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에 일진이 막아선다. “가진 거 다 내놔. 내놓지 않으면 주머니 뒤져서 1원당 1대”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11만 원을 내놨다. 그리고 부탁했다. “이거 다 주면 정말 큰일나요. 좀 봐주세요” 일진이 고민하더니 큰 인심 쓰듯이 말한다. “자, 내가 너네들 불쌍하게 여겨서 3만 원을 나눠줄께, 고맙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3만 원 나눠준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13일 몇몇 언론에서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에 3조 원을 나눠준다는 기사가 실렸다. ‘역대급 세수 펑크에 지자체가 자금난을 겪으니, 행안부가 지자체에 3조 원을 ‘나눠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3조 원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3조 원을 덜 뺏는다고 표현해야 한다.
올해 지방정부에 줘야 할 교부세는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확정됐는데 지방정부에 교부하기로 되어 있는 보통교부세 금액은 올해 67조 원으로 확정됐다. 지방정부에 올해 67조 원을 교부받는 것으로 통보를 받고 지방정부는 67조 원만큼 지출계획을 세웠다. 지방정부 재정편성의 원칙은 중앙정부와 다르다. 중앙정부는 지출 규모를 정치적으로 정한다. 지출 규모를 확대할지, 축소할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할 수 있다. 돈이 모자라면 세금을 더 걷거나 부채를 더 발행하면 된다. 그러나 지방정부 지출 규모는 정치적으로 정할 수 없다. 세입 규모에 자동으로 연동되는 균형재정이 원칙이다. 이에 중앙정부가 67조 원을 준다고 통지한대로 지방정부는 67조 원의 지출계획을 세우고 2023년 예산을 정상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관련 칼럼 : 미디어오늘) 지방교부세, 사실과 진실 차이 (2023년 11월04일)]
그런데 9월 말, 기획재정부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국세수입이 줄어서 원래 주기로 한 교부세를 다 주지 않고 약 11조 원을 덜 준다고 발표했다. 행안부는 교부세 감액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했다. 그런데 행안부가 정해진 교부세를 주지 않고 지자체에 임의로 덜 주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보니 행안부는 교부세 11조 원을 덜 준다는 통보 공문조차 지자체에 보내지 못했다. 공문조차 없이 교부세 11조 원을 임의로 삭감 사실을 구두 등으로 통보하는 지경이다.
기재부가 임의로 교부세 11조 원을 임의로 삭감하겠다는 근거는 교부세 금액이 내국세에 자동으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교부세 금액은 내국세의 약 20%로 자동으로 연동되어 정해진다. 즉, 내국세가 100조 원이 걷히면 지방정부에 20조 원의 교부세를 교부하게 된다. 올해 내국세에 결손이 발생하니 그 결손액 비율만큼 교부세를 덜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국세 결손 사실은 2023년 결산이 이루어지는 내년 6월 때나 확정된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른 원칙과 관행은 2024년도에 교부세 정산분이 확정되면 2025년도 결손분을 정산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 2023년 결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정한 교부세를 행정부가 2023년에 감액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특히, 기재부가 교부세 11조 원을 깎겠다고 발표한 시점은 9월 말이다. 중앙정부가 주기로 약속한 67조 원에 따라 67조 원의 세출 예산을 편성했다. 그리고 9월 말은 2023년 올해 편성한 예산사업을 상당부분 집행하거나 최소한 계약이 이루어진 시점이다. 이미 계약이 이루어지고 상당부분 공사까지 진행한 시점이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중앙정부가 11조 원을 주지 않는다고 하니 지방정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계획한 교부세를 주지 않으니 지방채 발행계획이 급증했다.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는 정부가 지방정부에 지방채 발행을 독려하는 꼴이 되었다.
상황이 지나치게 악화되자 행안부는 한걸음 물러났다. 11조 원을 깎는 것에서 3조 원을 덜 깎고 8조 원만 깎을 것으로 수정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3조 원을 나눠준다고 표현해야 할까? 3조 원을 덜 깎는다고 표현해아 맞는다. 특히, 국가살림을 이렇게 주먹구구로 운영하는 것에는 비판을 해야 한다. 67조 원의 교부세를 주기로 했다가 임의로 11조 원을 깎는다고 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11월 말 교부세가 모두 교부된 이후에 12월에 갑자기 추가로 3조 원을 준다고 한다. 수돗꼭지를 찬물과 뜨거운물을 갑자기 트는 꼴이다. 재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찬물, 뜨거운물 처방을 피하고자 우리는 국회의 예산안 심의를 통한 1년 단위 예산시스템을 만들었다. 국회 예산안 심의를 이토록 무력화하고 찬물, 뜨거운물을 오가는 갈팡지팡 재정행정을 ‘자금난을 겪는 지자체에 온정을 베푸는 행정’으로 포장된다.
그런데 3조 원을 나눠준다는 기사의 출처를 보자. 행안부는 관련 사실을 보도자료 등으로 알린적은 없다. 첫 기사는 연합뉴스가 13일 6시에 올린 기사다. 이어 몇몇 언론에 바로 올라온 기사다. 그러나 언론사는 다르고 각각 바이라인(기자명)도 있지만 제목이나 내용은 사실상 거의 동일하다. 결국 3조 원을 덜 뺏는 현실이 3조 원을 나눠주는 기사로 둔갑되어 많은 언론에 소개된 이유는 그냥 연합뉴스 베끼기로 해석할 수있다면 좀 덜 억울한 것일까? 더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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