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산업계 전반에 걸쳐 어려움이 찾아온 한 해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각 업계의 불황이 이어진 가운데, 안전 문제와 경영진에 대한 사법 리스크, 건설사 유동성 위기 등 다방면에서 위협이 대두된 것이다. 이에 각 기업들도 활로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쇄신’을 외치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는가 하면, 업계 전반의 안정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제도권 편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곳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수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신사업 투자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서는 모습도 관측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처하겠다는 모습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올해 화제가 된 10대 이슈를 선정해 국내 산업계의 현 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짚어봤다.
■ ‘첩첩산중’ 카카오, 돌파구 마련할까
카카오에게 있어 2023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의 시세조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에 소환됐으며, 배재현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됐다. 내부적으로는 부사장급 임원이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각각 콜 몰아주기와 공모전 당산작가 2차 저작물 작성권 제한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경영쇄신위원회와 준법과신뢰위원회 등을 발족하며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했지만, 9월 CA협의체에 합류한 김정호 경영지원총괄의 폭로로 내홍에 휩싸이기도 했다. 현재 카카오 측은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를 차기 단독대표로 내정한 상태로, 주요 계열사 경영진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대규모 인적 쇄신 가능성도 제기되는 형국이다.
■ 코인업계, 각종 리스크에 몸살
코인업계의 2023년도 그리 밝지는 못했다. 크립토 윈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각종 사건사고들이 겹치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는 점에서다. 김남국 의원의 위믹스 보유 논란이 입수 경위와 내부정보 취득 여부 등에 대한 의혹으로 번진 것이다. 여기에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회장이 ‘P2E 로비설’을 주장하고 위메이드와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산업계가 이에 반발하며 학계와 산업계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최근에는 한글과컴퓨터 김상철 회장의 아들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2021년 발행된 가상화폐 ‘아로와나’에 대한 불법 시세조종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 100억원 가량을 수령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일련의 사태로 인해 관련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도록 하고, 직무관련성에 따라 일부 부서 근무자들의 보유·거래까지 금지하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 중이며, 코인업계 안팎에서는 업권법 등 규제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반도체 경기 ‘혹한’…주요 제조사 감산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며 한 해 동안 주요 제조사들의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됐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IT 수요 부진이 지속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대 제조사들의 적자가 큰 폭으로 누적됐다. 이에 주요 제조사들은 공급을 축소함과 동시에 고부가 제품 비중을 늘리면서 겨울나기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생산량을 줄였고, 끝까지 버티던 삼성전자도 1분기 잠정실적 발표와 함께 감산을 공식화했다. 다만 챗GPT 열풍으로 생성형 AI(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부분은 긍정적인 요소였다. 하반기부터 감산 효과가 가시화되며 수요와 가격 모두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인 가운데, AI용 메모리인 HBM3 등 고성능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 DS부문 적자는 3조원대로 줄었고, SK하이닉스의 경우 D램 부문이 2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마이크론도 20일(현지 시간) 매출 47억3000만달러(약 6조2000억원), 영업손실 11억28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등 월가의 예상치를 웃도는 회계연도 2024년 1분기(9~11월) 실적을 발표했다.
■ ‘우주강국’ 꿈 싣고 날아오른 누리호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의 실용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인도, 일본, 중국에 이어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지구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번째 국가가 됐다. 당초 발사는 5월 24일 오후 6시 24분에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기술적 문제로 인해 한 차례 연기되며 하루 뒤인 25일 6시 24분에 진행됐다. 누리호는 정해진 시퀀스에 따라 모든 비행과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했으며, 원격수신정보 분석 결과 목표 궤도에 투입돼 위성들을 성공적으로 분리했다. 주 위성인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큐브위성 7기가 실려 있었으며, 다른 위성들은 정상 사출됐지만 큐브위성인 도요샛 3호는 사출이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2027년까지 누리호를 3차례 반복 발사함과 동시에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 고래 삼킨 닭…하림, HMM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올해 8월, 국내 유일 국적선사 HMM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 결과 동원 및 하림과 같은 식품업계 중견그룹사 2곳과 국내 LX 그룹, 독일 해운사 하파그로이드가 입찰 신청을 내면서 4파전 양상을 띠었다. 하림그룹은 채권단이 보유한 HMM 지분 3억9879만주(57.9%)를 인수하기 위해 약 6조4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가를 제시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경쟁사 동원그룹과의 인수가 경쟁에서 근소한 차이로 앞선 결과다. 우선협상대상자 하림이 아무런 탈 없이 HMM을 인수했을 경우, 기존 재계 순위도 32위에서 13위로 상승한다. 아울러 머스크, MSC 등 글로벌 1, 2위 해운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대형 국적선사가 탄생하게 된다. 다만 어두운 해운업황의 전망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운영 경험 부재, 영구채 주식전환 유예 갈등의 재점화 가능성 등이 하림이 직면한 해결과제로 남아있다. 최종 거래 마무리 시점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 ‘자국주의 전기차 정책’에 바쁜 자동차 업계
미래 자동차 전략의 핵심을 꼽으라면 단연 ‘전기차’가 높은 순위로 언급되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일렁이는 파도는 거칠기만 하다. 미국 재무부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최대 10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발효하고 배터리 부품은 2024년,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외국 우려기업에서의 조달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중국 정부 자본의 지분율이 25%가 넘는 합작법인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뒤이어 프랑스판 IRA로 불리는 ‘녹색산업법’이 시행되며 비(非)유럽산 전기차가 대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독일 경제수출감독청(BAFA)도 전기차 구매 시 지급하던 보조금을 1년가량 빨리 중단했다. 이에 국내 전기차 시장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전기차 등록 대수 성장률을 살펴보면, 2021년에는 전년 대비 약 71% 성장했고 2022년에는 약 68%가 성장했으나 올해는 36% 수준에 그쳤다. 비싼 가격과 보조금 감축, 충전 인프라 부족 등과 경기침체가 맞물려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 중대재해‧부실시공 잇따라…‘안전’ 실종된 건설현장
