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회의, 구체적 실천안 마련 기구로 변신 예정
정신아 대표 내정자, 직원 1천명 면담…계열사 인적 쇄신 등 주목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쇄신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브라이언톡'(직원 간담회)에서 “배의 용골(선수~선미 바닥을 받치는 중심 뼈대)을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계해 나가겠다”며 한 말이다.
작년 창사 이래 최악의 해를 보낸 카카오가 새해 본격적인 쇄신안을 마련해 대내외 신뢰 회복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를 중심으로 내부 분위기 쇄신에 나서는 동시에 준법·윤리 경영 감시를 위한 외부 기구인 ‘준법과 신뢰위원회'(준신위)의 권고를 통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업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다만 각종 의혹으로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조사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 비상경영회의 개편…쇄신안 구체화 속도
1일 ICT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새해부터 공동체(그룹) 비상경영회의를 새로운 형태로 변경해 구체적인 실천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본사와 계열사 경영진 등 20여 명이 참여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회의체 대신 차분하게 실무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10월 30일 첫 비상경영회의 이후 지난달 18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전 8차례 회의를 개최해 카카오 택시 독과점 체계 개편, 준신위 구성, 차기 카카오 대표 내정, 직원과의 소통 강화 등 굵직한 개혁안을 마련한 만큼 앞으로는 이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운 기구는 김 창업자, 정 내정자와 직원 간 소통 일정 등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 내정자가 이달부터 1천 명의 직원을 직접 만나 카카오 전체 얘기를 듣겠다고 한 만큼 카카오는 소통 주제별, 규모별 그룹 구성과 일정, 김 창업자 참석 여부 등 세부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 인적 쇄신 지속될 듯…내부 비리 의혹 감사 결과 주목
카카오 공동체는 조만간 추가적인 인적 쇄신에도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정 내정자가 내년 3월 말 임기를 마치는 홍은택 대표를 대체할 예정이지만 비슷한 시기 임기가 끝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377300], 카카오게임즈[293490], 카카오브레인, 카카오VX 등의 최고경영자(CEO) 일부도 교체될 수 있다.
김 창업자가 지난달 11일 “새로운 배, 새로운 카카오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세워가고자 한다”고 밝힌 만큼 큰 폭의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카카오 노동조합은 지난달 초부터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촉발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경영실패 원인 조사와 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피켓 시위 등을 벌이고 있다.
인적 쇄신에는 지난달 18일 활동을 개시한 준신위나 내부 감사기구의 활동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카오는 김정호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 겸 준신위원이 제기한 서울아레나, 데이터센터(IDC), 제주도 프로젝트 공사 업체 선정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 외부 법무법인을 통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작년 9월 법인카드로 1억원어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전 재무그룹장 A 부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데 이어 준신위에 조사를 요청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 준신위 권고안 등 신뢰 회복 기여할 듯…검찰·당국 조사 파장 변수
카카오와 주요 계열사의 준법 경영 감독·조사권을 보장받은 준신위는 지난달 18일 내부 비리에 대한 제보 메일을 공개한 데 이어 조만간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제보를 받아 비리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다.
준신위는 회계 처리와 주식 대량 거래, 내부 거래, 기업공개, 합병·분할·인수 등 조직 변경 등을 사전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준법 의무 위반 리스크가 발생하면 개선방안 마련을 요구한다. 또,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정립 등 준법 통제 틀도 마련한다.
준신위의 권고안 마련 등 카카오의 쇄신 노력은 추락한 대내외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검찰과 공정위, 금감원 등의 조사 결과가 신뢰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 김 창업자와 홍은택 카카오 대표 등 경영진을 검찰에 송치한 지 1주일 만인 작년 11월 22일 카카오 판교 본사를 강제수사 하는 등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같은달 13일 동일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를 구속기소 했다. 이들은 작년 2월 SM엔터 기업지배권 경쟁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352820]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2천400억원을 투입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12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린 혐의를 받는다.
공정위는 최근 가맹 택시 대상 ‘부당 콜 차단’을 자진 시정하는 대신, 사건 심판을 중단해달라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동의의결’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카카오모빌리티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의 위법성 여부 등에 대한 심의가 진행된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19일 자회사 가맹 택시에 콜을 몰아줘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카카오모빌리티를 검찰에 고발하도록 공정위에 요청하기로 했다. 중기부 요청을 받으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금감원은 개인·법인 택시가 운임 20%를 카카오모빌리티에 수수료로 내는 가맹 계약과 회사가 운임의 15∼17%를 택시에 돌려주는 제휴 계약으로 이뤄진 이중구조 계약 방식을 분식회계로 간주하고 감리 중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카카오가 140개에 달하는 계열사 중 일부를 과감하게 독립시키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쇄신위원장인 김 창업자가 위원회 체계 대신 직접 조직 정비를 진두지휘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장은 “올해 봄 SM엔터 사태가 터지면서 쇄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당국 발표 때마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이 묻힐 수 있다”며 “카카오가 봉건 영주나 호족 분할 관리 방식으로 성장하면서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 계열사 매각 결정 등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위 학장은 “카카오의 핵심 가치를 실현할 계열사를 남긴 채 계열사들의 독립(지배주주 포기) 등 과감한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카카오의 구심력이 급격하게 약해진 만큼 김 창업자가 주도권과 책임감을 갖고 의사결정을 해야 선택과 집중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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