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지선다’로 고르던 자동차 라인업, 지금은 2개만 남아
현대차‧기아와 당당히 경쟁하던 완성차 중견 3사 부진 유감
르노코리아 오로라1, KG 모빌리티 O100 성공 통한 재도약 기대
우리나라는 완성차 기업 5곳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는 기업이 여럿 있다는 것은 산업 경쟁력 측면 뿐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지요. 아무래도 외국에서 생산된 차를 들여와 팔면 가격도 비싸지고 옵션 등을 디테일하게 선택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사후서비스(AS) 측면에서 불편함이 많으니 말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국산차를 차급별로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놓고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준중형 세단을 사려면 현대자동차 아반떼, 기아 K3, GM대우(현 한국GM) 크루즈, 르노삼성자동차(현 르노코리아자동차) SM3 등 해당 차급의 다양한 모델들의 가격과 성능, 디자인, 실내공간 등을 비교해가며 선택할 수 있었죠.
다른 차급에서도 완성차 5사 모두 촘촘한 라인업을 갖춰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모델체인지도 꾸준히 이뤄졌습니다. 한 기업에서 신형 모델이 나오면 해당 차급의 경쟁차들은 긴장해야 했죠.
자동차 산업을 담당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도 이때는 차급별 다양한 차종들을 살펴보고 직접 시승하며 경쟁 우위를 비교해 기사를 쓰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국내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중견 3사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2011년 연간 내수 판매량을 보면 한국GM이 14만대 이상이었고, 르노코리아도 10만대를 넘겼습니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혼란 속에 2009년에는 옥쇄파업 사태까지 겪은 쌍용자동차(현 KG 모빌리티)만 다소 부진했었죠.
당시 한국GM의 국내 시장 점유율(완성차 5사간)은 10%를 넘나들었습니다. 르노코리아와 KG 모빌리티 등 완성차 3사의 점유율을 모두 더하면 20%에 가까웠죠. 이때도 현대차‧기아의 과점 체제긴 했지만, 어쨌든 이때는 경쟁다운 경쟁이 이뤄졌던 겁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지난해 르노코리아는 국내 시장에서 2만2048대를 파는 데 그쳤습니다. 한국GM은 전년에 비해서는 늘었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고작 3만8755대였죠. 그나마 KG 모빌리티가 6만3345대의 판매량으로 중견 3사 중에서는 선전했습니다. 이 기간 현대차는 76만2077대, 기아는 56만3660대를 국내 시장에서 팔았습니다. 아예 상대가 안 되죠.
점유율로 비교하면 더 처참합니다. 현대차(52.6%)와 기아(38.9%)가 91.5%를 싹쓸이하고 나머지 10%도 안 되는 시장을 중견 3사가 나눠먹는 구조입니다. KG 모빌리티가 4.4%, 한국GM이 2.7%, 르노코리아는 1.5%의 초라한 점유율에 머물고 있습니다.
세단과 SUV를 막론하고 모든 차급에서 풀 라인업을 갖춘 현대차‧기아와 달리 중견 3사는 라인업부터 부실합니다. KG 모빌리티가 그나마 SUV쪽으로는 6개 차종을 운영하며 다양성을 확보했지만, 한국GM은 국내 생산 판매 차종이 트레일 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 달랑 두 종입니다. 르노코리아도 QM6, SM6, XM3 등 3종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차명 뒤에 붙은 차급을 상징하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죠.
완성차 회사를 다섯 개나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 소비자들에게 ‘오지선다(五枝選多)’의 선택지가 제공되는 차급은 소형 SUV 뿐입니다.
특정 기업의 과점은 산업 측면에서건 소비자 권익 측면에서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가격과 상품성을 놓고 다수의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더 값싸고 좋은 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은 어떤 산업이건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르노코리아는 올해 하반기 중형 하이브리드 SUV ‘오로라1’을 출시한다고 합니다. 중국 지리자동차와 협업해 볼보의 CMA 플랫폼을 적용해 개발하는 신차입니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볼보의 기술이 접목됐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이게 큰 성공을 거두면 오로라2, 오로라3도 나오겠죠.
KG 모빌리티는 토레스 EVX의 파생 모델인 전기 픽업트럭 O100을 올해 하반기 출시할 예정입니다. 상반기 중에는 토레스 쿠페 버전도 내놓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적 드림카였던 2세대 코란도의 아이코닉한 감성을 재해석한 ‘KR10’이 더 기대됩니다.
이 차들이 잘 팔려야 그 다음 신차를 개발할 여력이 생깁니다. 르노코리아도, KG 모빌리티도, 한국GM도 한국 시장에서 장사를 잘 하고 돈을 많이 벌어 경쟁력 있는 신차들을 많이 내놓길, 그래서 국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현대차‧기아 매장 외에 다양한 매장을 돌아보며 고민하는 일이 생기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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