다. 신재원 슈퍼널 사장은 미국, 중국 등 경쟁 업체 대비 슈퍼널의 AAM 기체가 ‘안전’에 있어선 가장 큰 차별점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PBV의 경우 기아의 미래 구심점, 미래 먹거리로서 올해 기아 전시관의 대표 주제로 구체화됐다. 기아는 내년 출시할 중형 PBV인 ‘PV5’를 첫 공개하고, 이어 대형 및 소형 PBV 라인업을 추가해 대형 물류 회사나 모빌리티 기업, 개인 사용자로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미래 방향성을 제시했다.이후엔 개인의 기호와 목적에 따라 맞춤 제작하는 ‘비스포크 모빌리티 솔루션’ 형태로 발전시키겠다는 방침이다.
4년 전 내세운 방향성을 각 계열사를 통해 구체화시키면서도, 미래 먹거리를 넘어선 그룹 전체의 방향성은 현대자동차 부스 전시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현대차 부스는 약 600평 규모로 역대 최대 크기 공간이 마련됐고, 모빌리티관에선 유일한 주제였던 ‘수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현대차그룹만이 할 수 있는 미래 가치를 제시했다.
현대차는 이번 CES 2024에서 현대로템,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등 현대차 그룹내 각 계열사의 역량을 결합해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 및 활용의 모든 단계에서 최적화된 맞춤형 패키지를 제공하는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 ‘HTWO Grid 솔루션’을 공개했다. 그간 현대차그룹 내 사업 중 하나였던 수소연료전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활용까지 수소 산업의 전 생태 주기를 나서서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모빌리티관에서 마주하기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만큼, 정의선 회장과 장재훈 사장이 수소 경쟁력에 확신을 내걸었다는 관측이다. 개막 전일 현대차 컨퍼런스 현장을 찾은 정 회장은 “수소는 저희 대(세대)가 아니라 저희 후대를 위해 준비해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장 사장 역시 “자동차 회사가 언제까지 차만 만드나. 그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미래를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소프트웨어 핵심 계열사인 ‘포티투닷’과 함께 그룹 소프트웨어 전략 ‘SDx’를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테슬라 등 선두업체와 격차가 벌어져있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일종의 도전이자 결심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다. SDx는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인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SDV) 개발 체계에서 더 나아가 SDV를 통해 이동 데이터를 쌓고, AI와 접목해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개념이다.
독일, 일본 등 전통 자동차 업체들의 미래 전략도 드러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럭셔리를 도맡아온 벤츠와 BMW는 현대차처럼 소프트웨어 전략을 알리기보다는 AI를 기반으로 한 미래 인포테인먼트와 기술을 선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MBUX 가상 어시스턴트’를 전시해 주목을 끌었다. MBUX 가상 어시스턴트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향상된 3D 그래픽을 활용한 기술로, 운전자가 원하는 것을 차가 먼저 알고 실행하는 비서를 차량에 탑재하겠다는 벤츠의 미래 방향성이 잘 드러난 기술이다. 이외에 콘셉트 CLA 클래스, 음악·오디오·게임 파트너십 등을 소개하며 미래에도 럭셔리 브랜드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BMW는 미래 자동차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진보한 기술을 또 한번 내걸었다. 현재는 모든 업체가 적용하게 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을 처음 선보인 업체인 BMW는 올해는 증강현실(AR) 글래스를 제시했다. 아울러 BMW 오퍼레이팅 시스템 9, 생성형 AI, 원격 주차 등 미래 BMW 차량 내 디지털 경험을 주제로 한 혁신적인 개발 프로젝트도 선보였다.
일본 업체 혼다는 새로운 전기차 시리즈 ‘혼다 0 시리즈’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면서 전동화에 고삐를 죘다.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이 전동화 전환에 다소 늦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혼다에는 새로운 전기차 모델이 앞으로의 미래 경쟁력을 높여줄 와일드카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또 ‘살룬’과 ‘스페이스-허브’ 두 가지 콘셉트 모델을 전시한다. 차세대 전기차 모델 전용으로 사용될 새로운 ‘H 마크’도 처음 소개했다.
