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묵인’ 수탁증권사까지 철퇴…사상 첫 형사처벌 가능성도

서울경제 2023.12.25 조회수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금융위원회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 당국의 글로벌 투자은행(IB) BNP파리바와 HSBC 등에 대한 제재 조치는 여러 면에서 최초와 최대 수식어가 붙는다.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 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다. 지금까지 증선위가 불법 공매도 혐의로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는 올 3월 ESK자산운용의 38억 7000만 원이다. 정부는 이전까지 불법 공매도에 과태료만 부과했다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자 2021년 4월부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공매도 주문액의 최대 10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50억 원을 넘는 사례는 없었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이번 조치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려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당국은 BNP파리바 홍콩법인에 대해 11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부서 간 주식을 차입하는 구조를 악용해 400억 원가량 무차입 공매도했다. 고객으로부터 총수익스와프(TRS) 주문을 접수받고 사내 A 부서가 주식 100주를 소유한 상태에서 B 부서에 주식 50주를 대여했다. A 부서는 B 부서에 빌려준 내역을 입력하지 않고 기존 100주를 잔액으로 인식한 반면 B 부서는 빌린 주식 50주를 잔액으로 잡아 BNP파리바 홍콩법인이 150주를 잔액으로 인식해 50주를 초과 매도한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BNP파리바 홍콩법인의 주문을 지속적으로 수탁해온 BNP파리바증권도 약 8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매도 주문을 넣은 주체가 아닌 주문을 받아 수행하는 국내 증권사에 법적 제재를 가한 첫 사례다.

증선위 관계자는 “주문사의 공매도 포지션과 대차 내역을 매일 공유받고 결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잔액 부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는데도 원인 파악과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BNP파리바 홍콩법인뿐 아니라 수탁 증권사에도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HSBC 홍콩법인은 2021년 8~12월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 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하면서 사전 차입이 확정된 수량이 아닌 향후 차입 가능한 물량을 기준으로 TRS 계약을 맺고 관련 헤지 주문을 냈다. 이후 최종 체결된 공매도 수량을 기초로 차입 계약을 사후 확정하는 수법을 썼다. 업무 처리 프로세스와 전산 시스템이 국내 공매도 규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후 차입 행위를 상당 기간 지속해 역시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다만 HSBC는 금감원으로부터 이를 지적받고 빠르게 시스템을 개선하면서 세 기관 중 과징금 수준이 가장 낮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고발 조치도 처음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서는 1년 이상 유기징역 혹은 이익 금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로 벌금 등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금융 당국은 앞으로도 불법 공매도에 대해서는 고강도 검사와 제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글로벌 IB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명의 팀 단위로 시작한 불법 공매도 조사 인력을 20명의 부서 단위로 확대한 만큼 추가 적발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앞서 금융 당국은 공매도 체계 전반을 개선하고 전산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한 바 있다.

당국은 정치권과 논의해 공매도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국회 정무위는 △상환기간·담보비율 일원화 △불법 공매도 차단 전산 시스템 구축 △불법 공매도 제재 강화 및 제재 수단 다양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불법 공매도가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공매도 거래를 금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의 4~6배 벌금 등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이 포함됐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일반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관련 전산 시스템 구축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금융투자 업계는 이번 기회에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무차입 공매도는 한국뿐 아니라 대다수 국가에서 불법 행위인데도 국내법의 처벌 수위가 낮아 고의적으로 이를 일삼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현지 진출한 한국계 은행에 대해서도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모두가 알 만한 글로벌 IB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장기간 해왔다는 것은 처벌 수위가 낮은 점을 알고 고의적으로 악용한 것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