올해도 건설현장은 안전과 거리가 멀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분기까지 건설업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40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기간과 비교해 13명이 줄었으나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건설업 사망자 수는 97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명 더 늘어났다. 특히 공사금액 120억~800억원 건설현장에서는 지난해 동기 대비 82.6% 늘어난 4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DL이앤씨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8명의 사망자가 나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에 DL그룹 이해욱 회장이 지난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과하기도 했다. 부실시공에 따른 크고 작은 안전사고도 속출했다.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는 시공사인 GS건설과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넘어 건설업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25명의 사상자를 낸 ‘오송 참사’는 미호강 임시제방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지목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지난달 27일에는 경북 경주시 안계댐 교량공사 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일 부실시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며 건설 카르텔 혁파방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실시공을 차단할 대안으로 직접시공제와 적정임금제가 거론되고 있으며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추진되고 있다.
■ 건설사, 주택시장 침체‧부동산 PF 부실 등으로 유동성 위기 몸살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도권과 비수도권, 아파트와 비아파트간 간극이 커지는 모습이다. 부동산R114는 올해 시장을 ‘경착륙 중에 연착륙 했다’며 1.3부동산대책 등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일부지역이 거래량과 가격 회복세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8일 기준 올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3.95% 빠지며 2년 연속 하락했다. 월별로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을 보면 3월 이후 낙폭이 줄어들며 4분기에 접어들면서 반등하고 있다. 서울은 7월 상승반전한 이후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승세가 주춤하며 내년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또, 빌라 등을 중심으로 전세사기가 전국에서 드러나며 관련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건설업계는 유동성 위기로 1년 내내 뒤숭숭한 상황이다. 지방건설사들이 쓰러지고 일부 중견건설사들은 위기설이 돌며 신용등급이 하락하기도 했다. 금융권의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3분기 기준 134조3000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연체율도 2.42%로 지난해말 대비 2배 가량 올렸다. 내년 미국 금리인하가 예상되며 기대감을 일으키고 있으나 시장이 회복될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내년도 건설투자 규모가 올해보다 2.4%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중소건설사들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 전망했다.
■ 석유화학 불황인데 정유사는 신사업 투자 강화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내 공급과잉 악재로 기나간 불황의 시기를 맞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6분기 만에 흑자전환하며 3분기에 반짝 업황 개선의 신호가 있었으나 경기침체가 풀려야 본격적인 업황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주요 석유화학기업은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고부가‧친환경 신사업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에 반해 정유사들은 너도나도 석유화학사업 비중 확대에 투자하고 있다. 정유 4사는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인 14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횡재세’(초과이윤세) 논의가 불거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유업계의 수익구조를 보면 유가상승에 따른 정제마진 의존도가 높아 사업 재편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에쓰오일은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2580억원을 투자한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오는 2026년 완공되면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비중은 현재 12%에서 25%로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분리막 사업을 중심으로 한 ‘그린 앵커링’과 탄소 발생 사업을 그린 사업으로 전환하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해외 신규 공장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도 현재의 석유화학사업의 부진에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늘리는 모습이다.
■ 부산엑스포 유치 불발
정부와 재계가 합심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공을 들였지만 큰 격차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고배를 마셨다. 재계는 결과와는 별개로 그동안의 유치 노력이 향후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제 영향력 확대에 기여하길 바라는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지난달 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한 직후 논평에서 “기업들은 글로벌 인지도 강화,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확보 등 부수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 회장인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부산엑스포 유치 민간위원장을 맡아 전세계를 돌며 유치전을 벌였다. SK뿐 아니라 삼성, LG, 현대차, 한화 등 주요그룹 총수들도 막판까지 유치전을 벌이며 부산 엑스포 알리기에 나섰다. 최 회장은 지난 18일 대한상의 기자간담회에서 “열심히 뛰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으나 유치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접촉하고 개척한 것은 기업들이 지속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기업인이 자주 동행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너무 많아서 문제라 보지는 않는다. 단지 특정인이 계속 가는 방법론은 여러 가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에도 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시 중구 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며 유치 실패에 대한 부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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