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을 그리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지만 저를 살린 것도 만평이죠. 은퇴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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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23년간 만평 1254컷을 그린 ‘기업 회장님’이 있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 업체 지지옥션의 강명주(80)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강 회장이 한국 최초 경매 전문지인 ‘계약경제일보’에 매주 2~3회 연재한 경매 만평은 세월만큼 쌓여 어느새 두꺼운 두 권의 책이 됐고 이제 막 경매에 뛰어든 초보 경매인들의 안내서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경매 산업 양지화에 일조한 기업가에서 만평 전문 미술관장으로 인생 제2막을 준비하고 있는 강 회장을 26일 서울 용산구 사옥에서 만났다. 사무실 책상에 수북이 쌓인 종이와 붓 펜, 손가락에 문신처럼 배어든 잉크 자국이 마치 그가 걸어온 길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강 회장은 1983년 계약경제일보를 창간하며 경매 산업에 뛰어들었다. 1961년 부동산 경매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매우 낮았다. 예로 제주지방법원에서 이뤄지는 경매 물건에 대한 감정가 등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제주에 내려가 확인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시 경매시장은 브로커들만의 리그나 다름없었다. 브로커들이 수익률 높은 물건에 대한 정보를 먼저 입수하고 싹 쓸어가다시피 하자 빈손으로 허탈하게 법원을 나서는 일반 참여자들이 늘어갔다. 신문사 창업을 꿈꾸던 강 회장은 이 같은 경매 산업을 접하고 “뉴스보다는 정보가 돈이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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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길로 계약경제일보를 창간했다. 직원들을 각 법원에 보내 경매 기일을 앞둔 물건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정보지로 만들어 법원 앞에서 나눠줬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렸고 준비해온 물량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동났다. 점점 정보량이 많아지면서 1000원을 받았더니 그래도 사람들이 줄을 섰고 2000원으로 올려도 줄을 서서 사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려움도 있었다. 강 회장의 사업 아이디어에 밥줄이 끊기게 생긴 브로커들이 위협을 가해온 것. 그러자 강 회장은 법원에서 나온 경매 정보 리스트 중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브로커들이 찢어간 페이지의 물건을 ‘누락 정보’로 더 크게 정보지에 싣는 등 강 대 강 맞대응을 벌였다. 결국 두 손 두 발을 든 브로커들도 줄을 서서 강 회장의 정보지를 사보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당시 뉴스가 선불제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 속에서도 계약경제일보는 선불제 전환에 성공했다”며 “배짱과 변화가 국내 첫 경매 전문지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올라탄 지지옥션은 빠르게 사세를 키워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비슷한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어렵게 모은 경매 정보가 하루만 지나면 똑같은 내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었다. 저작권도 없어 마땅히 이를 제지할 방법도 없었다. 이때 강 회장이 떠올린 게 만평이었다. 강 회장은 “만평을 통해 다른 정보지와 차별화를 둘 수 있고 무엇보다 베껴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23년간 연재한 만평 ‘카툰 경매’는 어려운 경매 용어를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전세사기, 갭 투자 등 다양한 경제 상황을 재치 있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강 회장이 붓 펜으로 만평을 그리면 직원들이 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옮겨 색을 입힌 뒤 지지옥션에 싣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강 회장은 “열흘 동안 생각하고 10번도 넘게 수정한 컷도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카툰 경매는 당시 ‘경매로 산 집은 재수 없다’는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강 회장은 “예전에는 경매 정보지 사업을 한다고 하면 ‘경매’라는 말만 듣고 돌아서기 일쑤였다”며 “그러나 경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카툰 경매로 문턱을 낮추자 연재를 기다리는 구독자들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2000년 계약경제일보에서 이름을 바꾼 지지옥션은 누적 유료 회원 수 41만 명을 확보한 국내 1위 경·공매 데이터 전문 기업이 됐다. 지지옥션의 수익은 경매 수수료 등이 아닌 오로지 구독료에서만 나온다. 현재 수많은 경매 정보지 중 유일하게 일간 종이 신문도 발행하고 있지만 구독자가 줄어들며 신문 사업은 적자 상태다. 그러나 강 회장은 “구독자들에게는 종이 신문을 가진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사이에 신뢰도 차이가 있다”며 “적자라도 신문 발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이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와 만화의 인연은 1960년대로 거슬러간다. 당시 강원도였던 지금의 경북 울진 출신인 강 회장은 부자 농사꾼을 꿈꾸며 고려대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축산물 수입이 개방되며 축산학과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졌고 결국 과가 없어졌다. 방황하던 강 회장은 고려대 학보사에 들어갔고 당시 필명 ‘타이거’로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시사만화를 7년간 200회가량 연재하며 대형 언론사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스타 작가가 됐다. 강 회장은 “수많은 컷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화와 달리 한 컷으로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만평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당시 대학생들의 신임을 받던 ‘타이거’ 강 회장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71년 위수령이 발동되면서다. 당시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만평을 그렸다는 이유로 수도경비사령부와 중앙정보부로부터 고초를 겪었고 당시 여자친구 부모님이었던 지금의 장인·장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오면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붓 펜을 내려놓고 풍로 장사에 뛰어들었지만 석유 파동에 기름 값이 치솟아 사업이 망하는 쓴맛을 봤다. 이후 마흔 살에 경매 전문지로 재기에 도전했고 차별화를 위해 붓 펜을 다시 잡은 것이다. 강 회장은 “만평을 그리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살린 것도 만평”이라며 “여든이 됐지만 기억력과 창의력은 다르다. 은퇴 후에도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옥션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2010년 지지자산운용을 설립해 경·공매 펀드를 출시하는 등 신사업으로 영역을 넓혔고 최근에는 새 콘텐츠 먹거리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강 회장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동고동락했던 직원들이 퇴사해 같은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했을 때를 꼽았다. 그는 “경매 정보업은 시작하기는 쉽고 운영하기는 어렵다”며 “만일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데 이에 대한 정보가 누락되면 낙찰자는 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만큼 신뢰가 중요해 만평 등을 통해 회사를 알리는 데 힘썼다”고 강조했다. 지지옥션은 연간 2억 원을 투자해 지지옥션배 바둑 대회도 열고 있다. 후학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강 회장은 2016년 모교인 영락고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한 바 있다. 1965년 입학금이 없었던 강 회장에게 선생님이 건넨 1만 원의 은혜를 갚은 것이다. 강 회장은 “어려운 환경 탓에 남의 돈으로 공부를 했다”며 “돈을 벌어서 고향·대학 선후배들을 돕는 게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밝혔다.
현재 용산 사옥도 경매로 매입할 만큼 경매에 진심인 지지옥션이지만 강 회장은 개인적으로 경매에 참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독자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일찌감치 두 자녀에게 상속을 마친 강 회장은 만평 전문 미술관장으로서의 인생 제2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 가평에 부지를 매입해 캠핑장과 임직원 연수원 등을 갖춘 ‘지지밸리’를 조성했다. 이르면 내년 이곳에 카툰 경매를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을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강 회장은 “30년 기업이 나오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이를 넘어 100년 기업이 탄생하는 것은 손에 꼽히는 일”이라며 “은퇴하는 날까지 국내 경매 산업 저변 확대를 위해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He is △1943년 경북 울진 △고려대 축산학과 △1983년 계약경제일보 창간 △2010년 지지자산운용사 설립 △2023년 ‘경공매부동산 카툰경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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