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금융권을 관통하는 단어는 ‘긴축’이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확대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례없는 고금리 상황이 이어졌다.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지방 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부실우려가 커졌고 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졌다. 은행권은 역대 최대 이자이익을 기록하면서 이에 대한 진화작업으로 상생금융을 약속하기도 했다.
홍콩 증시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내년 초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투자자가 수조원에 달하는 손실 위험에 처했다. ELS는 보통 3년 만기인 상환 시점에 발행 시점 지수의 60~70%를 웃돌면 상환이 가능한데 H지수가 반토막이 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은행권의 H지수 추종 ELS 판매잔액은 지난 2분기 말 기준 15조8860억원이다. 이 중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규모는 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KB국민은행이 4조7730억원으로 가장 많고 △NH농협은행(1조4830억원) △신한은행(1조3770억원) △하나은행(7530억원) △우리은행(250억원) 등이다.
부동산 PF가 한국 금융시장의 새로운 ‘뇌관’이 됐다. 3분기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잔액은 134조원을 넘어섰고 연체율도 2.4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특히 태영건설이 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PF 부실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과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이 부실 사업장 정상화를 위해 나섰지만 고금리와 경기 불황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더욱 깊어지고 있어 내년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마을금고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기’가 12년 만에 재현됐다. 새마을금고도 예·적금은 1인당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하지만 새마을금고 브랜드에 대한 불안심리 확산과 신뢰도 상실이 이어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연체율 상승, 부동산 PF 우려 등으로 뱅크런 조짐이 보이자 관련부처와 공조해 위기 진화에 나섰다. 행안부의 관리 감독 전문성 확보와 관리 감독권을 금융위원회에 이관하고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 등이 숙제로 남았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연일 역대 최고 수준을 갈아치우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875조6000원이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100.26%로 세계 최고다. 한국은행은 경제 성장 부진 속에 가계부채 등 금융 불균형이 커지자 기준금리를 3.50%로 유지했다.
은행권의 불법·비리 사실이 드러나면서 은행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은행이 내부통제 제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금융당국에 이행 여부를 허위 보고한 사례도 있어 은행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BNK경남은행에서 3000억원대의 횡령이 터진데 이어 대구은행에서는 고객 의심 문서를 위조해 문제가 발생했다. KB국민은행은 증권대행부서 직원들이 고객사의 미공개 정보를 취득해 해당 기업 주식을 미리 사들이고 총 127억원 규모 매매 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금리 기조에 이자이익이 늘어난 금융권은 ‘상생금융’에 나서야 했다.
은행권은 21일 자체적으로 ‘2조원+α’ 규모의 민생지원책을 발표했다. 지원방안은 1조6000억원 규모의 이자 환급과 4000억원 규모의 자율 사회공헌활동으로 진행된다. 이 중 캐시백 지원으로 개인사업자 약 187만명(잠정)이 1인당 평균 85만원의 이자를 돌려받게 된다.
보험업권은 내년 자동차보험료를 2%대 중반 수준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내년 실손보험료는 평균 1.5% 올려 인상률을 최소화한다.
애플은 지난 3월 현대카드와 손을 잡고 한국에서 애플페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이폰 등 애플 기기 사용자들은 애플페이 서비스 출시 9년 만에 국내에서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도입 초기 신규 고객이 급증하며 현대카드가 독차지할 가능성이 대두되자 일부 카드사를 중심으로 애플페이 도입이 검토됐으나 실제 도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 보험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금리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운용수익이 크게 늘긴 했지만 IFRS17 도입에 따른 회계제도 변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즉 보험사의 자율적 계리에 따른 수익 증대라는 평가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당국은 지난 5월 △실손의료보험 △무·저해지 보험의 해약률 가정 △고금리 상품의 해약률 가정 산출기준 △보험손익 인식을 위한 CSM 상각 기준 등 주요 계리적 가정에 대한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보험사들이 실적을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과정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의 청구 전산화 제도개선을 권고한 지 14년 만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의료기관이 가입자 요청에 따라 관련 서류를 보험사에 전자적으로 전송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소비자가 직접 병원에서 진료 영수증과 세부내역서, 진단서 등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된다.
올해는 비트코인이 다시 부활하는 한 해였다. 올 초 비트코인은 개당 1만6000달러까지 떨어졌지만 이달 들어 4만 달러 수준으로 뛰면서 2.5배 오른 상태다. 투자자들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년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승인하고 내년 4월 비트코인 발행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찾아오면 비트코인 가격이 더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6월일 국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투자자들의 보호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1년부터 시행 중인 특정금융정보법개정안(특금법)이 자금세탁방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부당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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