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경제산업부】 올해 금융권은 큰 변화와 이슈에 다수 노출됐다. 고금리 기조 장기화로 가계부채 위기에 직면했음도 이자 장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은행들이 고액의 성과급 논란이 일면서 비판이 거세졌고,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 시대가 막을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증권업계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100조원을 돌파하는 기념비적인 성장을 경험했지만,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시작으로 차액결제거래(CFD) 사태에 이은 영풍제지 대규모 미수금 사태에 이르기까지 주가조작과 내부통제 미흡 등 다양한 유형의 불공정 행위로 시장의 신뢰도는 크게 악화됐다. 한편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14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인한 실적 산출을 두고 보험회사들과 금융당국의 마찰이 일기도 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2023년 금융시장 전반에 있었던 다양한 이슈 10개를 통해 향후 금융업계의 방향성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되새겨봤다.
가계부채 역대 최대…고금리로 부담 가중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3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지난 2분기말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가계신용의 대부분인 가계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의 견인 효과로 빠르게 늘어난 데 기인한다. 3분기 가계대출 잔액은 1759조1000억원에 달했다. 3분기 주담대는 1049조1000억원으로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 분기보다 무려 17조3000억원 급증했다. 올해 들어 매 분기 증가액 규모도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중에서 주담대가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은행 고객들이 ‘집값 바닥론’에 따라 대출을 확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가 누적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처분가능소득의 감소 문제가 생긴다. 이는 경기침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가계부채 리스크도 외면하기 어렵다. 다중채무자와 청년층, 영끌 부동산 구매자 등을 중심으로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8월 말 기준 일반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은 0.4%로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융권 최대 실적에 이자장사·도덕성 비판도 확대
은행을 위시한 금융권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편하게 이자장사로 수익 대부분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각종 사고로 도덕성 시비도 일고 있다. 상생금융 참여 압박 등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4대 금융지주의 연간 당기순이익(지배주주 기준)은 전년 동기대비 3.7% 증가한 16조3114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중 상당 부분은 은행에서 이자수익으로 거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 3분기 국내은행 영업실적(잠정)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1∼3분기 이자이익은 4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8.9% 증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3분기 이자이익은 14조8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000억원이나 뛰었다. 여기에 경남은행 횡령과 국민은행 ELS 상품 부실판매 논란 등으로 도덕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와 회원 은행들은 21일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을 위한 2조원+알파(α) 규모 상생금융을 발표하는 등 여론 악화 상황에 대한 대응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막 내리는 금융지주 회장 장기집권 시대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의 장기 집권 시대가 마침표를 찍었다. 통상 회장에 오르면 10년 가까이 장기간 연임을 해 왔지만, 과거의 이런 관행이 윤석열 정부 들어 깨졌다는 것. 지난해 3월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이 새로 사령탑에 앉았고 올 1월에는 NH농협금융 이석준 회장이 새로 취임했다. 3월엔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이 배턴터치를 했고 11월에는 KB금융에서 양종희 회자 체제가 새롭게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관치 논란도 없지 않다. 금융당국이 회장들의 용퇴 압박을 가하는 발언을 계속 내놨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 한편, 최근까지도 금융권 수뇌부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내부통제 실패와 CEO 책임론 등에 대해서까지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이복현 원장은 10월, 국민이 수용할 수 없는 행태에 대해서는 CEO든 최고재무책임자(CFO)든 책임을 지우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달 12일에는 CEO 승계 프로세스가 외부 후보에게 불공평하다고 지적하며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내놓기도 했다.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
지난 4월 서울가스와 대성홀딩스, 삼천리 등 8개의 종목이 돌연 하한가로 직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 종목은 공통적으로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창구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진 것으로 조사됐고, 배후는 H투자자문사 라덕연 대표를 비롯한 측근 세력들로 드러났다. 이들은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한 통정매매로 주가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고 이 과정에서 일당 중 일부가 이탈,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주가 폭락이 연쇄적으로 촉발됐다. 주가 폭락이 일어나자 빚투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의 반대매매 물량도 쏟아져 증권사들의 미수금 규모가 커지는 등 실적에도 타격을 줬다. 당시 SG증권발 사태로 인한 증권사 30곳의 위탁매매 미수금은 3000억원에 달했다. 한편 다움키움그룹 김익래 전 회장이 해당 주가폭락 사태 발발 직전 지주사 지분 매도를 통해 600억원대의 차익을 실현한 것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주가조작 세력과의 연계성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김 회장은 시세차익분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히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주가조작 세력의 놀이터 오명쓴 ‘키움증권’
영풍제지는 CFD 사태에 이은 두 번째 대규모 주가조작의 타깃이었다. 올해 초 대비 10월까지 약 700% 폭등한 영풍제지의 주가 흐름에 금융당국이 조사를 나섰고 시세조종의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넘겼다. 소식이 전해진 10월 18일 영풍제지는 하한가로 거래가 정지됐고 이후 거래 재개 이후 7거래일 연속 하한가로 약 5000억원대의 미수금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영풍제지 사태의 책임 화살은 고스란히 키움증권에 날아가 꽂혔다. 타 증권사의 경우 영풍제지에 대한 증거금률을 이미 지난 7월부터 100%로 상향했으나 키움증권의 경우 하한가 사태가 발생한 날까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해 세력들의 주가조작 창구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키움증권이 리스크 관리 소홀을 인정하고 뒤늦게 증거금률 상향 종목들을 검토· 실행했지만 오히려 시장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책 변경에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CFD 사태로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회장이 물러나고 영풍제지 사태로 키움증권 황현순 대표이사 사장이 교체되는 등 키움증권은 올해 큰 위기를 맞이했다.
