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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이 맺은 하도급 계약의 96%가 지급보증에 가입돼 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는데 대구·경북 지역만 해도 여러 곳이 지급보증을 못 받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태영건설이 계약 당시 현금으로 대금 지급을 해주기로 했는데 외상 매출 채권 담보대출(외담대)로 조건을 바꾸고 만기를 늘리고 있어 하도급 업체들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전문 건설사 대표 A 씨)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이후 정부가 하도급 업체 지원책 발표 등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건설 업계의 파장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업계는 실제로 태영건설이 공사 대금 지급보증을 한 비율이 정부 발표보다 낮다며 연쇄 파동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돈줄이 마른 태영건설이 하도급 대금 지급 조건을 앞서 현금에서 외담대로 바꾸고 이제는 만기를 기존 60일에서 90일로 늘리면서 외상 매출 채권을 받은 하도급 업체들이 좌불안석이다.
1일 대한전문건설협회는 회원사들이 태영건설과 맺은 하도급 대금 지급 계약에서 지급보증 발급 또는 직불 합의를 한 비중을 전수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건설공제조합에 따르면 태영건설과 하도급 계약을 맺은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원사는 약 452개사로 하도급 계약 건수와 규모는 각각 900여 건과 3조 원가량이다. 정부가 발표한 581개사 중 대부분의 업체가 전문건설공제조합을 통해 계약 이행 증권을 발급받았다. 협회 관계자는 “원도급사가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을 하면 하도급 업체는 전문건설공제조합을 통해 계약 이행 증권을 발급하는 의무가 동시에 있다”며 “우리 회원사는 거의 100% 계약 이행 증권을 교부하지만 원청사는 해주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태영건설의 하도급 계약 역시 지급보증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고 전수조사를 실시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원도급자와 하도급자는 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때 각각 보증 기관을 통해 대금 지급보증과 계약 이행 보증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전문 건설업 실태 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급보증서를 교부해야 하는 공사 중 원도급자가 실제 교부한 비율은 평균 60%에 불과했다. 원도급사가 대형사인 경우에는 63.9%로 평균보다 소폭 높지만 중견이나 소형사인 경우 각각 42.5%, 42.6%로 매우 낮은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직후 정부가 보도 자료를 내고 태영건설과 하도급 계약을 맺은 업체의 96%가 지급보증 또는 직불 합의가 돼 있어 공사 대금 지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하도급 업체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상황과는 온도 차가 크다. 한 전문 건설사 대표 A 씨는 “대형 건설사들일수록 지급보증을 해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태영건설은 자금 여력이 부족했는지 하도급 계약에서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은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도급 업체도 설마 태영건설이 망하겠나 싶어서 지급보증서를 받지 않은 채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협회는 태영건설이 공사 대금을 현금이 아닌 외담대로 지급하고 만기를 연장하고 있는 것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12월 29일 협력 및 납품 거래 업체에 지급하던 외담대 만기를 60일에서 90일로 연장한다고 통보하면서 협력사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어음과 비슷한 외담대는 구매 기업(대기업)과 판매 기업(하도급 업체) 간 대금 결제 수단으로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구매 기업이 발행한 외상 매출 채권을 담보로 판매 기업이 거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만기일에 구매 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는 수단이다. 협력사들은 보통 외상 매출 채권을 즉각 할인해 현금화가 가능하다.
문제는 은행이 옵션으로 내거는 상환청구권에 있다. 만기일에 원청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하도급 업체가 상환 의무를 지게 된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만기가 돌아온 외담대를 갚지 않으면 피해 업체들은 금융 전산망에 연체 기업으로 등록되고 기존 대출 조기 상환 요청과 함께 신규 대출이 막힌다. 전문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담대의 경우 원사업자가 지급할 능력이 없으면 부채 상환은 하도급자에게 있고 이에 대한 제도적 방안이 아직 없다”며 “자금 여력이 없는 하도급 업체들은 앉아서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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