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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이 이른바 ‘CES(세계가전박람회) 연합군’을 꺾었다.
삼성전자·소니·LG전자·인텔·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참가한 이번 CES 2024는 2010년대부터 ‘세계최대 IT 행사’라 불리고 있다. 특해 매해 초에 개최되기 때문에, 그해의 ICT 사업의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 행사로 분류된다. 반면 연초 IT 업계의 시선은 이들이 참가한 CES 보다 또다른 ‘아이폰 모먼트’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애플의 ‘비전프로’에 쏠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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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8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비전프로’를 다음달 2일 미국에서 판매한다고 깜짝 공개했다. 미국내 판매가격은 256GB 기준 3499달러다.
애플은 비전프로의 성격을 ‘공간 컴퓨터(Spatial Computer)’로 정의하고 있으며, M2·R1 칩 등을 탑재해 눈 움직임 보다 빠른 연산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두 개의 4K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탑재, 2300만개의 픽셀 처리가 가능하며 메타의 VR기기 ‘메타퀘스트 프로’ 등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의 시각정보 처리가 가능하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공간형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비전 프로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소비자 전자기기 중 가장 진보된 제품으로, 혁신적이고 마법 같은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우리가 연결하고 창조하고 검색하는 방식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비전프로 출시 소식에 애플 주가는 강세다. 애플 주가는 이날 2.42% 올랐으며 시가 총액은 2조8860억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2조7848억 달러)와의 몸값 격차를 1000억 달러 이상으로 벌렸다.
CES에 참여한 기업 및 주최측은 연초 ICT 업계의 시선을 애플에 빼앗겨 초조해 하는 모습이다. 다만 CES에 대한 주목도는 미국 등 해외 대비 국내에서 조금 더 높다. 실제 구글에서 ‘Vision Pro’라는 키워드로 뉴스 검색을하면 로이터를 비롯한 해외 매체 기사로 도배돼 있는 반면, ‘CES 2024’는 국내 영자신문이나 삼성뉴스룸 등 한국발 기사가 대부분이다. 세계 최고 경제신문이라 불리는 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테크’ 섹션에도 ‘비전프로’ 관련 기사가 최상단에서 네번째에 노출돼 있고 CES 관련 기사는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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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주목도의 차이는 CES가 애초 ‘가전’에 집중한 행사라는 점과, 관련 시장의 주도권이 아시아 업체 쪽으로 넘어간 것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는 삼성·LG 등 글로벌 1등 가전기업을 보유한데다, 이들 기업을 뒤쫓는 업체는 일본의 소니나 중국의 하이얼·BOE 등 아시아 기업이 대부분이다. 실제 CES 메인 행사장은 수년전부터 한·중·일 3국의 제품 경연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LG전자는 2019년 상반기 영업이익 기준으로 생활가전 분야에서 미국 월풀을 앞질렀으며,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TV 시장에서 매출 기준 29.9%를 차지해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 모빌리티 업체들이 CES에 잇따라 참석하고 있지만, 이들 또한 ICT 업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기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ICT 업계의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몇년새 CES의 C를 ‘CAR(자동차)’나 ‘CHINA(중국)’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아시아와 자동차 업체가 CES 부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구글, 메타, 아마존과 같은 기존 빅테크의 참여가 저조한 것 또한 해외에서 CES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이유다. 이들은 부스를 작게 꾸리거나 메인부스를 꾸린 업체와 협업한 기술을 일부 공개하는 방식으로 참가, CES에 사실상 이름만 올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최근 몇년새 CES 기조연설자를 살펴보면 CES가 ICT 보다는 이를 활용한 기술이나 일상 트렌드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 또한 엿볼 수 있다. 실제 올해 CES 기조연설은 화장품 업체 로레알과 글로벌 유통공룡 월마트 CEO가 담당한다. CES 2017에서는 세계 최대 여행업체 카니발 코퍼레이션과 스포츠의류업체 언더아머 CEO가, 2020년에는 델타항공 CEO가 각각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등 오히려 ICT 업체 관계자가 기조연설자로 참석하는 사례가 드물 정도다. 2020년 CES에서는 임파서블 버거가 만든 ‘대체육’이 웬만한 ICT 신기술 만큼 주목받기도 하는 등, CES 측은 점점 ICT를 넘어 업계 트렌드 전반을 다루며 CES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려는 모습이다. 나름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실제 세계 최대 게임쇼 ‘E3’가 지난해 행사 중단을 공식화 하는 등, 주요 박람회에 개별 기업 참여율이 갈수록 낮아지며 행사 자체가 중단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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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 관계자는 “요즘 빅테크들은 CES와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신제품 또는 신기술을 공개할 경우 CES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 기술협회(CTA)’에 좋은 일만 시키고 제품 주목도는 빼앗길 수 있다 우려한다”며 “구글 I/O나 애플 WWDC와 같은 빅테크의 개별 행사에 대한 주목도가 CES 이상으로 높아진 만큼 가전이나 모빌리티 업체를 제외하고는 굳이 CES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이어 “CES는 오히려 스타트업이나 ICT 기술 접목을 통해 신규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인 여행·유통·식음료 등의 업체의 기술시연 및 협업의 장으로 탈바꿈 하는 모습”이라며 “다만 가전제품에서도 반도체 성능이 핵심경쟁력으로 부상한만큼 인텔·AMD·엔비디아와 같은 반도체 업체의 CES 참가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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