중후장대 역시 최첨단 AI 기술 장착하고 CES 등판
올해 CES에는 무겁고 딱딱하고 첨단기술과 다소 거리가 멀어보였던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들 역시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로 재무장했다. 4년 만에 참석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AI는 IT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다”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일 만큼 산업 전반적으로 AI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대두된 모습이었다.
먼저 SK는 ‘테마파크’ 콘셉트의 전시관에서 세계 최고 탄소감축 및 AI 기술을 공개했다. 가장 흥미를 끌고 있던 것은 AI 기술을 적용해 타로카드 점을 봐주는 ‘AI 포춘텔러’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상용화할 예정인 최신 AI용 D램인 HBM(고대역폭메모리) HBM3E를 통해 작동됐는데, 이는 최 회장을 비롯해 6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을 정도로 제대로 흥행했다.
전시관과 함께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은 공동으로 ‘SK ICT 패밀리 데모룸’도 운영했다. 데모룸에는 ▲차세대 AI DC(데이터센터) 모델 ▲AI 미디어 스튜디오 ▲반려동물 AI 진단보조 서비스 ‘X Caliber(엑스칼리버)’ 등 SK텔레콤의 핵심 AI 기술을 비롯해 사피온의 최신 AI 반도체 X330,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 등 총 10개의 AI 서비스와 기술이 소개됐다.
최태원 회장은 SK 전시관을 찾아 “AI는 이제 시작하는 시대로, 어느 정도 임팩트와 속도로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며 “챗GPT가 나온 지 한 1년 됐는데, 그전까지도 AI가 세상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안했지만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돌파구)가 일어나다 보니 너도나도 웨이브를 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사로 나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기조연설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안전성 확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무인 자율화 ▲에너지 밸류체인 구축과 탈탄소화 등 3대 혁신 목표를 발표와 함께 비전 달성을 이끌 혁신 기술인 ‘X-Wise’와 ‘X-Wise Xite’를 첫 공개했다.
‘X-Wise’는 장비 운영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무인 자율 작업에 이르게 하는 AI 플랫폼이다. 앞으로 HD현대의 모든 산업 솔루션에 기반 기술로 적용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 기술이 적용된 건설 장비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최적의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능형 현장 관리 솔루션이 바로 ‘X-Wise Xite’다.
전시관 입구에는 4.5m에 달하는 거대한 무인 굴착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캐빈 자체가 없는 무인화 제품으로 주변 장애물을 스스로 인지해 작업한다. 4개의 독립형 바퀴로 높은 언덕도 거뜬히 오를 수 있다. 사고 위험이 높은 현장에서 작업자를 분리해 안전 확보가 가능한 미래형 장비다.
HD현대는 도입기에 있는 무인 자율화 기술 등 미래 기술영역에서 기회를 찾고,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AI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두산 전시관에서도 AI 기술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AI 적용한 무인·전기 굴절식 트랙터 ‘AT450X’를 최초 공개한 것이다. 이는 애그토노미(Agtonomy)와 공동개발한 제품으로 좁고 비탈진 와이너리를 무인으로 주행할 수 있다.
AI를 통해 진화된 로봇 솔루션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AI가 사람의 표정을 인식해 그게 맞는 칵테일을 로봇이 제작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의 큰 인기를 끌어 시간을 꽤 오래 기다려야지만 체험이 가능할 정도였다. 또 물체를 집으며 종이컵, 플라스틱 용기, 캔 등의 특성을 학습하고 분류하는 모습을 선보이는 로봇솔루션 사례 ‘오스카 더 소터(Oscar the Sorter’도 전시됐다.
두산 전시관을 둘러본 박정원 회장은 “두산도 이번에 선보인 것처럼 이미 협동로봇, 건설기계 분야에서 AI를 적용한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고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다른 모든 사업 분야에서도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전 산업과 제품에 걸친 AI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첫 대형 전시회인데 앞으로의 경영에 참고할 만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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