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인텔의 미국 공장에 하이NA EUV(극자외선) 장비 부품 출하를 시작했다. 차세대 미세공정 기술 연구개발 및 상용화를 돕기 위한 목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하이NA EUV 물량 확보를 위해 한국 정부와 힘을 합쳤지만 인텔이 한 발 앞서나가며 기술 우위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블룸버그는 22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ASML이 인텔 오리건주 DX1 공장에 최신 반도체장비 주요 부품 공급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하이NA EUV는 ASML이 2025년 정식 출하를 계획하고 있는 차세대 반도체 노광장비로 2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핵심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EUV 장비는 ASML이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공급 물량이 제한적인 반면 삼성전자와 인텔, TSMC와 SK하이닉스 등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의 수요가 몰리고 있는 고가의 장비다.
자연히 세계 반도체기업들 사이 장비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차세대 하이NA EUV 물량을 선점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텔이 ASML의 하이NA EUV 장비 첫 고객사로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차세대 미세공정 기술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데 그만큼 유리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인텔은 이미 ASML이 공급을 계획하고 있는 하이NA EUV 물량 10대 가운데 6대를 선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TSMC,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이 남은 물량을 차지하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IT전문지 톰스하드웨어는 “인텔은 선제적으로 확보한 하이NA EUV 장비를 반도체 미세공정 연구개발에 활용할 것”이라며 “공정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하이NA EUV는 반도체 업계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장비인 만큼 이를 최대한 먼저 확보해 차세대 파운드리 공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노하우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톰스하드웨어는 인텔이 하이NA 기반 반도체 양산을 가장 먼저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삼성전자와 TSMC에 전략적인 이점을 갖추게 됐다고 바라봤다.
인텔이 하이NA 장비를 처음 들여놓는 오리건 DX1 공장은 반도체 생산 기술 연구개발의 중심 거점이다. 2022년 4월까지 30억 달러(약 3조9천억 원)에 이르는 증설 투자도 마무리됐다.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뒤늦게 진출한 인텔은 첨단 미세공정 기술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두고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 추격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르면 내년부터 2나노 공정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하면서 2025년 2나노 반도체 양산을 계획한 삼성전자와 TSMC를 확실하게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이 하이NA EUV 장비 물량을 일찍이 선점하고 미리 인도받아 연구개발에 활용하는 것은 2나노 미만 공정에서도 선두를 굳건히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ASML이 인텔에 공급하는 물량 이외에 다른 고객사를 위한 하이NA EUV 장비를 언제부터 공급할 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최근 하이NA EUV를 활용한 첨단 공정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ASML과 협력을 강화하는 성과를 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및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해 ASML 본사도 방문하며 차세대 EUV 장비 분야에서 협업 계획을 구체화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ASML과 한국에 1조 원을 투자해 하이NA EUV 장비 관련 연구개발센터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합의했다.
비록 인텔에 하이NA 장비 물량 선점 기회는 뺏겼지만 향후 공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곧바로 ASML과 차세대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SK하이닉스 역시 ASML과 EUV장비에 쓰이는 화학소재 관련 기술을 공동개발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차세대 EUV 도입 가능성에 대비해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다만 미국 정부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인텔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만큼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갈수록 어려운 경쟁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네덜란드 정부와 ASML은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최근 중국에 수출하는 반도체장비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등 반도체산업 분야에서 굳건한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제공하는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인텔의 첨단 미세공정 개발에 집중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힘을 얻는다.
다만 로이터에 따르면 하이NA 장비가 실제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시점은 일러도 2026~2027년으로 예상된다. 아직 한국 반도체기업이 경쟁에 대응할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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