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사고부채 반년 새 1조 넘게 불어
과잉진료·보험사기 대응 필요하지만
늘어지는 시간에 소비자 불만 ‘숙제’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줘야 하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아직 지급하지 않고 있는 돈이 반년 만에 1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2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보사들이 고객의 보험금 요청을 이전보다 깐깐히 들여다보고 있어서다.
손해보험업계는 과잉 진료로 인한 부작용과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험사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꼼꼼한 심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그에 따른 시간이 늘어질수록 확산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불만은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7개 손보사들의 발생사고부채는 총 26조8352억원으로 1분기 말보다 5.0%(1조2784억원) 늘었다.
발생사고부채는 계약 상 약정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사유가 이미 발생했으나, 이를 아직 내주지 않아 보험사의 부채로 잡혀 있는 금액이다. 사고에 따라 가입자에게 내줄 예정인 보험금과 더불어, 지급 여부를 조사한 후 판단하기 위해 쌓아두고 있는 준비금이다.
손보사별로 보면 삼성화재의 발생사고부채가 5조782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0.2%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DB손해보험 역시 4조8281억원으로, 현대해상도 4조4323억원으로 각각 16.5%와 2.6%씩 해당 액수가 늘었다.
이밖에 ▲KB손해보험 3조8611억원 ▲메리츠화재 2조5685억원 ▲한화손해보험 1조7086억원 ▲NH농협손해보험 1조822억원 ▲흥국화재 8499억원 ▲롯데손해보험 6037억원 ▲MG손해보험 3230억원 등이 발생사고부채 규모 상위 10개 손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내줘야 할 보험금이 누적되고 있는 배경에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손보업계의 자세가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가입자의 요구대로 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맞는지 손보사들이 직접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손보사들이 지급 사유 조사를 하느라 약관에서 정한 기한을 넘겨 보험금 지급이 이뤄진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16만908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8%나 늘었다.
손보업계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보험금 지급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특히 국민보험으로 불리는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에서의 보험금 누수는 손보사들의 오랜 숙제다. 이른바 의료 쇼핑이나 과잉 진료를 통해 새 나가는 보험금이 전반적인 보험료 인상을 불러오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점점 대범해지는 보험사기도 손보업계가 함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보험금 지급에 현미경을 들이 밀수록 소비자들의 불만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의 손실을 미연에 예방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보험금 심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꼭 필요할 일”이라며 “다만 이로 인해 지나치게 다수의 지급이 미뤄지는 일이 없도록 절차를 효율화하는 작업은 보험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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