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가조작·불건전 영업·ELS 대규모 손실 ‘다사다난’
관리 부실은 곧 위기…금융당국도 금융사 책임 강화에 방점
랩·신탁 돌려막기 제재 착수…라임·옵티머스 악몽 재현?
금융투자업계가 갑진년 청룡의 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대하지 않았던 호황을 누렸던 대가를 지난 2년간 치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제는 재도약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증시와 태영건설발 부동산PF 리스크 재점화 우려는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을 태세다. 20년과 21년의 호황의 영광을 다시 누릴지, 22년과 23년의 고통의 시간을 다시 보낼지, 기로에 서 있는 금융투자업계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난 2년간 예상치 못했던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이에 따른 내부 통제와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2021년 전무후무한 코로나19 호황을 누린 뒤 2022년 유례없는 급격한 금리 인상을 겪는 가운데서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가 터졌다.
이어 지난해에는 차액결제거래(CFD) 사태와 영풍제지 사태 등 주가조작 의혹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고 사모 전환사채(CB) 및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 관행과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SL) 대규모 손실 가능성 등 다양한 리스크가 불거지기도 했다. 또 연말에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신청으로 부동산PF 부실 우려가 다시 재점화됐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새해 벽두부터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연초부터 내부통제 강화 및 철저한 관리를 천명하고 나섰다. 주요 증권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신년사를 통해 시장 리스크 최소화, 고객보호, 사회적 책임 등을 주요 키워드로 강조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연말 인사·조직 개편 통해 리스크 관리 강화 나선 증권사들
이러한 움직임은 말에 그치지 않고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증권사들은 연말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에서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메리츠증권은 과거 메리츠화재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를 지낸 장원재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발탁했고 미래에셋증권은 리스크관리 부문을 경영혁신실에서 독립시켜 이두복 부사장을 CRO 자리에 앉혔다. 신한투자증권도 기존 박진석 경영지원본부장이 올해부터 CRO를 담당하게 했고 대신증권에선 길기모 리스크관리부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리스크 관련 조직도 한층 강화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리스크관리본부를 그룹으로 승격하고 전사 차원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고객리스크관리부도 신설하고 준법감시본부 내에 있던 내부통제운영부를 준법경영부로 확대 개편했다. NH투자증권도 기존 준법감시본부를 준법지원본부로 변경하고 본부 직속으로 준법기획팀을 신설했다. KB증권 역시 시장리스크부 내에 고객자산리스크 전담 조직을 만들어 흐름에 발맞췄다.
하나증권은 내부통제 기능 강화를 위해 소비자보호 관련 조직을 재정비하고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키움증권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활동한 엄주성 사장을 새 대표로 내정한 가운데 향후 조직개편을 통해 각 사업 본부에서 리스크를 확인하도록 팀을 꾸리고 ‘사업본부·리스크팀·감사팀’의 3중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금융당국이 리스크 관리 부실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책임을 강하게 묻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금융사가 내부통제 미흡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최종 책임자로 CEO를 명시하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에게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부통제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자본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터라 리스크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관리 다짐하고 있지만...여전히 가시지 않는 우려
증권사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리스크 관리가 철저히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각종 리스크가 시장 내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고 지난해부터 지속돼 온 리스크들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증권사의 채권형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 ‘돌려막기’ 관련 제재 절차가 연초부터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9개 증권사의 랩·신탁 업무실태를 집중 검사한 결과, 증권사 운용역들이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객 계좌 간 손익을 이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손실 전가 금액은 증권사별로 수백억∼수천억 원 규모로 합산하면 조단위 규모로 채권형 랩·신탁 돌려막기로 운용역 30여명이 수사당국에 넘겨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암묵적인 관행이었다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이 불법 자전거래에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CEO 제재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랩 운용 의사결정에 대표이사가 적극 관여했거나 지시했다면 ‘행위자’또는 ‘감독자’로서 충분히 자본시장법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라임·옵티머스 불완전 판매 사태로 촉발됐던 증권사의 CEO 제재 리스크가 언제라도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이슈는 3년 넘게 끌어 오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박정림 KB증권 대표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을,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문책경고’ 중징계를 결정한 바 있다.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에게는 ‘주의적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주의적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문책경고부터는 금융사 임원 취업이 제한돼 중징계로 분류되는데 새해부터 증권사 CEO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부동산PF 부실화 우려가 재점화된 것처럼 불완전 판매와 불건전 영업 이슈들도 어떤 계기로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다시 불거질 수 있다”며 “올해도 각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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