중소형 증권사는 ‘부동산 PF 리스크’ 대형증권사는 ‘해외부동산 리스크’
고금리로 인한 부동산 시장 경기 악화로 증권사들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올해 들어 15%까지 치솟으며 경고등이 켜졌다.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타 업권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으로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사업 비중이 대형증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자산 건전성 우려가 증폭됐다. 신용평가사들은 부동산 PF 익스포저가 큰 하이투자증권과 다올투자증권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대형증권사들의 경우 해외부동산 투자 손실이 가시화되면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졌다. 올해 3월 기준 주요 증권사들이 투자한 해외부동산의 규모는 약 15조5000억원으로 집계돼 해외 상업용 부동산 중심으로 리파이낸싱 부담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부동산 투자의 경우 중소형 증권사보다 대형증권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대형증권사 9곳의 전체 자기자본은 56조7000억원으로 이 중 해외부동산펀드와 부동산담보대출, 우발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달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각 증권사들에게 해외부동산 투자 리스크 자체 점검과 최대한 보수적인 충당금 산정을 주문했다.
개인투자자-금융당국, 공매도 전산화 구축 두고 첨예한 대립
지난 11월 금융당국이 국내 상장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내년 6월까지 전면 금지 결정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조사 결과 글로벌 투자은행(IB) 두 곳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관행을 적발한 것이 배경이다. 무차입 공매도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거래로 주식시장의 공정한 저해와 증권시장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공매도 제도 개선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며,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 적발하기 위한 실시간 차단 시스템 구축 문제에 대해서도 대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도 글로벌 IB 전수조사를 통해 무차입 공매도 행위를 적발하고 강력히 처벌할 예정이다. 또한 처벌 및 제재 수단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국회와 적극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공매도 증거금률 일괄 상향과 대차 상환기간 연장 금지 등을 두고 금융당국 간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차단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으로 공매도 전산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어렵다는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내년에도 첨예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100조원 시대 열어
불공정 행위로 몸살을 앓았던 주식시장이지만 올해 ETF 순자산총액이 100조원을 돌파하는 기념비적인 뉴스도 있었다. 이는 지난 2002년 10월 순자산총액 3552억원으로 발을 내딘지 21년 만이다. ETF는 주식처럼 쉽고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어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타개하기 위한 유동성 정책으로 시장에 풀린 풍부한 투자자금을 효과적으로 유인했다. 직접투자 수요에 대응하는 주식형 액티브 ETF, 기초지수 요건 개선에 따른 혼합형 ETF와 존속기간이 있는 채권형 ETF 등을 선보이며 양적·질적으로 성장을 지속했다는 평가다. 한국거래소 조사에 따르면 국민 17명 당 1명이 ETF 투자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특히 한국의 ETF 일평균 거래대금은 미국, 중국에 이어 전 세계 3위를 차지했다.
IFRS17 도입…후속 조치 마련에도 박차
보험업계는 올해 새 보험회계 국제기준(IFRS17)을 도입 이슈로 술렁였다. IFRS17에 따라 보험부채를 원가 기준에서 현재가치 기준으로 바꾸고 수익인식법을 현금주의 대신 발생주의로 전환하면 실적 변동이 불가피했던 것. IFRS17을 적용한 1분기 실적 발표 후 보험사의 실적 부풀리기 논란에 불이 붙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가이드라인을 마련, 업계에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3분기 실적이 발표되면서 ‘예실차’ 논란이라는 새 이슈가 대두됐다. 계약자에게 지급할 것으로 예상한 예정 보험금에서 실제 지급한 보험금을 제외한 금액인 예실차비율이 5%를 넘지 않도록 당국은 권고한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의 예실차가 3분기 누적 기준 수천억원대로 파악되는 등, 제도 안착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아울러 IFRS17 도입으로 보험사 주주 배당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배당 문제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 통과에도 첩첩산중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때 병원에서 종이 서류를 따로 발급받아 이를 보험사에 제출하면서 직접 청구해야 했다. 국민권익위에서는 이 같은 불편에 주목, 간소화를 2009년 권고했고 이후 14년만의 법안 통과로 제도 개선의 길이 열린 것. 이에 따라 실손보험 가입자가 쉽게 보험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남아있다. ‘중계기관’ 지정을 추후 시행령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남겨둬 갈등이 불가피하다. 보험업계는 준정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중계기관으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의료계는 심평원이 비급여 항목의 적정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의료계의 반발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중계기관을 보험심사원 대신 보험개발원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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