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간 국내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소비지표도 줄줄이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출이 주춤한 사이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던 내수마저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올해에도 민간소비 개선세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현재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111.59(2020년=100)로 전년 대비 3.6% 상승했다. 이는 1년 전인 202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5.1%보다 낮아졌지만 2021년(2.5%)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며 2년 연속 3% 이상 고물가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고물가 기조 속 가계 실질소득도 사실상 뒷걸음질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이 3.7%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근로자가 체감하는 실질임금은 1.0%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전체 소득에서 이자나 세금 등을 제외하고 실제로 소비나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을 뜻하는 가처분소득 증가세도 주춤한 모습이다. 지난해 1~3분기 전체 가구 가처분 소득은 평균 393만878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에 그쳤다. 1년 전인 2022년 증가율이 8.5%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상승세가 예년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얇아진 지갑에 가계 소비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소비판매액 지수(불변지수)는 106.6(2020년=100)으로 전년 누계 대비 1.4% 줄었다. 1~11월 소매판매액지수가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20년 만이다. 음식점을 포함한 소매판매액지수 역시 107.2로 전년 동월 대비 1.0% 하락했다. 국내 민간소비 둔화 흐름은 주요국과 비교해도 유독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작년 3분기 한국 민간소비 증가율은 0.2%에 그쳐 OECD 38개 회원국 평균 증가율(1.5%)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민간소비 둔화 속 건설과 투자도 암울한 모습이다. 지난해 초부터 11월까지 국내 건설 수주액은 1년 전보다 26.4% 줄었다. 건설 수주액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설비투자도 전년 대비 5.4% 감소했다. 이 역시 2019년(-7.2%) 이후 4년 만에 처음 감소한 것이다.
대내외 경제상황과 시장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가운데 올해 소비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4년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민간소비 증가 규모가 지난해(1.9%)보다 둔화된 1.8%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민간소비는 소비심리 위축 속 고금리 영향을 크게 받는 상품소비를 중심으로 증가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의 결과로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부진한 상황”이라며 “내수를 부양하면 물가가 다시 불안해질 수 있으니 내수 부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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