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례없는 불황을 맞았던 반도체 시장이 새해에는 회복세를 보일 거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감산 공조 효과로 재고가 정상화하고 있고 AI(인공지능) 산업의 성장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아직 신중론도 남아 있다. 고금리와 글로벌 소비 경기 둔화가 여전하다는 점에서다. 최근의 반도체 시장 회복세가 수요 증가 때문인지 제조업체들의 감산 때문인지 확실하지 않은 점도 변수로 지적된다. 전반적인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대가 실제 이뤄질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올해는 역대급 불황…내년 반등 전망에 힘 실려
올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역대급 불황에 시달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 적자가 12조 69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기간 8조 763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업체들의 수출 비중이 큰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이 장기화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대대적인 감산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소 달라진 흐름이 감지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전망에 갈수록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우선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이 개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회계연도 기준 2024년도 1분기(9~11월) 매출 47억3000만달러, 영업손실 11억28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지난 20일(현지시간) 밝혔다. 전 분기보다 매출은 18% 증가했고 영업손실의 경우 같은 기간 23% 줄어든 수치다. 마이크론은 회계기준 상 국내 업체들보다 한 달 빨리 분기 실적을 발표해 반도체 업계의 분위기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전 세계 반도체 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최근 사상 최고치(4117)를 찍으며 긍정론에 힘을 실었다. 이 지수는 엔비디아와 AMD, 브로드컴, 인텔, 마이크론, 퀄컴 등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30개로 구성돼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의 경우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내년 반도체 시장 규모가 5884억달러에 이르며 올해 전망치(5201억달러)보다 13.1% 증가할 거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반도체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업계에 감산 효과가 본격화하며 메모리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AI 시장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나타내며 반도체 수요가 늘 것이란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거론된다.
실질적 수요 회복 관건…중국 경기 회복도 변수
다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신중론도 남아 있다. 전반적인 소비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수요 회복이 이뤄질지가 관건으로 여겨진다. 주요 업체들의 감산으로 가격 반등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일시적인 흐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반도체 시장 회복세에 대해 신중론을 펼쳐 주목받은 바 있다. 최 회장은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 “반도체 경기 자체는 지금 최저점을 벗어나는 단계”라면서도 “아직 가격이 더 회복되고 수급 밸런스가 제대로 맞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아직 전체적인 회복보다는 일부의 어떤 수요가 전체 마켓을 끌고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의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수요 증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언급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수요가 지속해 살아나기 위해서는 글로벌 소비 시장의 뚜렷한 회복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회복 여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액은 전체의 40.3%에 달한다.
최 회장이 중국 경기 흐름에 주목한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 글로벌 경기가 회복할 거라고 예측하면서도 중국의 회복 속도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 경기가 단시간에 회복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내년 말에나 회복세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우리나라도 그런 추세를 따라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감산 공조를 언제까지 이어갈지도 관심사다. 업체들이 다시 생산을 늘릴 경우 다시 가격 상승 흐름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이 지적된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탑재량 증가가 관측되고 재고도 감소 추세에 있어 업황 바닥은 지난 상태”라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고금리와 글로벌 소비 둔화에는 변한 게 없어 가격 반등세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칩메이커들의 증산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내년 초 이후 현물 가격 약세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 역시 “글로벌 반도체 업황은 상승의 사이클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회복 속도는 많은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정 수준의 업황 회복 이후에 다시 주요 기업에 의해 시작될 생산 증가가 미칠 영향도 지켜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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