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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강화, 법적 책임 완화, 국립대 병원 투자, 지원 강화 등을 골자로 한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발표안은)
국민들이 기대하던 의대정원 확대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과 수치는 빠진 채 지금까지 보건복지부가 공식적으로 이야기해왔던 ‘의사수 확대’의 원칙만 되풀이하는 수준”이라며 정부의 대책을 ‘속 빈 강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의료현안협의체’를 만들고 의대정원 증원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의료계의 극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한 것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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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의료현안협의체는 공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각 의과대학의 정원 증원 수요조사를 발표하자 의협은 비과학적인 수요조사라며 의료현안협의체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는 파행됐고 이후 의협은 지난달 파업을 위한 전국 의료인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영하의 날씨였던 지난달 17일 광화문에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총 23차례나 진행된 의료현안협의체는 결국 아무런 과실을 얻지도 못한채 종료됐습니다.
양측의 논리를 판이하게 엇갈립니다. 의료계는 “지방, 필수의료 붕괴는 의사 숫자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수도권 빅5병원으로 올라오는 빨대효과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 부족과 법적부담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와 비교했을 때 의사 숫자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고령화로 인해 의사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의사숫자를 늘리고 지방,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와 법적부담 완화 등을 파격적으로 시행하겠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양측의 말은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목도하는 사회 현상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실제 통계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따져봅시다. KTX의 개통으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면서 소위 ‘수도권 빅(BIG) 5병원(서울대, 서울아산, 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의 빨대효과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난해 10월 22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서울대병원 환자 95만명 가운데 48.9%에 해당하는 46만5000명이 서울 밖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빅5병원을 찾은 비수도권 환자는 71만3284명으로 2013년보다 42.5%나 증가했습니다. 이들 환자들이 낸 치료비만 2조1800 억원에 달합니다. 의료계가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지방에 환자가 없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들 병원들이 매출 확대를 위해 수도권에 분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의협을 비롯한 지방 병원에서는 분원 설립이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라는 카드를 18년 만에 꺼내 들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의대증원 확대가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의료계 총파업과 의사국가시험 거부 등 의료 대란이 발생했던 2020년에는 정부가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라는 카드를 내놨었지만 현재는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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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의료계 간 의대정원 증원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대생이 졸업 후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내용의 ‘지역의사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날 공공의대 설립의 근거가 되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도 통과됐습니다.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아직 2025년 이후 의대입학 정원 규모가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의사 선발 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지난해 12월 22일 “2020년 극렬한 반대 끝에 무산된 법안이 무덤에서 되돌아온 것”이라며 “위헌적 내용과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기의 법안에 대한 강한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고 강력 반발했습니다. 개원의협의회는 야당에 대해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를 정치적 셈법으로 난도질하고 유리한 대로 활용하려는 다수당의 횡포”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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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흉기 피습을 당한 직후 이송된 부산대병원에서 헬기를 동원해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습니다. 전원을 희망한 주체를 두고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간 진실공방으로 비화되는 모습입니다. 각종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진짜로 응급한 상황이었다면 국내 최고의 권역외상센터인 부산대병원에서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간게 납득이 안 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페이스북에 “국립서울대병원에서 진료 거부하면 이재명은 되고 왜 나는 안되냐..당장 헬기를 불러 달라라고 하시면 된다. 앞으로 KTX 타지 마세요. 헬기에 양보하세요.”라고 적었습니다.
전국 의료인들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지역의료계를 무시한 특혜 이송”이라며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전시의사회는 “지역의료 이미지를 저하시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강조했고, 경상남도의사회는 “편법과 특권으로 얼룩진 서울행”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부산의사회는 4일 ‘지역의료계를 무시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짓밟아 버린 민주당의 표리부동한 작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환자의 상태가 아주 위중했다면 당연히 지역 상급 종합병원인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수술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편으로 연고지 종합병원으로 전원했어야 마땅하다”며 “이것이 국가 외상 응급의료 체계이며, 전 국민이 준수해야 할 의료전달체계이다. 그러나 전국 최고 수준의 응급외상센터에서 모든 수술 준비가 다 되었음에도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병간호를 핑계로 몇 시간을 허비해 가며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산의사회는 이어 “심각한 응급상황이 아니었음에도 119 헬기를 전용했다는 것은 그 시간대에 헬기 이송이 꼭 필요한 환자들의 사용 기회를 강탈한 것”이라며 “과연 대한민국 그 누가, 자신이 원한다고 하여 지역에서 119 헬기를 타고 자신들이 원하는 상급 종합병원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숨겨두었던 선민의식이 베어져 나온 국민 기만행위이며,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산의사회는 끝으로 “사람은 다급할 때 속마음이 드러난다고 했었다. 대한민국 최대 야당이 겉으로는 국민을 위해 지역의료, 필수 의료를 외치면서도, 막상 자신들이 다급하니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며 “지역주민들과 의료인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모든 정책은 이해 관계자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정부가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서 형식적으로라도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는 제스처를 취한 것도 의대정원 증원을 의료계가 강력하게 반발할 경우 일선 의료현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설사 국민의 70% 이상이 의대정원 증원을 희망한다고 해도 거친 정책은 역풍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이번 닥터헬기와 서울대병원 전원 소동을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보수적인 의사들이 정치적 공세에 나서는 것이라고 치부할 경우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의대정원 증원과 지역·필수의료 강화 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 관계자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하나 더 생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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