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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식량안보’ 강화 나서는데…해외 의존 심각 한국 [곡물자급률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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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이어진 식량보호주의 확산…전쟁에 슈퍼엘니뇨까지 겹쳐
공급부족 우려에 국제 쌀 가격 15년 만에 최고…하락세 멈춘 세계식량가격지수
해외의존 심각한 한국…식량안보지수는 OECD 최하위권

도네츠크(우크라이나)/AP뉴시스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지난해 6월 21일 농부가 밀을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2008년과 2010년의 식량 위기·곡물 파동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2013년 10월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2012년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이 역대 최저치인 23.6%로 집계됐다고 지적,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며 내뱉은 발언이다.

10년 전의 목소리지만, 어제 나온 발언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은 10년 전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2020~2022년 평균 곡물자급률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20% 선까지 무너지며 식량안보 위기를 키우고 있다. 특히 올해 ‘슈퍼 엘니뇨’에 따른 곡물 가격 상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까지 겹치면서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이 급등해 물가가 오르는 현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닐라/AP뉴시스2019년 3월 13일 필리핀 마닐라 만달루용 거리에 엘니뇨 현상으로 물 부족 사태를 겪는 주민들이 물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 지난해부터 이어진 식량보호주의 확산…전쟁에 슈퍼엘니뇨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폭염, 한파, 홍수, 가뭄 등 이상기후 발생이 눈에 띄게 늘면서 국제사회는 ‘식량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먼저 올해 슈퍼 엘니뇨 발생으로 주요 곡물 생산국의 수확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기상학적으로 동태평양(남아메리카 페루 서쪽)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 이상 높은 상태로 5개월 넘게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의 시작으로 본다. 슈퍼 엘니뇨란 엘리뇨 발생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 대비 섭씨 2도 이상 높은 경우를 말한다. 올해를 제외하고 1982∼1983년, 1997∼1998년, 2014∼2016년 등 역대 총 3회 발생했다.

슈퍼 엘니뇨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토양 생태계 교란과 해충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늘어나면 농작물의 생장이 저하되고, 결국 주요 곡물 수출국의 생산량 및 수출 감소로 이어진다.

실제 2014∼2016년 발생한 슈퍼 엘니뇨의 영향으로 2015년 전 세계 밀 수출은 전년 대비 1.8%, 쌀은 4.0% 감소했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프랑스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은 이상 고온에 따른 가뭄이 지속돼 결실 부족 등으로 수확량 감소와 품질 저하가 발생,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전쟁 여파는 여전하다.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곡물 수출 전면 금지를 선언하거나 수출 통제 검토하고 있다. 말 그대로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러-우 전쟁이 발발하자 주요 생산국들이 ‘국익 우선’, ‘내수시장 공급 최우선’ 원칙을 내세우면서 국제 곡물 시장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가 밀 수출을 전격 금지하고, 중앙 정부의 허가 물량만 수출하기로 한 조치는 국제 곡물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특히,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뒤 밀 수확량이 급감하고, 러시아가 흑해 연안을 봉쇄해 수출 자체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벌어진 인도의 이런 결정은 ‘식량보호주의’ 확산의 단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당시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제시장 공급량이 줄면서 그동안 밀가룻값이 뛰었고, 빵값, 라면값까지 줄줄이 오른 뒤임에도 내려진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터키에 알제리와 모로코, 헝가리 등 세계 각국이 곡물과 고기 등의 수출을 금지했다.

잘란다르(인도)/AFP연합뉴스10월 27일 인도 잘란다르 외곽의 곡물시장에서 한 노동자가 논벼를 분리하고 있다.

◇ 공급부족 우려에 국제 쌀 가격 15년 만에 최고…하락세 멈춘 세계식량가격지수

올해 상황도 썩 좋지 않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주식으로 사용하는 국제 쌀 가격이 수요 증가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제기되면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태국쌀수출업자협회(TREA)에 따르면 이달 21일 기준 아시아 벤치마크인 태국산 백미 ‘5% 부스러진 쌀알’의 가격이 톤당 650달러를 기록, 지난주 대비 2.5%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0월 이후 최고치이다.

쌀 가격은 올해 8월 초에도 최대 수출국인 인도의 전면적인 수출제한 조치와 함께 가뭄으로 인해 태국 작황이 위협을 받으면서 최고 수준까지 치솟은 바 있다.

이후 9월과 10월에는 약세를 보였으나 지난달 들어 다시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지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필리핀 등 쌀 의존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당분간 식량 인플레이션 오름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안정세를 보이는가 싶던 세계식량가격지수는 다시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11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4로 10월과 같았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해 7월 124.1에서 △8월 121.6 △9월 121.5 △10월 120.4로 꾸준히 내렸으나, 지난달 이런 하락세가 멈춘 것이다.

FAO는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 가격 동향을 조사해 5개 품목군별로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집계해 발표한다. 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으로 두고 비교해 나타낸 수치다.

품목군별로 보면 유지류, 유제품, 설탕 가격은 상승했고, 곡물과 육류 가격은 내렸다.

특히 이중 곡물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국제 곡물 위기 단계를 2021년 4월 이후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8월부터 시행 중인 인도의 쌀 수출 제한 조치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관계자는 “쌀 수출금지 조치가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주요 곡물의 가격 하락 폭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시장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쌀이 진열되어 있다.

◇ 해외 의존 심각한 한국…식량안보지수는 OECD 최하위권

곡물자급률 20%가 무너졌다는 건 8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는 의미로, 심각할 정도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1700만 톤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국제 곡물시장이 안정화를 보인다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과 같이 비상 상황에서는 식량 확보가 어려워 국가 안보까지 흔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글로벌 정치·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 113개국 중 39위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2012년 21위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식량안보 지수가 급감한 모습이다.

정부도 위기감을 느끼고 식량 주권 실현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 예산이 처음으로 18조 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농가소득 지원과 식량안보 강화에 중점적으로 쓰일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조직개편을 통해 우리나라 식량안보 강화와 수급 안정 등을 위한 ‘전략작물육성팀’을 자율기구로 신설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논콩과 가루쌀 등 전략작물직불 단가 인상, 면적 확대 등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며 “전략작물직불제, 전략작물산업화 지원 확대 등 곡물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투데이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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