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는 케빈과 함께 보낼 거야
영화 ‘나 홀로 집에’ 속 케빈은 연말만 되면 바빠진다. 크리스마스를 자신과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1990년 개봉한 영화 ‘나 홀로 집에’는 그 누구에게나 공평한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았다. 이제 ‘크리스마스=나 홀로 집에’가 연상되는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이 영화를 본다는 말이 ‘크리스마스 날 특별한 계획 없이 휴식을 취한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영화는 케빈(맥컬리 컬킨 분)이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집에 혼자 남겨지며 겪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프랑스 여행을 앞두고 있던 케빈의 가족은 휴가 당일 단체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처한다.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헐레벌떡 집을 나서다 보니 케빈의 가족은 다락방에서 자고 있던 케빈만 집에 남겨둔 채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케빈의 부재를 눈치챈 케빈의 엄마는 “나는 엄마 자격도 없다”라며 케빈에게 돌아갈 수단을 취하지만, 일반 승객이 비행 중인 비행기를 멈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또 크리스마스 연휴 탓에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바로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부모님이 케빈에게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케빈은 파란만장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낸다.
난생처음 홀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게 된 케빈은 처음에는 해방감을 느끼며 즐거워하다가 이내 산타에게 가족을 돌아오게 해달라는 소원까지 비는 등 가족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그러던 중 집에 빈집털이범들이 들이닥치며 케빈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케빈은 빈집털이범들로부터 자신과 집을 지키기 위해 거미 투척, 레고 밟게 하기, 매달려 있는 줄 자르기 등의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다. 영화 후반부에 케빈이 빈집털이범들에게 붙잡히기는 하지만, 우정을 나눈 이웃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결국 부모님과 경찰이 올 때까지 집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영화 ‘나 홀로 집에’는 케빈의 창의적인 대응 방법과 8살 꼬마 아이에게 당하는 빈집털이범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원초적인 웃음을 끌어낸다. 또 보기만 해도 크리스마스 기운이 감도는 미국의 90년대 연말 분위기와 따뜻한 가족애를 잘 담아내고 있어 ‘연말 영화의 바이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재미있고 따뜻한 측면만 다루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아동을 방치하는 무관심한 어른들을 풍자하는 측면도 있다.
8살 아이가 연휴에 집에 혼자 남겨졌다는 영화 속 설정이 현실에서 이뤄졌다면 그 부모는 미국 아동보호법에 따라 경찰 조사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만 12세 이하 아동을 1시간 이상 혼자 있게 내버려 두는 행위를 ‘방임’으로 치부한다. 이에 따라 가족 중 한 사람이 아이를 돌보거나 돈을 들여 보육자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 만 6세 이상의 아이들은 공립 유아원이나 유치원에 들어가 국가가 제공하는 무료 교육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가정에서 전적으로 아이를 담당해야 한다. 케빈 가족과 같이 케빈을 돌볼 인적·물적 자원이 충분한 집의 가정의 경우 이러한 법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유가 없는 가정에 보육비는 상당한 부담이다.
특히, 최근 미국 가정의 보육비는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미국의 지역별 교육비를 조사한 Child Care Aware of America의 분석에 의하면 미국의 2022년 전국 평균 보육비는 중산층 가계 소득의 10%에 해당하는 1만 800달러를 넘어섰으며 한 부모 가정의 경우에는 가계 소득의 33%가 자녀 보육비로 지출됐다.
보육비 부담이 높아질수록 아이를 방치하고 싶지 않아도 방치하거나 일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흐름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쾌적한 삶을 사는 데 점점 더 높은 자본이 요구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타인이 방치와 무관심, 최선과 여력 없음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의지할 성인의 부재 아래 아이들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자녀 양육비 부담이 높은 국가로 유명하다. 미국의 투자은행 제퍼리스 금융그룹이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신생아 때부터 18세까지 자녀를 양육하는 비용이 1인당 GDP 대비 7.79배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렇게 한국의 자녀 양육비 부담이 높아진 데에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사회적 분위기, 공공 보육 시스템의 한계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부모의 맞벌이로 인한 보육비 지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의 맞벌이 가구의 경우 부모가 일하는 시간 동안 자녀가 혼자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에 3, 4개의 학원을 보내기도 한다. 이 경우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은 적겠지만, 아이의 삶의 만족도가 높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한국에는 미국과 같이 몇 세 이하의 아이를 몇 시간 이상 혼자 두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아동보호법 규정은 없다. 이에 따라 부모가 아이를 홀로 방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올해 3월 울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일해야 한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자녀를 집에 홀로 두고 주말에만 아이를 찾은 아버지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도 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홀로 집에 남겨진 아이는 초등학생임에도 돌봐주는 보호자 없이 등교부터 식사까지 스스로 해내야 했다.
코로나 시대에는 이러한 돌봄 공백 현상이 더욱 심각했다. 1월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위드 코로나 시대 학령기 아동 돌봄 실태와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시기에 서울 초등학생 10명 중 1명은 부모 없이 홀로 집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가 혼자 있을 가능성이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더 높아진다는 점은 돌봄 공백의 구멍이 더 깊고 크게 느껴진다.
다가오는 연휴와 새해에는 아이들이 느낄 외로움 공백이 메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케빈의 말을 소개한다.
“산타할아버지한테 우리 가족을 다시 원한다고 전해주세요. 장난감 말고 아빠하고 엄마, 형들하고 누나들, 큰 엄마하고 사촌들을 주시고 시간 남으시면 큰 아빠도 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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