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이르러서 한국 경제가 부진 터널에서 서서히 빠져나올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눈에 띄는 수준의 강한 경기 반등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최근 제조업 회복에 힘입어 경기 지표가 개선되는 모습이다.
다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에 1년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가계 부채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30일 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7~9월) 성장률은 0.6%였다. 2분기와 동일한 수치지만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수출이 3.4% 증가해 경기가 완만한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이런 추세라면 4분기에 전기 대비 0.7% 성장을 달성할 경우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 1.4%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언한 ‘상저하고’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냥 반가운 소식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1.4%는 잠재성장률 추정치인 2%를 훨씬 밑돌며 1954년 통계 작성 이후 5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0.7%),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외환위기였던 1998년(-5.1%), 오일쇼크가 왔던 1980년(-1.6%) 등이 전례다. 대부분 대형 경제 위기가 터졌던 해지만 올해의 경우 코로나19를 극복한 이후 특별한 위기가 없었음에도 1%대 저성장을 기록하는 셈이다.
경기 둔화 흐름에 고물가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 상승했던 지난해(연간 5.1%)보다 상승폭이 다소 둔화했지만 3.6%를 기록했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3.3%보다는 0.3%포인트를 상회하는 수치다.
특히 소비자물가 중 대표 먹거리 지표인 외식 물가 상승률은 이달 기준 전체 평균을 31개월 연속 웃돌았고 가공식품 물가도 25개월째 상승세다. 또 하반기 공급부족으로 농산물 물가마저 큰 폭으로 올라 밥상 물가 부담이 커졌다.
한국은행도 올 11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5%에서 3.6%로 높여 잡았다. 내년 전망치도 2.4%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서야 물가상승률 목표(2%)를 달성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높은 물가에 고금리로 인한 이자부담까지 커지면서 서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고금리에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가계 대출 증가 속도는 주춤했지만 여전히 증가세다.
문제는 내년 이런 상황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2년 연속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은 국내외 잇따라 나오고 있다.
LG경영연구소는 최근 내년 세계 경제 부진으로 한국 GDP 성장률이 1.8%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한국 경제가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사상 초유의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JP모건·씨티 등 8개 글로벌 IB가 전망한 내년 성장률 평균치는 1.9%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가 이미 현실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는 이미 현실화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며 “성장모멘텀 약화로 인한 잠재성장률 하락은 금융위기 이후로 지속되어 왔으며 코로나19를 거치며 하락세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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